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방한하는 아웅 산 수 치박근혜 당선인 만나고 5·18묘지 참배 예정15년 가택연금 이겨내고 현실정치 입문 "대통령 되겠다"민주화 완성 위한 행보 세계의 이목 집중돼

'더 레이디(The lady)'.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당초 군사독재정권이 수 치 여사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게 막은 까닭에 붙여진 별칭이지만 현재는 그녀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버마 국민들이 부르는 애칭이 됐다.

버마 '민주화의 꽃'으로 상징되는 '더 레이디' 수 치 여사가 29일 방한한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수 치 여사의 방한 기간 전 세계의 이목이 우리나라에 쏠릴 전망이다. 15년의 가택연금을 견뎌내고 지난해 마침내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수 치 여사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만남을 가질지 주목된다.

버마의 공식 국명은 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이다. 그러나 본 기사에서는 대상인 수 치 여사의 뜻을 따라 버마라는 국명을 썼다.

박근혜 만나고 광주 명예시민증도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한국 방문은 '2013 평창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이하 스페셜올림픽) 개막식 초청으로 이뤄졌다.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수 치 여사는 29일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고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다. 이튿날 저녁부터는 광주를 방문,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환영오찬에 참석해 명예 광주시민증을 받을 예정이다. 출국일인 내달 1일 서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로 돼있다.

수 치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더 레이디>
지난해 관심을 모았던 수 치 여사의 유럽과 미국 방문 등을 미루어볼 때 이번 방한으로 전 세계인의 시선이 한국에 쏠릴 전망이다. 특히, 수 치 여사와 마찬가지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지도자인 박 당선인과의 만남은 많은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평화와 버마의 민주화 증진 방안 등 다양한 논의들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버마 '민주화의 꽃'인 수 치 여사가 우리나라 민주화의 성지인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하고 명예 광주시민이 되는 것도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광주시 측은 "버마의 민주화에 이바지한 수 치 여사의 삶은 민주ㆍ인권ㆍ평화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한다"고 반겼다. 수 치 여사는 지난 2004년 5.18 기념재단으로부터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학자이자 엄마로 평범한 삶

아웅 산 수 치 여사는 1945년 6월 19일 버마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아웅 산 장군과 그의 아내 킨 치 사이에서 고명딸로 태어났다. 수 치 여사의 이름은 아버지 아웅 산과 할머니 수, 어머니 치의 이름을 골고루 따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수 치 여사가 두 살이 됐을 때, 버마의 독립을 획득한 아웅 산 장군은 정부가 구성되기 직전 정적에 의해 암살됐다. 투명한 삶과 방대한 업적으로 암살 이후에도 버마의 국민영웅으로 자리잡은 아웅 산 장군의 유족들 또한 영웅으로 치켜세워졌다. 수 치 여사의 어머니인 킨 치 여사 또한 1962년 네 윈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기 전까지 중앙 정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해 4월보궐선거에서수치여사의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양곤 소재 NLD 당사 앞에 모여 환호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수 치 여사는 1960년 인도 대사로 부임하게 된 어머니를 따라 인도로 건너갔다. 네 윈이 일으킨 군사쿠데타로 버마가 군부독재정권으로 바뀌며 수 치 여사는 망명 아닌 망명상태로 외국을 떠돌아야만 했다.

수 치 여사는 15세에 영국 유학을 떠나 옥스퍼드대에서 정치와 경제, 철학 등을 공부했다. 1969년 옥스퍼드대를 졸업했고 1985년에는 런던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문적 성과도 대단해 옥스퍼드 교수로 임명됐고 티베트학에서는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게 됐다.

수 치 여사는 영국 유학 중 만난 아시아 연구자 마이클 에어리스를 만나 1972년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뒤 15년 동안 두 아들을 키우며 성공한 학자이자 주부로서의 삶을 이어가던 수 치 여사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1988년 4월 버마에 들어온 후 제2의 삶을 살게 됐다.

민주화운동 투신 이후 15년간 가택연금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들어왔을 때 버마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네 윈의 군부독재정권이 펼친 버마식 사회주의경제체제와 쇄국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지가 끓어올라 폭발하기 직전까지 와있었던 것이다. 국민들은 마침내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를 기해 네 윈 군부독재정권의 타도를 외치며 봉기했다. 이른바 '8888항쟁'이 궐기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5월 5일 양곤에서 수 치 여사를 만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수 치 여사는 국부독재정권의 유혈 진압을 목격한 데다 국민영웅 아웅 산 장군의 딸로서 자신들을 이끌어달라는 민중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수 치 여사는 8월 26일 수도 양곤에 밀집된 수십만 군중 앞에서 민주화를 위한 연설을 하며 버마 '민주화의 꽃'으로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수 치 여사가 정치 일선에 나서자 군부독재정권도 일당 독재를 폐지하고 다당제 정치와 선거를 약속하는 등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다. 이에 수 치 여사는 민주지사들과 함께 민족민주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결성하고 사무총장직을 맡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군부독재정권의 종식을 촉구하는 수 치 여사의 행보에 버마 국민은 열광했고 군부는 당황했다.

네 윈의 퇴진 이후 또다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소 마웅은 시위대에 대한 강력한 진압을 시작했다. 수 치 여사 또한 1989년 7월 처음으로 가택연금 조치를 당했다.

이듬해 5월 실시된 총선거에서 민주민족동맹이 82%(485석 중 392석)의 지지를 받으며 압승했지만 군부는 이에 불복, 선거결과를 무효화하고 민족민주동맹을 강제 해체했다. 당초 1년 기한으로 정해놨던 수 치 여사의 가택연금 기간도 무기한으로 연장됐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수 치 여사는 1995년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1999년 남편이 전립선암으로 사망했지만 군부독재정권이 재입국을 막을 것을 우려한 수 치 여사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민주화운동에 위협을 느낀 군사독재정권은 수 치 여사를 또다시 가택연금했다.

2002년 국제 연합특사가 버마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일부 풀어주는 조건으로 가택연금에서 풀려나게 했지만 군사독재정권은 이듬해 수 치 여사를 또다시 집에 가두어버렸다. 2010년 11월 완전히 풀려나기까지 수 치 여사는 21년간 총 15년의 가택연금을 당했다.

석방 이후 현실 정치로 입성

아웅 산 수 치 여사는 2010년 11월 가택연금에서 완전히 풀려났다. 수 치 여사의 석방과 함께 버마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군부독재정권이 민정 이양을 선언한 뒤 간접선거로 당선된 테인 세인 대통령이 잇따른 개혁ㆍ개방 조치를 취한 것도 버마의 변화 분위기를 한껏 고무시켰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수 치 여사는 세인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진행하며 힘겨루기를 시작, 지난해 4월로 예정된 보궐선거 참여문제에 대한 대타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상당수 정치범들이 석방되고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노동법도 만들어졌다.

수 치 여사와 세인 대통령의 타협 이후 버마와 미국의 관계도 점차 개선됐다. 당초 미국은 1988년 이후 버마에 경제제재를 포함한 포괄적 수준의 제재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버마의 변화 움직임과 수 치 여사의 요청으로 미국은 지난해 7월 버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하는 한편 22년 만에 처음으로 상주 대사를 파견했다.

지난해 4월 수 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민족민주동맹은 선거구 45개 중 43개에서 압승, 하원의석 중 37석, 민족대표로 구성된 민족원 의석 중 4석, 지방의회 2석을 차지하게 됐다. 총 644석 가운데 7%에 불과하지만 군부독재정권 시절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수 치 여사 또한 옛 수도 양곤의 빈민층 지역인 카우무에서 여당 후보 우소민을 제치고 85%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게 됐다. 수 치 여사는 선거 승리에 대해 "새로운 시대로 가는 출발점이며 국민의 승리"라고 평했다.

진정한 '민주화의 봄'은 언제?

15년간의 가택연금을 이겨내고 현실정치에 입문한 아웅 산 수 치 여사는 향후 어떤 행보를 이어갈까.

수 치 여사는 국민과 당의 뜻이 일치한다면 기꺼이 버마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수 치 여사는 "한 정당의 지도자는 반드시 대통령이 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만일 대중이 나를 선택한다면, 나는 충분히 용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수 치 여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개헌이 선행돼야 한다. 버마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배우자와 직계 가족은 버마 국민이어야 한다. 전 남편과 해외에서 살고 있는 두 아들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결격사유가 된다.

민족민주동맹의 지난해 보궐선거 압승에도 여전히 의회를 장악,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부세력도 걸림돌이다. 군부가 주축이 돼 만든 현행 헌법은 전체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도록 하고 있다.

보수적인 군부가 수 치 여사의 지속적인 지지율 상승, 영향력 강화를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즉시 현재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세인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게 되는 것도 부담이다.

현실정치에 몸담은 이상 자신을 지지해주던 국민들의 뜻과 반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도 수 치 여사에게는 큰 어려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 치 여사는 군사독재정권 지도자들과 유착관계를 맺었던 기업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모으고 박해받는 소수민족에 침묵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앞으로도 버마 전체를 끌어안기 위해 여러 이익단체에 균형을 잡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버마 민주화의 꽃'으로서의 이미지 훼손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완전한 '버마의 봄'을 위한 수 치 여사의 행보가 어떻게 진행될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 치, 한국과 인연 깊네
■ 지난해 MB·반기문·인재근 등과 회동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 아웅 산 수 치 여사이지만 그동안 국내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 이명박 대통령, 민주통합당 인재근 의원 등 지난해에 만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명박 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버마를 방문, 양곤에서 수 치 여사를 만났다.

이 대통령은 수 치 여사와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수 치 여사가 긴 시간을 오로지 버마 국민을 위해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비롯해 여러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일관되게 지켜와서 버마의 변화를 가져온 시초를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존경을 보낸다"고 전했다.

이에 수 치 여사는 "한국과 버마는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며 "그 중 하나가 정의와 자유, 번영을 추구한다는 점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양국이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번영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고 둘이 같이 가야 한다"며 "버마 어린 세대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서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그들이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한국이)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보다 2주 앞서 버마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아웅 산 수 치 여사를 만나 버마 민주화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반 총장은 "수 치 여사가 버마의 복지와 미래를 위해 국회의원 자격으로 건설적이고 활동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고 수 치 여사는 "폭력 사태 없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며 "개혁을 위해 타협할 의지가 있다"고 화답했다.

8월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인 김영주 목사가 버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주관 콘퍼런스에 참석해 수 치 여사와 만났다. 수 치 여사는 콘퍼런스 마지막 날 강연을 통해 "평화를 성취하게 될 때 우리는 안전하다. 그러나 내면의 평화와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 없는 곳에는 진정한 안전이 없다"며 "평화를 마음속에 가진 사람이야말로 화해와 정의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수 치 여사는 김 목사를 만나 "가택연금과 같은 일이 없다면 2013년에 열리는 WCC 부산 총회에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해진다.

수 치 여사를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은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이었다. 인 의원은 지난해 11월 수 치 여사의 자택에 방문해 얘기를 나눴다. 버마-한국 민주화의 주역인 두 사람은 식민 시기, 해방, 군사 쿠데타, 군부독재 등 양국 근현대사의 유사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앞으로 민주주의 및 경제 발전, 교육 협력 등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수 치 여사는 김근태 전 의원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전해진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