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출간4년 6개월 세계축제 체험 중 유럽 28개국 101개 축제 수록… 한국 축제에 반면교사

축제의 세계는 광대하다. 애딘버러 페스티벌과 아비뇽 페스티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딘버러가 들썩이는 한 달 동안 유럽에서만도 30개 이상의 축제가 벌어진다.

심지어 아비뇽 페스티벌에 대항하는 '우리는 아비뇽에 가지 않을 거야 페스티벌'도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세계 보디페인팅 페스티벌이 열리며, 전세계 여행자들은 매년 인간탑을 쌓고 인형의 화형식을 열고 성난 소와 함께 뛰어다니는 스페인의 축제들을 손꼽아 기다린다.

바스 프린지 페스티벌의 관계자는 말한다. "모든 축제는 어떤 축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유럽 축제 사전>은 이 망망대해로 독자를 인도한다. 공연기획자이자 세계축제연구소 소장인 유경숙씨가 4년 6개월 간 몸으로 겪은 세계 축제 중 유럽 축제를 추려 낸 책이다. 28개국 101개의 축제가 수록되어 '사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기본 정보는 물론 자원봉사를 하거나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방법까지 정리되어 있다. 축제를 해외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젊은 예술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예술가의 해외 진출에 대한 정부나 기업의 지원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예술가들에게 기회가 몰리죠.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문화예술 축제들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좋은 무대가 될 수 있어요. 그들이 스스로 판을 찾아가는 데 길잡이가 될만한 지도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득은 단순한 관광 대상이 아닌 지역 문화로서의 축제의 의의다. 유럽의 축제들은 지역의 기후와 풍습, 역사적 사건 등을 재해석하고 전달하는 매개가 되어 왔다.

북유럽 축제들이 주로 여름밤에 진행되는 것은 겨울이 길고 여름에 백야 현상이 일어나는 기후 때문이다. 집집마다 양과 소를 잡는 터키의 축제 '쿠르반 바이람'은 코란에 기원을 두고 있고, 이 풍습 때문에 터키의 피혁산업이 발달했다는 설도 있다.

독일 남부의 작은 산속 마을 오버람머가우에는 400년 동안 지속된 축제가 있다. 오버람머가우 페스티벌이다. 마을에 흑사병이 돌았던 1633년, 주민들이 간절히 기도하며 '예수 수난극'을 영원히 공연하겠다고 약속하자 흑사병이 사라진 데서 비롯되었다니, 이 축제는 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의식인 셈이다.

마을에서 태어나거나 20년 이상 산 사람 혹은 동물이 힘을 합쳐 만드는 이 장관은 10년에 한 번씩, 6개월 간 펼쳐지며 그때마다 50만 명 이상의 여행자를 불러 모은다.

이런 축제의 사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만나고 무대를 세우고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읽다 보면 당장 현장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유럽에서 돌아온 후 국내 축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경숙 소장을 만났다.

장기간 세계 일주를 하며 축제를 연구했다. 계기가 있나.

공연기획자로서 세계의 문화예술 트렌드에 대해 현장 조사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축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1년 안에 끝내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더라.(웃음) 나에게만이 아닌 한국 공연계 전체에 필요한 정보라는 확신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책에 실린 '아시아 아티스트를 위한 유럽 진출 10계명'은 한국 공연계에 대한 쓴소리처럼 읽혔다. '비주얼에 신경 써라', '세트 의존도를 낮추어라', '철학과 작품성으로 승부하라' 등의 충고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반증 아닌가.

비주얼에 신경 쓰라는 것은 포스터나 팸플릿 등을 세련되게 만들라는 뜻이다. 그것들이 공연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시각 이미지인데도 한국 공연계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한국 공연은 연출력과 연기력, 시나리오와 철학보다 액세서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세트가 크고 복잡해지면 그만큼 운송비용이 늘기 때문에 해외 축제에서 초청 받기가 어렵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 중 해외에 알리고 싶은 것이 있나.

세계 일주를 다니던 중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을 해외에 알리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느낀 순간이 있었다. 10여 년 전 처음 춤을 봤을 때는 미처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지금은 선생도 너무 연로하시고 제자도 없어서 병신춤을 문화 콘텐츠화하기가 어려워졌다.

한국의 축제들은 어떻게 평가하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축제에 컨설팅을 많이 하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 지역 축제는 지역성과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축제는 지속되기 어렵다.

유럽 축제 중 한국에 적용해보고 싶은 사례는 없었나.

세르비아에서 열리는 구차 트럼펫 페스티벌은 한국 기획자들이 본받을만한 사례다. 트럼펫만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수십 개가 며칠간 온동네를 쿵짝쿵짝 울리는데 다들 알아서 춤추는 분위기가 된다. 나도 내가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거기서 알았다.(웃음) 축제 기간 동안 특산품인 동네 맥주도 엄청나게 팔린다.

네덜란드 우롤 섬에서 열리는 우롤 페스티벌도 응용해볼만 하다. 우롤 섬은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며칠 머물며 구석구석 돌아보게 된다. 이런 축제를 남해안 섬에 만들면 어떨까.

유럽 이외 지역의 축제 사전을 낼 계획이 있나.

내년에는 아프리카 축제에 대한 책을 작업할 예정이다. 전세계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유럽과는 달리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아서 필요한 작업이다. 이후 남미와 아시아, 북미 순서로 자료를 정리해나갈 계획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