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안철수 대선 꿈' 물거품된 내막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바람’의 여진이 아직 강렬하다. 지난 21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원순 변호사의 지지율이 여야 정당 후보를 제치고 1위를 고수하는 데는 ‘안풍’(安風) 덕이 절대적이다.

안풍의 진원지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신선한 면모이지만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 지, 또 어디로 불어가는지 궁금할 때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평화재단 평화연구원장)이었다.

그런데 안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불거지면서 안풍은 크게 뒤틀렸다. 안풍의 존재감은 분명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정작 안 원장은 서울시장 출마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순순히 양보했고, 윤 전 장관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윤 원장은 야당의 ‘음모론’(야권을 분열시켜 한나라당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 한다는)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채 현장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한 것은 안풍이 어디서부터 불어왔으며, 무엇을 향한 것이었냐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윤 전 장관을 만났다.

지난 17일 서울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한선정치아카데미’에 강연자로 나선 윤여준 전 장관은 ‘안철수’와 관련한 말을 무척 아꼈다. 대신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강연을 이어갔다.

'한국적 통치술' 중요

“2013년에 새로 등장하는 국가지도자가 안고 있는 과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경제적 평등, 민주화 수호 등 3가지 과제가 부딪힐 때 어떻게 이를 균형 있게 관리하느냐이고, 그런 능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한국적 통치술(State Craft)을 가진 지도자가 이제는 나와야 합니다.”

그의 강의는 전 현직 대통령과 현재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을 떠올리게 하며 시대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려 이어졌다. 윤 전 장관은 특히 한국적 통치술 중 ‘대통령직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가장 먼저 꼽았다.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는 사회의 모든 리더십을 포함하고 존재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리더십은 다른 리더십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 자질로는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사람’을 꼽았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했는데 역대 대통령들이 과연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철저하게 추구했는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고 했다.

마지막 자질로 채찍과 당근을 이용한 ‘북한 관리능력’을 들었다. 윤 전 장관은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은 당근만 사용했고, 최근에는 채찍만 사용했는데 둘 다 실패했다”면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협상의 일반원칙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경북 구미 금오공대에서 열린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윤 전장관은 자신의 강의가 전 현직 대통령은 물론, 현재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과 연계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으나 참석자들의 질문에는 가급적 성실하게 답했다.

윤 전 장관은 “역대 대통령들은 권력에 대한 사유 의식이 많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폐단이 많았다”면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화신이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후 국가를 운영하면서 권위주의적으로 변했다”고 명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민주적인 권위 자체가 없어져서 국정운영이 힘들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주의 과정을 무시하거나 생략했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다고 평했다.

"허물어진 국정이 문제"

현재 대선 유력 주자들에 대해서는 “허물어진 국정을 되살리는 데만 5년간 고생할 것”이라며 에둘러 답했다. 안철수 원장에 대해선 “본인이 출마 의사를 표한 적이 없고 지켜본 기간이 짧아 답하기 곤란하다”고 피해갔다.

하지만 윤 전 반관은 서울시장 출마 문제로 소원해지기 전까지 안 원장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나타냈다. 최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자질로 공적 헌신성이 요구된다”며 “안 원장 같은 품성을 지닌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윤 전 장관이 강의 중 대통령의 자질 중 가장 중시한 ‘대통령직에 대한 투철한 의식’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안철수(오른쪽)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장 재보선 불출마 선언을 한 후 박원순 변호사와 포옹하고 있다.
현재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는 “품격이 다른 분”이라며 포괄적으로 대답했다.

안철수 원장과 거리가 생긴 배경을 설명할 때는 아직도 그에 대한 배려가 뚝뚝 묻어났다. 서울시장 출마로 불거진 안 원장과의 거리에는 아쉬움이 깊게 배어 있는 듯했다.

"새로운 시대 아이콘"

윤 전 장관이 속해 있는 평화재단 사람들, 그리고 안철수 원장-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 원장이 함께 진행한 ‘청춘콘서트’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윤 전 장관과 안 원장은 시대 정신에 맞는 새로운 정치에는 공감했으나 ‘대선’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간격이 있어 보였다.

윤 전 장관은 올해 초 안 원장을 만나 그의 됨됨이에 크게 호감을 갖고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로 매우 적합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윤 전 장관은 강연이나 사석에서 안 원장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평가했고, 미래정치의 주역으로 꼽았다. 나아가 2012년 대선의 유력한 주자로 눈여겨 보았다. 평화재단 사람들 중에도 윤 전 장관의 큰 그림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로 물러나면서 윤 전 장관의 대선 밑그림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이는 윤 전 장관의 큰 정치 프로젝트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이었다.

윤 전 장관을 비롯해 평화재단을 이끄는 법륜스님 등이 안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를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안 원장의 의지는 강고했다. 윤 전 장관이 “안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은 90%”라고 말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다 안 원장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으면서 윤 전 장관의 2012년 대선 프로젝트도 물거품이 됐다.

주변에서는 ‘정치’에 대한 윤 전 장관과 안 원장 간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말한다. 안 원장은 서울시장 당선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에 반발했고, 서울시장 자리가 ‘희생과 고통의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대선과 같은 지극히 정치적이거나 정치공학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심성이라는 것이다.

반면 윤 전 장관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한나라당 선거대책위 상임 본부장, 여의도연구소장, 환경부장관 등을 지낸 보수진영의 선거 전략가로 알려져 있다. 윤 전 장관은 대선이라는 큰 그림의 중심 축에 안 원장을 놓고 새로운 정치 지형을 모색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앞서나간데 불만

물론 일각에서는 윤 전 장관이 안 원장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본인의 대선 그림을 일방적으로 몰아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원장의 한 측근은 “안 원장이 대선은 아직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윤 전 장관이 앞서간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안 원장이 “윤 전 장관은 여러 멘토 중의 한 명”이라고 말한 것도 당시 불편했던 심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이 따른다.

정가에서는 안 원장이 “대통령은 아무나 하냐”며 물러났지만 어떤 형태로든 2012 대선에 관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범야권 후보를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지만 상황에 따라 직접 나서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전 장관 역시 현재는 정치와 한발 물러나 있지만 스스로 “2012년 대선은 국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만큼 어떤 형태로든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항간에는 안 원장이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뒤 윤 전 장관과 그간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화해했다는 얘기도 들려 윤 전 장관의 ‘2012 안철수 대선후보’ 밑그림이 다시 그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윤 전 장관과 안 원장 모두 2012년 대선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