1세대 무용학자 정병호 선생 타계전통춤 원형보존, 전통예인 발굴 등 민속예능 정립에 산파역

연낙재 개관식(2006년)에 참석한 고 정병호 선생
한국 무용학을 개척한 1세대 무용학자 정병호(84) 선생이 지난달 25일 별세했다.

고인은 전국의 민속예능 현장을 찾아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연구해 이론을 정립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예인을 발굴하고 한국 신무용을 개척한 최승희를 복원하는 등 남다른 연구로 학계와 무용계에 귀감이 돼왔다.

전남 나주 태생인 그는 해방 직후 대학생 신분으로 함귀봉 조선교육무용연구소에 입문해 조동화, 최창봉, 차범석, 정순영 등과 함께 현대무용과 교육무용을 체득했고, 이후 중앙대 교수를 지내며 평생 무용학의 이론정립에 몰두했다.

또한 약 30여 년간 우리 민속예능을 조사연구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데 산파역할을 했고, 무용평론가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특히 '전통 재발견'을 화두로 1976년 '전통무용연구회'를 발족해 이매방(살풀이춤‧승무), 김숙자(도살풀이춤), 한영숙(승무), 강선영(태평무), 공옥진(병신춤), 하보경(밀양백중놀이), 박병천(진도씻김굿), 김금화(황해도배연신굿), 김석출(동해안별신굿) 등 지방에 묻혀 있던 전통예인을 발굴해 서울에 소개했다.

그는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며 25종목 민속예능 중 16종목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고, 그의 조사연구와 심사로 인간문화재 반열에 오른 전통예인이 무려 27명에 이른다.

책 <춤추는 최승희-세계를 휘어잡은 조선여자>를 펴낸 정병호 선생(1995년)
그리고 국내 학자로는 처음으로 1980대 후반 월북예술가에 대한 해금조치 이후 신무용가 최승희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7년여 동안의 자료수집과 증언자 인터뷰를 통해 최승희 일대기를 복원하고 평전 <춤추는 최승희 세계를 휘어잡은 조선여자>(1995)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밖의 저서로는 <민속춤>, <농악>, <한국의 전통춤>, <한국무용의 미학> 등이 있으며, 지난 6월에는 그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한 학술서 <한국 전통춤의 전승과 현장>, <한국 전통춤의 원형과 재창조>를 펴냈다.

두 권의 학술서는 2007년 평생의 학문적 여정이 담겨 있는 무용학 관련 자료 일체를 국내 유일의 춤전문 자료관인 연낙재에 기증함에 따라 연낙재무용학술총서 시리즈 제4권, 제5권으로 간행된 것이다.

정병호 선생은 전통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한국 무용학의 기초를 다진 공로로 1997년 옥관문화훈장, 2008년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연낙재는 지난 6월 22일 개관 5주년을 맞아 '무용가를 생각하는 밤' 11회 순서로 정병호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집중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긍수 중앙대 교수가 '온화한 인품의 큰 가르침'이라는 주제로 정병호 교수를 회고했고, 이어 이병옥 용인대 교수의 '정병호의 민속예능 현장답사의 문화론적 의미',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연낙재 관장)의 '정병호의 학문적 업적과 발자취'라는 논문발제가 있었다.

성기숙 교수는 "정병호 선생님은 타고난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민속예능의 현장을 찾아 이를 이론으로 정립함으로써 춤의 기록적 가치를 재인식시키고 전통춤의 원형보존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면서 "또한 '나의 이론을 밟고 넘어서야 새로운 이론, 새로운 학문이 성립된다'고 강조해 학문하는 자세와 정신을 일깨우곤 했다"고 말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