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의 눈'으로 작품 재해석 했죠"
'88만원세대 고달픈 삶' 다뤄

어떤 역할이든 배우 이해가 중요, 구체적 연기 통해 공감 끌어내야

1998년 극단 창단 창작극만 고집, 35년 노하우 후배에 전수하고파


“부끄럽지요. 제가 연출 공부를 따로 한 것도 아니고…”

중견 연기자 김갑수(54)가 연극 인생 35년째를 맞아 첫 연출을 맡는다. 다음달 2일부터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의 배우세상 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서울 테러’에서 연기자가 아닌 연출가로 이름을 올린다.

개막을 보름여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 11일 늦은 오후 배우세상 소극장에서 연출가 김갑수를 만났다.

연습 중에 잠시 짬을 낸 자리에서 김갑수는 “그동안 무대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면서 체득한 연기를 젊은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 연극 ‘서울 테러’는 지난해 초연된 ‘88만원 세대’들의 고달픈 세상살이를 그려낸 풍자극이다. 처음 맡는 연출로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서울테러’는 초연 때 관객들이 좋아해 다시 무대에 올리자고 한 창작극이다. 연기자의 시선으로 후배들과 만들고 싶었던 작품인데 기회가 왔다. 원래 연기자니까 연출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연기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재해석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출을 맡았다. 새로운 도전이다. 배우들에게 정확한 이유를 알고 구체적인 연기를 해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구체적인 연기란 무엇인가

“모두가 할 수 있는 작품이나 역할에 대한 해석으론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분노를 표현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연기자에 따라 모두 달라야 하듯이 어떤 역할이든 연기자의 해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문이 남아 있으면 연기도 어설퍼지고 관객은 공감하지 않는다. 자기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제대로 찾아가는 것이 구체적인 연기의 첫 걸음이다.”

- 연출가로서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하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연기자들이 직접 연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연출의 객관적인 시선과 연기자가 원하는 것을 조화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연극은 인간이 인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하듯이 연기도 연기자에게 맞는 연기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을 함께 찾아가고 있다. 연출이 무조건 ‘아니야, 이렇게 해’란 식으로 가면 연기자는 할 말이 없어진다.”

김갑수는 1977년 극단 현대극장의 연구생 1기로 배우를 시작했다.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연기의 깊이를 쌓았고, 연기의 폭을 넓혔다. 수많은 연출가와 작업하고, 동료 선후배들과 무대에 서면서 연기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연기자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 오랜 배우 생활을 통해 많은 연출가를 만났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연출가는

아름다운 인연
“지금은 고인이 된 김상열 선생, 최근에 함께 작업한 강영걸 선생 그리고 이윤택 선배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꼈다. 세 분 모두 한 성격하는 인물이고, 색깔이 분명한 연출가들이다.”

- 연기가로서 본 세 연출가의 특징은

“김상열 선생은 늘 공부하라고 하셨다. 왜 배우들은 연출이 생각하는 것을 못하냐며 질타했지만 새로운 생각, 남다른 표현이 왜 중요한지 일깨워 주셨다. 남과 똑같은 표현, 일상적 표현은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 강영걸 선생은

“강 선생은 우리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배우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 왜 아름답고 제대로 된 우리 말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신다. ‘칼맨’, ‘’으로 뒤늦게 함께 작업하게 됐지만 내가 그동안 느꼈던 것과 딱 맞는 이야기를 하신다. 요즘 젊은이들은 말을 대충하고 움직임으로 대신하거나 ‘말 장난’을 하듯이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우리 말 표현법이 자꾸 사라지는데 강 선생을 배우세상에 모셔서 젊은 배우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가르쳐 주십사 부탁했다.”

- 이윤택 연출과는 5년 정도 차이가 난다

“이 선배는 정말 자기 색깔이 분명하다. 손 동작, 걸음걸이 하나까지 자기 스타일로 정확하게 만든다. 배우를 도구로 쓰다시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거의 ‘잡는 스타일’이다. 연출가로서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함께 작업할 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 안에서 나를 살리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어쩌다 연락이 돼 같이 작업하자고 하면 은근 슬쩍 내가 빼는 편이다.”

김갑수는 고(故) 김상열, 강영걸, 이윤택 연출을 통해 연극의 기본 요소인 창의성과 화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김갑수는 연극만 평생할 줄 알았다. 연극을 하다 동갑내기 동료 배우인 현금숙씨와 결혼했다. 1986년 결혼식도 서울 정동의 마당 쎄실극장에서 치렀다. 연극만 하느라 돈벌이가 형편 없을 때는 ‘비디오 가게’를 부업으로 운영했다. 1989년 날 KBS 방송국의 부름을 받고 드라마 ‘역사는 흐른다’에 출연하면서 서서히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지금은 방송이 아주 친숙하다. 시트콤은 물론 ‘기적의 오디션’의 심사위원에 이어 ‘탑 기어 코리아’에선 MC까지 맡고 있다.

-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상의도 없이 연락이 와서 처음엔 당황했다. 캐스팅이 된 것만으로도 좋아해야 할 일인데 TV의 속성을 몰라 ‘왜 마음대로 하냐’고 따졌다. 나름대로 연극계에선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는데도 처음으로 대본 리딩을 할 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땀도 많이 흘렸다. 관객이나 상대 배우를 보며 연기하다 카메라만 보고 연기하는 것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첫 녹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헤매기도 했다. 늘 가던 대로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한참을 걷다 보니 오른쪽이었다.”

그리고 김갑수는 1994년 첫 영화 ‘태백산맥’의 우익 청년 염상구 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연기 잘 하는 배우’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연극, 드라마, 영화에서 모두 통하는 연기자로 거듭나게 됐다.

- 영화 ‘태백산맥’도 연기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드라마처럼 처음엔 적응하지 쉽지 않았지만 연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였다.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전라도 사투리가 입에 익숙하지 않아 애 먹었다. 임권택 감독께서 현장에 가면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등 많이 배려해 주셨다. 잠 자다 파자마 바람으로 총알을 피하며 도망가는 장면은 여름에 시작해 겨울에 끝냈을 정도였다. 논두렁을 맨발로 뛰는데 총알의 불똥이 튀어 아주 혼났다.”

그래도 김갑수는 연극인이다. 1998년 극단 배우세상을 창단해 대표를 맡아 지금까지 ‘창작극’만 고집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에는 한승헌 변호사, 만화가 박재동, 영화배우 염정아 등 100여명의 사회 저명인사가 자신의 이름을 가진 의자를 구입해 기부한 100석 규모의 배우세상 소극장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김갑수는 ‘대학로 사람’이다. 지난 8월에는 ‘마로니에 여름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대학로를 열린 문화의 공간, 다양한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 창의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연극인이 바로 김갑수다.

김갑수가 뽑은 ‘나의 연극 5편’

김갑수는 1977년부터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극단 현대극장 연구생 1기로 들어가 여느 연극인과 마찬가지로 청소나 잡일을 하면서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35년째.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작품을 했다. 연극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 이젠 연극계를 이끌어가는 ‘중늙은이’로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나의 연극 5편’을 이야기한다.

님의 침묵(1984년, 김상열 작·연출, 우리극단 마당) - 오랜 기다림 끝에 연극 배우 김갑수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작품이다. 만해 한용운의 20대부터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다. 원래 선배가 하기로 돼 있었지만 사정이 생겨 대신 역할을 맡았다.

사람의 아들(1987년, 이문열 원작·각색, 하태진 연출, 실험극장) - 1980년 원작자인 소설가 이문열이 직접 각색하고 윤호진 연출로 초연했던 작품을 198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하태진의 연출로 다시 무대에 올렸다. 영사기를 이용한 특수 무대전환 방식을 시도했다.

길 떠나는 가족(1991년,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 극단 현대극장) - 서울연극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천재화가 이중섭의 삶과 작가 정신을 실험성 강한 시도로 주목 받던 30대의 이윤택이 연출했다.

아, 이상(1994년, 조광화 작, 박계배 연출, 극단 서전) - 천재 시인 이상의 삶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부분을 현대적으로 해석, 젊은이들의 못다 이룬 꿈을 따라간다. 이상과 그를 사랑한 기생 금홍이, 후견인 겪이었던 곱추화가 구본웅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의 자화상을 찾아간다.

(2008년, 선욱현 작, 강영걸 연출, 극단 현대극장) -2001년 '미연이 실종사건'이란 극명으로 극단 민예가 초연한 작품으로 그 뒤 '고추 말리기'란 이름으로도 무대에 올랐다. '남아 선호 사상'에 물든 세상을 유쾌하게 비판한다. 연극배우 출신인 아내 현금숙씨는 '삼신할매', 래퍼가 꿈인 딸 아리씨는 '미연'역으로 함께 출연했다. 이창호기자



글=이창호기자 c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