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전략공천 1호 故김근태 부인 인재근그동안 지역구 관리 앞장 '김근태의 바깥사람'수배중이던 1977년 지인 소개로 서로 만나 부부보다는 '동지'

"앞으로 그의 뜻, 그의 정신을 이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족 통일 정기 이어가는데 앞장서고자 한다. 출마해서 반드시 승리하겠다"

작고한 남편의 지역구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인재근 한반도재단 이사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인 이사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 소식을 알렸다. 인 후보는 "이 자리에 김근태 의장이 있어야 하는데 혼자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며 "그렇지만 그가 남긴 유언, '2012년을 점령하라'를 실천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고 출마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앞으로 그의 뜻, 그의 정신을 이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족통일을 앞당기는데 앞장서려고 한다"며 "19대 총선 도봉갑에 출마해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민주통합당은 전략공천 1호로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에 김 고문의 부인 인재근 후보를 선정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최고위회의에서 "고 김근태 의장님의 부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인재근 여사를 전략공천 1호로 모셨다"고 밝혔다. 이어 "인 여사는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정신을 이어서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총선 승리를 이끌어낼 장본인"이라며 인 이사장의 출마를 환영했다.

"부인이 영향력 크다"

민주통합당 전략공천 1호인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 여사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이인영 최고위원과 포옹하고 있다.
도봉갑은 인 후보의 남편인 고 김근태 의장이 1996년 15대 총선부터 내리 3선을 했다가 지난 18대 총선에서 신지호 새누리당 의원에게 패배해 넘겨줬던 지역구다. 인 후보는 장관, 당 대표 등 중앙정치에 나서며 바쁜 일정을 보냈던 김 고문 대신 도봉갑의 민심을 잘 관리해왔다는 평을 듣는다. 지역구 내에서는 "얼굴 한번 보기 힘든 김근태보다 부인(인재근 후보)이 더 영향력이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평판이 좋다.

2008년 총선 당시 정치신인이었던 신 의원이 당시 한나라당의 수도권 압승 분위기와 뉴타운 추진 공약을 등에 업고 당선됐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분석이 많다. 도봉갑 자체가 워낙에 야당 성향이 강한 데다 작고한 남편 대신 나오는 인 후보에 대한 동정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 내에서 도봉갑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 고문이 병상에 누워있으며 앞날이 불투명할 때도 "김근태의 지역구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얘기될 정도다. 지역의 민심, 민주통합당 내의 인정 등 모든 면이 "도봉갑에서 남편의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는 인 후보의 출마의지를 북돋고 있다.

대학때부터 민주화 운동

1953년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난 인재근 후보는 인일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들어가 민주화운동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인 후보는 이화여대 재학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졸업 후 노동운동을 위해 부평에 위치한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이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노동상담간사, 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민가협) 초대 총무,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서민통) 의장 등을 역임하며 군사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민주통합당 손학규 전 대표 당 지도부와 고 김근태 상임고문 부인 인재근씨 등 유족이 지난 16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모란공원에서 김 상임고문 49재를 올리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일어난 김근태 의장의 고문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 외신을 통해 진실을 폭로하고 세계인권단체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인 후보는 1987년 남편과 함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인 후보는 이후에도 사단법인 사랑의친구들 운영위원장, 밝은청소년지원센터 이사,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고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셍터연합회 고문, 한반도재단 이사장 등 수많은 사회현장에서 왕성하게 대외활동을 해왔다.

인 후보를 부르는 별칭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김근태의 바깥사람'이다. 1990년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 관련 집회에서 자신을 '김근태 의장 안사람'이라고 소개한 임종철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장에게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김근태 의장)이 안사람이고 나는 바깥사람 아니냐"라고 말한 이후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진영에서는 인 후보를 '밖에서 뛰는 김근태' 혹은 '김근태의 바깥사람'이라 부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말을 배우고 가장 많이 한 말이 아마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일 것이라고 스스로도 말할 정도로 꾸준히 현장을 지켜왔던 인 후보는 김 의장이 수감 중에 있을 때 정치권의 출마제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 후보는 "내가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면 마음이 고운 남편은 분명 외조를 선택할 것"이라며 "더 큰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방해할 수는 없다"라고 거절했다고 전한다.

첫인상은 서로 반대

인재근 후보가 김근태 의장을 처음 만난 것은 두 사람 모두 수배 중이었던 1977년이었다. 두 사람을 소개해준 것은 장명국 내일신문 사장-최영희 민주통합당 의원 부부였다. 김 의장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인 장 사장과 인 후보 과선배인 최 의원의 집이 첫 만남장소였다. 장 사장-최 의원 부부는 인 후보에게 "서울대를 나와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 좋은 신랑감"이라며 김 의장을 소개했다고 한다.

지난 1988년 11월 2일 서울고법 형사3부에서 있을 고문사건 관련 대질심문을 위해 김근태씨가 부인 인재근씨와 함께 심문실로 들어가고 있다.
첫 만남 당시 두 사람이 느낀 서로의 첫인상은 정반대였다. 인 후보가 김 의장을 보며 '시대에 짓눌린 어두운 그림자'의 인상을 받은 반면, 김 의장은 인 후보에게서 '어두운 시대를 날려버릴 듯한 명랑하고 쾌활한 웃음'을 보았다. 그럼에도 인 후보는 "약간 우울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적어 내가 앞으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 점수를 많이 줬다고 한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에게 갖게 되는 동질감을 느꼈음도 물론이다.

인 후보와 한두 번 횟집에도 가고 함께 걷기도 하며 데이트를 즐겼던 김 의장은 광나루에 있는 민물매운탕집에서 프러포즈를 한다. 술을 잘 못하는 김 의장은 매운탕 한 그릇을 시켜놓고는 망설이지도 않고 소주 몇 잔을 연거푸 마신 다음 고백을 감행했다. 김 의장은 평소답지 않은 어법으로 "나랑 결혼하자. 그렇지 않으면 어디든 도끼를 들고 쫓아가겠다"라고 고백했고 인 후보는 이를 받아들였다.

인 후보에 따르면 프러포즈 전 두 사람에게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여의치 않은 상황과 상대에 부담스러웠던 인 후보가 '이제 그만 만나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거절의 마음을 품고 마지막으로 함께 영화를 보던 중 김 의장의 코에서 코피가 나는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마음이 약해진 인 후보는 결국 그날 이별통보를 못 하고 결혼까지 골인했다는 후문이다.

도피 중이었던 두 사람은 인 후보의 식구들만 모여서 식사하는 정도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1978년 결혼생활을 시작한 이후 청소와 이부자리 정리는 김 의장이, 설거지와 음식은 인 후보가 맡는 식으로 공동의 삶을 만들어 갔다. 이듬해에는 첫 아이인 김병준씨를 낳는 기쁨도 누렸다.

10ㆍ26 이후 자유의 몸이 된 두 사람은 1980년 4월 2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흥사단에서 다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두 사람이 평생의 스승으로 여기던 변형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맡았다. 짧지만 행복한 부부생활은 1985년 김근태 의장의 구속 이후 잠시 중단됐다. 1983년부터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 의장으로 있던 김 의장이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 조종 혐의로 연행된 것이다. 김 의장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3일 동안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가혹한 고문을 당한 뒤 수감됐고 이 일로 인재근 후보는 또다시 긴 투쟁의 현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고문 사실 외신에 폭로

고문 뒤 송치된 김 의장은 인 후보에게 자신이 고문당했음을 알리고 전기고문을 받아 검게 탄 뒤꿈치 상처 딱지도 보여줬다. 인 후보는 그날 바로 당시 민주화 인사들이 많이 모이던 목요기도회에 참석, 고문사실을 폭로했고 민청련 중앙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성명서를 만들어 이튿날부터 기독교회관 인권위원회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언론통제가 심한 시절이었던 탓에 외신을 이용해 국내 언론들이 그것을 받아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인 후보는 구속자 가족들을 모아 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민가협)를 창립하기도 했다. 민가협은 당시 수배받던 자식들이 사라져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머니들의 결집소로 기능, 이후 민주화운동의 큰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대찬 인재근, 2012년 점령할 수 있을까?

인재근 후보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88년 재판 당시 김 의장을 고문했던 경관들 중 하나인 김희연 실장이 재판 이후 김 의장에게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당시 당황하던 김 의장 대신 인 후보가 김 실장의 얼굴에 침을 뱉고 정강이를 발로 차버렸다는 후문이다. 수감 중이던 김 의장이 "남편 노릇을 못하는 형편이니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도 좋소"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을 때 "웃기고 있네"라고 답장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정계에서는 대찬 성격의 인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신지호 의원의 현역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민심에서 크게 앞선다는 평이다. 오랫동안 김 의장과 함께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에 대한 꿈을 꿔왔다는 인 후보가 19대 총선에서 두 사람의 꿈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부부 정치인 누가 있나
박정수-이범준 박철언-현경자 미국선 클린턴 부부 유명

인재근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민주통합당 전략공천 1호로 선정되며 남편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지역구에 출마할 것이 확실시되며 '부부의 정계진출'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해외의 경우 부부가 함께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배우자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꼽을 수 있다. 퍼스트레이디의 표본으로 불리는 힐러리 장관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정치인으로서 최고의 주가를 구가하고 있다.

국내에도 부부 정치인들이 있다. 국내 1호 부부 국회의원인 고 박정수 전 외교통상부장관(제10, 11, 13, 14, 15대 국회의원)-고 이범준 전 성신여대 교수(제9대 국회의원) 부부,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장관(제13, 14, 15대 국회의원)-현경자 전 의원(제14대 국회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부부가 동시에 국회의원이 된 사례도 있다. 최규성 의원(제17, 18대 국회의원)-이경숙 전 의원(제17대 국회의원)이 그들이다. 당시 최 의원은 경선을 거쳐 지역구 후보로 나섰고 이 전 의원은 비례대표 안정권을 배정받아 동시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재야운동과 여성운동을 함께 해 오면서 부부 평등을 실천해온 '동지' 관계라는 점에서 김근태 의장-인재근 후보 와도 비슷하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