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이 17일간의 대회일정을 모두 마치고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당초 설정했던 10-10(금메달 10개 이상-종합순위 10위 이내) 목표를 초과 달성하며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총 28개)로 종합 5위에 올랐다. 종합 순위로는 안방에서 열렸던 88 서울올림픽(종합 4위) 이후 최고의 성적이었고 13개의 금메달 또한 역대 최다였던 2008 베이징올림픽(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 종합 7위) 때와 동률을 기록했다.

원정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의 일등공신은 지난 4년간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해왔던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선수들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다. 기업인에서 체육인으로 탈바꿈한 박 회장이 우리나라 체육계를 이끌기 시작한 이후 연이어 좋은 소식이 들리고 있다.

대한체육회 맡은 이후 승승장구

우리나라의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 레이스는 대회 초반 사격, 양궁이 앞에서 끌고 유도와 펜싱이 허리를 든든히 받친 뒤 종반에는 레슬링, 체조, 태권도가 마무리하며 이뤄졌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임원 129명, 선수 245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선수단을 이끌며 목표 초과 달성을 이끌었다.

대회 메달리스트들이 지난 9일 6.25 참전 용사비가 있는 런던 시내 세인트 폴 대성당을 찾아 참배한 후 박용성 회장이 박태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 선수단은 6.25 전쟁 당시 참전한 우방 영국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성당을 찾았다.
박 회장은 올해 초부터 10-10 목표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며 포부를 밝혀왔다. 박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런던올림픽에서 반드시 세계 10위 내의 성적을 거둬 한국스포츠의 위용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떨치겠다"고 일갈했고 지난달 20일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이 출국하는 인천공항에서도 "대진운과 당일 컨디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금메달) 10개 이상을 따서 10위 안에 들겠다"고 선전을 다짐했다.

박 회장은 단순히 목표만 세우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선수단을 위해 갖은 사전작업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올림픽조직위원회가 배정한 선수촌 대신 런던의 한 대학을 통째로 빌려 자체 트레이닝 캠프를 차린 것이 대표적이다. 주방과 식당, 100여개의 방을 우리나라가 단독으로 사용하며 선수들이 충분히 연습에 매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원에 힘입은 선수들이 결국 목표를 초과 달성하게 되면서 박 회장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게 됐다.

대한체육회장으로서 박 회장의 다짐했던 목표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는 박 회장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박 회장은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될 때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목표를 세우고 총력을 기울여왔다. 오랫동안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 위원으로 활동했던 박 회장은 그동안 쌓은 인맥과 노하우를 동원, IOC 위원들을 비롯한 국제 체육계 인사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필요성을 설득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목적으로 지출했던 180일 이상의 해외 출장 비용을 대한체육회 예산이 아닌 사비로 냈고, 부족한 유치활동비를 개인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만 71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박 회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2012 런던올림픽 목표 초과 달성 등 벌써 여러 차례 괄목할 성과를 내왔다. 매년 들려오는 희소식에 체육계에서는 박 회장이 대한체육회를 맡은 이후 우리나라 체육계의 숙원이 하나하나 풀리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 4월 장학금 3억원을 모교인 중앙대에 또 기부한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가운데),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왼쪽), 안국신 중앙대 총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업인에서 체육인으로

1940년에 고 박두병 씨의 3남으로 태어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69년 뉴욕대 MBA를 마친다. 1974년 두산식품 전무이사를 맡으며 기업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박 회장은 1984년 동양맥주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해 두산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를 거쳐 2005년 마침내 두산그룹 회장에 오른다. 현재는 대한체육회장과 함께 두산중공업 회장, 중앙대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박 회장이 체육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82년 대한유도협회 부회장을 맡으면서부터다. 1981년 88 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되자 정부는 기업인들에게 주요 경기단체장들을 나눠 맡겼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레슬링,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양궁을 맡는 식이었다. 대한유도협회는 배종렬 전 한양그룹 회장이 맡았었는데 해당 기업이 어려워지자 박 회장에게 돌아왔다.

박 회장은 1986년 대한유도협회장에 이어 1995년 국제유도연맹 회장에 선출됐고 체육계에 진출한 지 20년 만인 2002년에는 IOC 위원에 오르는 등 체육인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박 회장은 IOC 위원을 지내던 2005년 두산그룹 분식회계 사건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을 선고받고 2006년 3월 IOC 윤리위원회에서 자격 정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고 4월에는 IOC로부터 최종 면죄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그 해 9월 국제유도연맹 회장직과 IOC 위원직을 동시에 내려놨다.

박 회장은 지난 2009년부터 대한체육회를 맡으며 우리나라 체육계를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이 대한체육회장에 도전했던 것은 체육인으로서 받았던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였다고 해석된다. 박 회장은 선거 기간 내내 "재벌 총수가 체육회장을 겸임하기 어렵다"는 공격을 받았지만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은 5년 동안 상공회의소로 출퇴근하며 두산에 일이 있을 때만 잠깐 다녀오는 식으로 처리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결국 선거에서 과반수(50표 중 26표)를 넘긴 박 회장은 2013년 2월까지 제37대 대한체육회장을 맡게 될 예정이다.

구설에 휘말린 '미스터 쓴소리'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기존의 목표를 초과 달성했던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지만 심한 구설에도 휘말리고 있다. 대회 초반 조준호(유도), 신아람(펜싱)의 판정번복 및 오심 사건에 휘말리며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맞은 것이다. 박 회장 본인조차 "사흘 동안 평생 들어본 욕의 열 배는 들었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유도 남자 66kg 이하급 8강전에서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와 맞대결을 펼친 조준호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준결승에 진출하는 듯했다. 그러나 경기 직후 일본출신 심판위원장인 후안 바르코스가 심판진을 불러모은 뒤 무엇인가를 지시, 판정이 번복됐다. 억울해하는 선수와 감독은 거세게 항의했지만 국제유도연맹 회장 출신의 박 회장은 "조준호의 경우 오심 사건이 아닌 오심정정 사건"이라는 뚜렷한 입장을 취하며 심판 판정에 승복했다.

펜싱 여자 에페 준결승전에서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을 맞아 5-5의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던 신아람은 프리오리테(어드밴티지)를 선언 받아 연장 1분 동안 득점이 없으면 결승에 진출하는 유리한 상황을 맞았다. 상대의 공세를 잘 막아내며 1분을 버티던 신아람은 경기 종료 1초를 남겨 놓고 심판이었던 바바라 차르가 3번이나 경기를 재개하는 바람에 결국 득점에 당했다. 우리나라 측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긴급회의에 들어갔던 심판진은 결국 신아람의 패배를 선언했다. 대한펜싱협회와 신아람은 오심에 항의해 3~4위전 출전을 거부하려 했지만 박 회장은 출전을 종용했다.

지난 11일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한국선수단의 밤'에서 박 회장은 "그동안 참고 있던 것은 눈이 쏟아지는데 쓸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 회장은 신아람 오심 사건에 대해 "규정상 선수가 심판에게 항의해야 하는데 기회를 놓쳤다"며 "만약 (3~4위전에) 출전하지 않았다면 신아람은 블랙카드를 받고 단체전 출전을 못 하는 것은 물론 이번 대회 성적이 몰수될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3~4위전에 나가지 않을 경우 펜싱협회 관계자들은 스포츠중재재판소로 간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규정은 없다"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조준호 판정번복 사건에 대해서는 "분명한 오심정정 사건"이라며 국제유도연맹의 입장을 지지했다.

체육계에서는 가감 없는 직설화법으로, 재계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박 회장이 너무 객관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박 회장이 말은 직설적으로 할지라도 실제로 대한민국 선수단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태환 실격번복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예선 당시 박태환은 3분46초68의 기록으로 예선 3조 1위로 들어왔지만 전광판에는 '실격' 처리됐음이 발표됐다. 박태환이 예비구령과 스타트 신호 사이에 정지해야 하는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 국제수영연맹의 주장이었다. 이에 박 회장은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부당함을 지적하고 비디오와 각종 참고자료를 확인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박태환은 실격번복 처리를 받았고 은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다.

대한민국 체육계 바꿀까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이상 남은 6개월은 큰일을 벌이지 않고 쉽게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박 회장은 남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 체육계를 탈바꿈시키기 위해 더욱 동분서주할 전망이다.

우선 박 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언급해왔던 체육계의 새판 짜기에 집중할 계획이다.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와 새로 뽑힌 대한체육회장이 일을 시작하는 시기가 맞물리게 된 기회를 맞아 지난 정부부터 10년째 옛 틀을 이어온 정부의 체육정책을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엘리트체육은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은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체육은 국민생활체육회가 맡고 있는데 박 회장은 이처럼 분할된 체육행정을 하나로 통합하는 체육부나 체육청을 신설하기 위해 대선후보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회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남의 잔치'로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 다양한 선수육성책을 내놓고 있다. 박 회장의 대한체육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손잡고 동계스포츠 지원책인 '드라이브 더 드림'(Drive the Dream)을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오는 2018년까지 총 5,500억원을 투자해 스키와 스노보드, 봅슬레이 등 모든 종목에서 고른 성적을 거둘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박 회장은 멀티트레이닝센터 건립을 통한 상시 훈련환경 구축, 훈련의 과학화 지원, 글로벌 선수 인재 양성을 위한 선진 교육 기관 입학 지원 및 해외 지도자 초청 강습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대 이사장 맡아 파격적 개혁
● 교육인 입지도 굳혀

기업과 체육 양쪽에서 입지를 탄탄히 굳힌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또 하나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중앙대 이사장 직함이다. 박 이사장이 중앙대 이사장직을 맡게 된 것은 '형제의 난' 이후 실추된 두산가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는 후문이다.

박 이사장은 2008년 6월 중앙대 신임 이사장에 선임됐다. 당시 박 이사장은 "앞으로 2만5,000여명의 학생들과 교수진, 이사회를 중심으로 창조적 연구와 교육 수월성 측면에서 세계 수준의 명문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든 열정을 바치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또한 중앙대에 기업의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교수, 학생, 교직원 모두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박 이사장은 자신이 공언한 바대로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인 정책을 폈다. 박 이사장은 취임 두 달 후 중앙대 전체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총장 선거 간선제 전환, 성과주의에 기반한 연봉제 시행, 강력한 학문 단위 구조조정, 학생들의 엄격한 상대평가 등의 개혁 구상안을 발표했다. 이후 박 이사장은 개혁안에 따라 국내대학 최초로 중앙대 교수 전원에 대한 연봉제를 실시해 임금을 차등 지급하고 학생들에게는 복수전공을 의무화하는 등 개혁 정책을 폈다. 물론 모기업인 두산그룹을 통해 중앙대의 재정과 시설 확충을 지원하는 당근책도 폈다.

박 이사장 취임 이후 끊임없는 경쟁을 담보하는 파격적인 정책들에 불만을 제기한 교수 및 학생들의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새로 구축했던 혁신적 경쟁시스템들이 대부분 안정되면서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인, 체육인을 넘어 교육인으로서도 인정받고 있는 박 이사장의 이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