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52) 감독이 영화 '피에타'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김 감독이 최초다. 또 세계 3대 영화제(베니스ㆍ칸ㆍ베를린)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것 역시 김 감독이 처음이다. 그의 작품성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김 감독은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베니스영화제에서 '피에타'를 선택한 모든 이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아리랑'을 불렀다.

김 감독의 수상 소감과 뜻밖의 노래 '아리랑'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김 감독은 '피에타'를 통해 그의 영화세계에 한 정점을 이룸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의 분기점에 섰다. '아리랑'은 그의 굴곡진 영화인생을 상징하면서 그것에 담긴 함의는 그러한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은유한다.

최초 3대 영화제 정상에

김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수상을 통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됐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왕도'를 걸어온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잡초 같은 인생 속에서 꽃을 피운 경우다. 김 감독 스스로도 자신을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그가 살아온 인생사를 잘 대변하는 말이다.

김 감독은 1960년 경상북도 봉화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경기도 일산에서 가족의 벼농사를 도우며 유년기를 보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단추공장, 폐차장, 전자공장 등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피에타'의 배경이 되는 장소인 청계천이 그의 일터였다.

이후 김 감독은 해병대에 자원입대 해 하사관으로 5년간 복무한 후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무작정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술을 배워본 적 없는 그는 대학로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프랑스 남부의 한 해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림을 등에 짊어지고 유럽 전역을 돌며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단아' 해외서 승승장구

그런 김 감독이 영화를 하기로 결정한 건 그가 32살이 되던 해다. '양들의 침묵', '퐁뇌프의 연인들'등의 영화를 보면서 막연한 꿈을 키웠다. 영화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김 감독은 무작정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5년 '무단횡단'이란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에 당선됐다.

김 감독은 그로부터 1년 뒤인 1996년 '악어'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의 영화는 항상 논란의 중심이 됐다. 폭력이나 성폭행, 엽기적인 행위 등 지나치게 극단적인 묘사가 문제였다. '이단아'나 '괴물' 같은 말들이 늘 김 감독을 따라다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1998년 '파란 대문'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된 데 이어 2000년 '섬'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김 감독의 영화는 국내외에서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이후 김 감독의 거침없는 행보가 시작됐다. 2000년 '실제상황'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어 2001년엔 '수취인불명'과 '나쁜 남자'가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과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각각 초청됐다.

김 감독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2003년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이어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5년엔 '활'로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초청됐으며 2007년엔 '숨'으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국내 반응은 '싸늘'

시상식 때를 비롯 시종일관 구겨 신고 다녔던 낡은 운동화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가 입은 개량한복도 인사동에서 200만원을 주고 사 입었다고 밝혔다. 평범을 거부하는 캐릭터가 옷차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처럼 김 감독은 해외 영화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온도는 달랐다. '나쁜 남자'를 제외하고는 국내 관객들의 관심이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활'은 개봉관을 찾지 못해 단관 형식으로 개봉됐고, 2006년 '시간'은 개봉 직전 배급사가 나타나 겨우 개봉할 수 있었을 정도다.

그러던 2008년 김 감독 시나리오의 '영화는 영화다'가 130만 관객을 동원하며 최대 흥행기록을 갱신하며 반전을 맞았다. 그러나 이는 김 감독의 영화 인생에 개운치 않은 악재가 됐다. 제자인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이 대형 배급사와 손을 잡으면서 자신을 떠났기 때문이다.

큰 배신감을 느낀 김 감독은 이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무려 3년여에 걸쳐 강원도 홍천의 움막에서 칩거했다. 이후 김 감독은 작년에 조감독과 벌어졌던 사건, 배신 등을 담고 있는 영화 '아리랑'을 들고 세상으로 나왔다. '아리랑'은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그리고 김 감독은 자신의 18번째 영화인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면서 영화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피에타'는 악마 같은 남자 강도(이정진 분) 앞에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조민수 분)가 찾아온 뒤 점차 드러나는 잔인한 비밀에 대해 그린 작품이다.

왕성한 소통, 차기작은

김 감독은 현재 3년 간의 공백을 단숨에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리랑'에 이어 '아멘', '피에타'를 연달아 촬영했고, 제작자로 나서는 '배우는 배우다'도 작업이 한창이다. 창작욕을 불태우던 과거와 비슷하다.

작품 활동뿐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에도 양팔을 걷어붙였다. 영화가 나오면 으레 진행되던 제작발표회를 열지 않던 그는 '피에타'를 들고 관객과 언론들 앞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김 감독은 그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도 전했고 다양한 질문에 솔직한 답변을 이어갔다.

TV 프로그램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KBS 2TV '두드림'과 SBS TV '강심장',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등에 출연해 자신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과거 언론과 원만치 않은 관계를 유지해 온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미래를 기다리지 않으며, 현재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는 김 감독. 이젠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흔들리지 않겠다는 깊은 확신에 찬 모습이다. 김 감독은 향후 어떤 작품을 들고 영화계로 돌아올까. 영화 팬들의 관심이 바로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김기덕 감독 연보

1960년 경북 봉화 출생

1990~93년 프랑스 유학 서양화 작업

1995년 '무단횡단'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1996년 '악어'연출 = 스웨덴국제영화제 초청

1997년 '야생동물보호구역'연출 = 밴쿠버국제영화제 초청

1998년 '파란대문'연출 =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등 초청

1999년 '섬'연출 =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상,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초청, 브뤼셀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상

2000년 '실제상황'연출 =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초청

2001년 '수취인불명'연출 =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

2001년 '나쁜 남자'연출 =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대상, 국내 70만 관객 동원

2002년 '해안선'연출 =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 국제평론가협회상,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넥팩(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200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연출 = 산세바스티안영화제 관객상,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넷팩상, 선댄스영화제 초청, 방콕국제영화제 초청, 대종상 작품상, 청룡영화상 작품상

2003년 '사마리아'연출 =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감독상)

2004년 '빈집'연출 =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부산국제영화제 넥팩상

2005년 '활'연출 =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

2006년 '시간'연출 =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 판타스포르토국제판타스틱영화제 남우주연상(하정우)

2007년 '숨'연출 = 칸국제영화제 초청

2008년 '비몽'연출 = 브뤼셀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오비트(Orbit) 부문 최우수상(2009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

2008년 '영화는 영화다'제작 = 국내 130만 관객 동원

2008년 '아름답다'제작 =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

2011년 '아리랑'연출 =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수상, 뉴호라이즌영화제 작품상

2011년 '아멘'연출

2011년 '풍산개'제작 = 국내 71만 관객 동원

2012년 '피에타'연출 =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피에타' 해외 배급사들 잇단 러브콜
20여 개국 개봉 계획 계약 완료

김기덕 감독에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겨준 영화 '피에타'가 해외에서 찬사와 러브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피에타'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해외에서부터 일었다. 먼저 '피에타'는 지난 3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스 상영 후 기자들로부터 10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비공식 언론 시사회에서 10여분에 걸친 기립박수가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였다.

열기는 공식 상영 때도 이어졌다. 당시 해외 영화 팬들은 '피에타'를 보기 위해 상영관의 1,032석을 가득 메웠다. 공식 상영을 위해 유럽 관객들 사이에서 표 대란이 벌어졌을 정도라는 후문이다. 특히 공식 상영 후에도 10여 분간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외신들도 호평을 쏟아냈다. 로이터 통신은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를 뒤흔들다'라는 타이틀로 영화에 대한 극찬을 쏟아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데일리 매거진인 'Venews'도 '피에타'를 잡지 전면에 소개해 눈길을 끌었고, 할리우드 리포트 역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피에타'는 현재 해외배급사들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현재 러시아의 Maywin Films, 노르웨이의 AS Fidalgo, 터키의 Bir Film, 홍콩의 Edko Film, 그리스의 Ama Films 등 세계 20여 개국의 배급사들과 올 하반기, 내년 상반기 개봉을 계획하며 계약 체결을 완료했다.

여기에 '피에타'는 한국에 이어 이탈리아, 독일에서도 극장 개봉을 확정지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작임을 입증했다. 특히 북미 영화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불리는 제37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마스터즈' 부문에 초청돼 더 많은 판매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문재인의 국민 되고 싶다" 공개 지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지난 10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공개 표명했다.

김 감독은 이날 '축하해 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김기덕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국내 언론사들에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의 수상을 축하해준 각계 인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특히 문재인 후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강조했다.

그는 트위터로 축하 메시지를 올린 유명 인사들을 거론한 뒤 "그중에서 특히 진심이 가득 담긴 감동적인 긴 편지를 보내주신 문재인님의 편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특히 건강한 수평사회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말씀과 연말에 아리랑을 부르고 싶다는 말씀은 뭉클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개인적으로 문재인님이 고름이 가득 찬 이 시대를 가장 덜 아프게 치료하실 분이 아닐까 생각하며 문재인의 국민이 되어 대한민국에 살고 싶다"고 밝혔다.

김 감독의 이런 메시지에 문 후보도 화답했다. 문 후보는 지난 11일 자신의 트위터(@moonriver365)를 통해 "감사합니다. 김 감독님이 바라는 수평사회는 제가 만들고 싶은 대한민국입니다. 국민의 문재인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