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를 잘해서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쓰이는 이 속담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교육수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교육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5일 발표한 ‘대학 진학 격차의 확대와 기회형평성 제고방안’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 수도권과 지방 간의 등급 격차가 커졌고 심지어 서울 내에서도 강남ㆍ서초 등 잘사는 지역의 수험생들이 눈에 띄게 좋은 성적을 받았다.

교육전문가들은 공교육 진영에서 자구책으로 마련한 방과후학교만으로는 교육양극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취약계층 학생들의 성적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은 결국 부유층 학생들이 이용하는 고액 사설학원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취약계층 학생들에겐 단순 학업지도가 아닌 상대적 박탈감을 보듬어주는 인성교육이 더욱 필요하다. 서울ㆍ경기지역 5개 학교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씨드스쿨(Seed school)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재능계발 위한 교육

씨드스쿨은 기독경영연구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좋은교사운동, 한국리더십학교,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한빛누리재단 등이 힘을 모아 만든 대한민국교육봉사단(이하 대교단)에서 2009년 만든 프로그램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명확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대교단은 취약지역에 위치한 학교를 선정, 교장을 비롯한 전 교사들의 동의를 얻은 이후 교사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씨드스쿨을 진행한다.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대학생 교사들은 3박4일의 워크숍을 통해 전문적인 멘토링 교육을 받는다.

씨드스쿨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일반적인 학습지도가 이뤄지지 않는다. 대신 일대일 멘토링, 팀티칭 등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재능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생 개개인의 장래 로드맵을 그리고 사회 유명인사로 구성된 역할모델들을 인터뷰하는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출범 당시 덕양중학교에서 시작된 씨드스쿨은 현재 모현중학교, 창곡여자중학교, 북서울중학교, 신안중학교 등 5개교로 확대됐다. 일주일에 한 번 5시 30분에서 8시 30분까지 모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당일 일정을 모두 마친 후에는 대학생 교사들이 학생들의 귀가까지 책임진다. 대학생 교사들은 프로그램이 없는 날에도 학생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일대일 관계를 맺는다.

1년 과정으로 인생관 변해

학업지도를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씨드스쿨의 성과는 객관적인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씨드스쿨에 참여한 대학생 교사, 학생들의 얼굴과 행동의 변화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봉사활동 점수를 받기 위해 참여한 대학생 교사들은 학생들과 만나면서 인생관 자체가 변하는 경험을 했다고, 상대적 박탈감ㆍ소외감에 시달리던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찾고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웠다고 각각 입을 모았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경험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조진석 씨드스쿨 운영본부장은 “심지어 등교거부를 하던 아이들도 씨드스쿨에는 꼬박꼬박 출석할 정도로 호응도가 좋았다”며 “학업지도가 아닌 인생지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씨드스쿨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우창록 대한민국교육봉사단 이사장 인터뷰

법무법인 율촌의 대표변호사로 잘 알려진 우창록 변호사는 대한민국교육봉사단의 이사장 직함도 가지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 감사, 한민족복지재단 이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등을 지내며 복지에 대한 관심을 키워온 우 이사장은 2009년 대한민국교육봉사단을 만들고 ‘나눔과 동행을 통한 변화’라는 구호 아래 씨드스쿨을 시작했다. 법무법인 율촌 회의실에서 만난 우 이사장은 강한 어조로 씨드스쿨의 취지와 미래상에 대해 얘기했다.

-어떻게 대한민국교육봉사단과 씨드스쿨을 시작하게 됐나?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라는 시민단체의 이사장으로 있을 당시 젊은 사람들이 좀 더 열정을 갖고 시작할 아이템이 필요했다. 이에 여러 단체들이 오랫동안 함께 논의한 끝에 씨드스쿨을 만들게 됐다.”

-씨드스쿨에 대한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이미 여러 학교들이 씨드스쿨을 하고 싶다고 제안해온 상태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봉사하는 대학생들이 많이 필요한데 이를 어떻게 충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부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의 경우 봉사활동에 따른 이득이 없으면 모집하기 어렵지 않을까.

“일부 기업에서 하는 것처럼 돈을 주고 대학생들을 모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국장학재단과 MOU를 체결, 씨드스쿨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장학요건을 채우는 방법 등을 계획하고 있다. 그밖에 사회 유명인사들의 멘토링 같이 대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들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기업후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어떻게 되나.

“한 학교에서 1년간 씨드스쿨을 진행하는데 2,000만원 정도 드는 터라 기업후원이 꼭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기업과 학교를 직접 연결하는 방법, 이를테면 ‘덕양중학교 삼성 씨드스쿨’ 등의 형태로 진행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마지막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씨드스쿨은 출범한지 3년밖에 안됐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TFA(Teach For America) 못지않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재정적인 지원과 인적 자원이 결합되면 우리나라에서 더욱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 인적 후원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 동참했으면 좋겠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