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험전 '여기는 대한민국 1970khz'를 찾은 시민들
'어린이 여러분들의 국민학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의젓한 중학생입니다. 따라서 목욕 요금도 일반 요금 800원을 내야 합니다.

어떤 어린이는 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800원을 받아가지고 와서는 국민학생이라고 속여 400원은 군것질하는데, 이것은 아주 나쁜 일입니다.

우리 대한의 어린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올바르고 참되게 자라야 합니다.

1983년 2월 사단법인 한국목욕업중앙회 성북구 지부'

1980년대 초까지 서울의 목욕탕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일반 요금을 내야 한다는 대목에는 밑줄까지 쫙 쳐놓았다. 1960년대를 시작으로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로 이어진 세월 속에서 우리의 대중문화가 탄생하고, 성장했다. 삶의 공간도 빠른 산업화와 함께 확 변했다.

추운 겨울 교실의 난로 위에 차곡차곡 싸놓았던 양은 도시락, 이 교실 저 교실 고사리 손으로 옮겼던 풍금, '김일 레슬링'을 틀어주는 TV가 있는 만화가게, 아버지의 누런 월급 봉투, 엄마의 빨간 내복…

지금은 어른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일상 속 풍경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전시관1(옛 벨라지오)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 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열리는'여기는 대한민국 1970khz' 문화체험전에 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

외등이 서있는 좁은 골목길은 물론 구멍가게, 연탄가게, 이발소, 문방구, 영화관에다 가정집의 안방까지도 있는 그래도 재현했다. 한 켠에는 당시 인기있던 잡지, LG판, 흑백TV와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 가전제품 등을 따로 정리해 놓았다.

디스크자키(DJ)가 신청곡을 받고, 노래를 틀어주던 음악 다방도 있다. 매일 저녁 7시30분부터는 대한민국의 첫 방송 DJ였던 최동욱, '별이 빛나는 밤에'로 청소년들과 친숙했던 박원웅, '팝스 다이얼'로 명성을 떨친 인기 DJ 김광한이 직접 들려주는 그 시절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집·학교·동네라는 제한된 공간을 소개하던 '그 때를 아십니까'식의 기획을 다방과 영화관 등 시내의 문화 시설까지 확장했고, 낮에만 머물던 일상의 시간도 밤까지 연장하면서 도시 생활의 변화와 대중문화의 발전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김승근 전시감독은 "우리의 근·현대가 어둡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다시 보고 싶은 시간임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다"며 "지난 세월도 젊고 밝은 에너지가 있는 긍정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복고(復古)'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임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제의 흥(興)을 오늘의 락(樂)으로 진화시키면서 아련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이창호기자 ch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