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연주자 정민아보름간의 거리공연 여정 담은 영화 개봉 박두

'지긋지긋한 회사를 집어치우고 / 창업의 큰 뜻을 품고 만든 주먹밥 / 자유롭게 뮤지션의 본 모습으로 /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만든 주먹밥 (중략) 무서워 무서워 쫓겨날까 봐 / 무서워 무서워 벌금 낼까 봐 / 무서워 무서워 망할까 봐' ('주먹밥' 중에서)

경쾌한 보사노바 선율에 담긴 소탈하고 귀여운 노랫말이 청중을 살며시 웃음 짓게 만든다. 언젠가 광화문역 7번 출구에서 실제로 주먹밥을 팔며 느꼈던 눈물 찔끔 나는 고생이 보상받는 순간이다.

'주먹밥' 외에도 그녀만의 경험과 고민이 담긴 사연들은 여름밤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타고난 엉뚱함과 유머는 이렇듯 고군분투하던 그녀의 20대의 삶과 음악 곳곳에 박혀 있다.

8월 18일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 <환타스틱 모던 가야그머>의 주인공 정민아(32). 2004년 홍대 인디 신 최초의 가야금 싱어송라이터이자 2007년에 발표한 1집 앨범으로 무려 1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던 국악계의 기린아다. 올해에는 중학교 2학년 음악 교과서에 1집 수록곡 '무엇이 되어'가 소개되기도 했다.

<환타스틱 모던 가야그머>는 2009년 여름, 보름 동안 이어진 버스킹 투어(거리 공연)의 여정을 소박하고 솔직하게 따라간다. 땀나는 연주와 듣기 좋은 선율과 소박한 무대와 객석까지. 거짓 없는 일상과 느낌을 살려낸 가사와 탱고, 재즈, 포크를 넘나드는 멜로디를 충분히 빠져들 수 있게 한 감독의 배려가 좋았다.

제천 국제음악 영화제부터 전북 전주, 충북 청주, 광주와 김해, 부산과 대구, 강원도 정선 5일장까지 경차 프라이드를 타고 종횡무진한 뮤직 로드 무비는 그녀의 음악과 독특한 이력(낮엔 전화상담원, 밤엔 홍대의 가야금 싱어송라이터)을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환타스틱 모던 가야그머>의 시사회가 끝난 후 그녀를 만나봤다.

홍대 신과 국악 연주자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영화 속 인터뷰에선 홍대 음악 신의 다양성과 예술에 대한 포용력에 이끌렸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곳을 찾아가게 됐나요?

저도 처음엔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안정된 연주 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이에요. 자리가 워낙 안 나는데다 경쟁도 치열해 몇 차례 고배를 마셨죠. 자괴감을 가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저한텐 밥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공연할 곳이 없을까 하면서 찾은 곳이 홍대 신이에요. 낮엔 아르바이트하고 밤엔 홍대에서 연주하고.

거기에서 얻은 게 많아요. 뮤지션뿐 아니라 퍼포먼스, 미술, 연극하는 분들을 두루 만나면서 사고의 전환이 이뤄졌죠. 아이디어도 많이 생기고 편견조차 사라졌어요. 제 성향 자체가 많이 변해서 인디적 성향이 더 강해진 거 같아요.

템포가 느린 노래를 할 때, 재즈보컬들이 가진 정서 중 아련한 '한'의 정서가 느껴져서 좋았어요. 가야금과 노래를 같이 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학교 다닐 때 교양 수업에서 정가나 민요, 판소리를 배웠어요. 기억하고 있다가 홍대에서 가야금을 처음 연주하면서 연주만 하면 주목받기 어렵겠다 싶어서 한두 곡 정도는 노래를 곁들였는데, 반응이 좋더라구요. 자작곡이 별로 없을 때였으니까, 초반에는 기존의 가야금 산조도 하고, 황병기 선생님 곡이나 박범훈 선생님의 가야금 병창 <가야송>도 했어요. 그 뒤로는 곡을 쓸 때 가사를 일부러 넣게 됐죠.

요즘 퓨전 국악을 하는 연주자들과는 다른 음악을 들려주고 있어요. 오히려 국악적 색채가 상당히 배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전 제가 퓨전 국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사용하는 악기가 가야금이고 국악적인 색채가 분명히 날 수밖에 없지만요. 특히 올해 나온 3집 <오아시스>는 가야금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를 정도로 색채를 많이 지웠지요. 전 국악이 아닌 '정민아'의 음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해요. 개인적인 성향은 인디 쪽에 가깝지만 태생은 국악이니 바탕에는 자연스럽게 배어 있겠죠.

전통 국악에서는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국악평론가 윤중강씨는 '산조를 제대로 연주한다'고 평했는데, 국악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 때까지 한국무용을 했어요. 그때 가야금을 부수적으로 가르쳐줬는데, 덕분에 연습용 악기를 가지고 있었죠. 4학년 때 교통사고가 나면서 무용을 그만뒀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중학교 2학년 때 가야금 가르쳐준다는 전단지를 본 거죠. 가야금이 있으니 한번 가봤는데, 적성에 너무 잘 맞아서 푹 빠졌던 기억이 나요.

국악고등학교 진학했더니 별천지더라구요. 그동안 국악 합주를 본 적이 없는데, 국악기 합주를 하면서 이렇게 멋있는 음악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국악기는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들어야 정말 좋거든요. 그렇게 국악을 기반 삼아 다른 음악도 궁금해하면서 제 음악에 대한 욕심이 생겨난거죠.

국악과 재즈가 잘 어울린다는 건 알고 있지만, 특히 영화 막바지에 나오는 베이시스트 서영도 씨와의 <잔상> 협연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재즈와의 접목은 어떻게 시도하게 된 건가요?

어릴 때는 하드락을 무척 좋아했어요. 하지만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보고 난 후엔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됐죠. 즉흥음악인 것도 국악과 닮았구요. 전 재즈와 국악을 절반씩 써요. 모티프는 국악을 가져가고 재즈화성을 많이 사용하죠.

재즈를 반주적인 것으로 사용하고 국악을 멜로디로 하면서 소박함과 세련됨이 만나서 포크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나오는. 일부러 의도하진 않는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죠.

가야금과 어떤 악기가 잘 어울릴까 알아보려고 악기를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개 배웠어요.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까지. 7개월쯤 배운 드럼은 리듬에 도움이 많이 됐고, 피아노는 가야금과 가장 비슷해서 곡을 쓸 때 많이 활용하죠.

앙상블 수업을 하면서도 악기 구성에 따라 사운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알게 됐구요. 음악을 하는 건 밥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 일부러 하려던 게 아니라 좋아서 계속하게 된 거죠.

영화 속에도 보이지만 더운 여름, 공연할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음향이 특히 힘들었어요. 국악기가 다른 악기보다 소리가 작은데, 가야금은 1미터 안에서 듣는 게 가장 좋거든요. 좋은 앰프를 가지고 다니기 어려워서 저렴한 꼬마 앰프를 쓰니까 그 좋은 소리를 제대로 못 들려줘서 너무 아쉬웠죠.

2,075km, 길었던 버스킹 동안 얻은 것이 있다면 뭘까요?

거리 공연은 자리가 정말 중요해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서거나 앉아서 볼 수 있으면 음반도 많이 팔리거든요. 여기서만 살 수 있는 것 같은 느낌, 직접 사인도 받을 수 있고 현장에서 들은 음악을 그대로 집에서 들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하지만 거리 공연을 하려면 그만큼 얼굴이 두꺼워야 하죠. 주먹밥 팔 때도 그랬지만 거리 공연하면서 더 용감해진 거 같아요.

연습과 컨디션 조절의 중요성도 알게 됐어요. 지역마다 원하는 노래가 있으니, 제가 들려주고 싶은 레퍼토리에 더불어 더 많은 곡을 준비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지요. 다이어트는 성공하지 못했어도 새롭게 알게 된 건 많았던 여행이에요.

머지않아 유럽으로 버스킹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가야그머' 정민아. 애초에 가야금을 들고 버스킹을 한다는 자체가 무모한 시도였지만 그녀 특유의 넉살과 여유로 오랜 여정을 마무리한 것처럼, 유럽 버스킹도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진 않는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 주민들이 그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던 것처럼, 유럽의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가야금 소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더 흥미로운 이벤트가 아닐까.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