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장 당선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영국 유학시절부터 축구에 빠져 프로축구연맹 총재 맡아 숙원 사업 해결수영·철인3종 등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 '아이파크' 론칭 경영인으로도 입지 굳혀한국 축구 한 단계 업그레이드 기대

연합뉴스
기나긴 진통 끝에 새로운 '축구 대통령'이 탄생했다.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에 등극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축구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정 회장의 인생 때문인지 현대가 사람의 재집권에도 대한 축구계 내부의 반발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통과 화합을 통한 축구계 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정 회장이 2016년까지 한국 축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막판 뒤집기로 대한축구협회장 당선

정몽규 회장은 28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당선, 2016년까지 한국 축구를 이끌게 됐다. 이번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는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 총 24표를 놓고 주요 후보 간 접전을 벌인 끝에 1차 투표 결과가 결선 투표에서 뒤집히는 등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는 선거가 된 것이다.

정 회장은 16명의 시ㆍ도 축구협회장과 8명의 산하 연맹 회장이 한 표씩을 행사한 1차 투표에서 7표를 얻어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8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김석한 전 중등축구연맹 회장(6표)과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3표)을 포함한 4명의 후보 모두 과반득표에 실패하며 1, 2위였던 허 회장, 정 회장이 결선 투표에 진출하게 됐다.

결선 투표에서는 정 회장이 15표를 얻으며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김 회장과 윤 의원의 9표 중 8표를 흡수한 정 회장은 1표를 추가하는데 그친 허 회장을 누르고 대한축구협회장이 됐다. 역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이뤄진 총 4차례(1978년, 1997년, 2009년, 2013년)의 경선 중 결선 투표까지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선출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회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인으로 입지 굳혀

한국의 '축구 대통령'이 된 정몽규 회장이지만 본래부터 축구인 출신은 아니었다. 종합건설회사인 현대산업개발을 지휘하고 있는 기업인인 정 회장이 한국 축구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이다.

정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정 창업주의 아들이자 대한축구협회장 4선(47~50대)을 지낸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정 회장의 사촌 형이다.

1962년생인 정 회장은 용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부친 정 명예회장이 이끌고 있던 현대자동차에 1988년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정 회장은 여타 재계 후계자들과 마찬가지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1990년 이사직함을 처음 단 정 회장은 상무(1991년), 전무(1992년), 부사장(1993년)을 빠르게 거쳐 입사 8년 만인 1996년 1월 회장직에 올랐다.

이후 정 회장은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자동차를 넘기겠다는 정 창업주의 결정에 따라 정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산업개발에서의 삶을 새로 시작했다. 정 회장은 1999년부터 지금까지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맡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정 회장의 역량은 이미 검증된 상태다. 2001년에 주택전문 브랜드 '아이파크'를 론칭한 정 회장은 이후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 등을 성공적으로 시공, 경영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축구인으로도 승승장구

정몽규 회장이 축구에 남다른 애정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영국 유학시절부터라고 알려졌다. 축구종가 영국의 분위기에 영향받아 '공부 반, 축구 반'의 생활을 보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 부사장을 역임하던 32세의 젊은 나이에 프로축구 울산현대호랑이의 구단주를 맡으며 본격적인 축구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정 회장은 난파 위기에 놓였던 전북다이노스를 1997년 인수해 전북현대다이노스로 재창단하기도 하고 2000년에는 대우의 재정난으로 매각 대상이 된 부산대우로얄즈를 인수, 지금까지 부산아이파크 구단주를 맡아오고 있다. 현역으로는 최장수 프로축구단 구단주다.

정 회장은 16년에 걸친 프로축구단 구단주 경력을 바탕으로 2011년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에 추대됐다. 총재 부임 3개월 만에 일어난 초유의 승부조작 파문을 과감한 결단력으로 신속히 해결한 정 회장은 폐쇄적인 이사회 구조를 개편하고 K리그 승강제를 도입하는 등 숙원사업들을 단숨에 해결했다. 그 밖에도 강력한 추진력으로 한국 프로스포츠 최초로 2부리그를 출범시키고 선수 연금제도를 신설해 사건 예방과 복지를 단번에 잡는 등 인상적인 업적을 여럿 남겼다. 총재직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며 사임했다.

신중한 성격의 스포츠광

정몽규 회장은 재계2위 현대가 출신이면서도 재벌티를 잘 내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현대산업개발 임직원들 또한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는 회장님'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신중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신조를 "말한 것은 되도록 지킨다"고 할 정도로 추진력은 강하다.

현대가의 사람답게 정 회장은 못하는 운동이 별로 없는 스포츠광이다. 선수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종목만 해도 5개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프로급인 수영을 비롯해 승마, 수상스키, 스키, 보드 등도 수준급이다. 격한 운동을 좋아해 철인3종경기, 산악자전거 마니아이기도 하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없는 골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한국 축구 어떻게 바꿀까?

정몽규 회장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위해 '비전 22'라는 슬로건을 준비했었다. 실천 공약으로는 ▦국제 경쟁력 업그레이드, ▦축구 문화 업그레이드, ▦축구 인프라 업그레이드, ▦축구인들을 위한 다양한 일자리 창출, ▦소통과 화합을 통한 축구계 통합 등을 내세웠다. 정 회장의 공약 중 축구계 인사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소통과 화합을 통한 축구계 통합'이라는 항목이다. 축구계 여권과 야권의 소통, 국가대표팀과 K리그의 화합, 프로축구와 아마추어축구의 통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선 정 회장은 야권 성향 인사의 발탁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정 회장은 "(선거를 위해) 대의원들을 만날 때 여권, 야권의 구분이 없었다"며 "여야 구분도 없고, 과거에 진 빚도 없고 약속한 것도 없으니만큼 축구발전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는 어느 것이든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현대가의 오랜 집권으로 형성된 여야갈등을 순조롭게 봉합하고 축구계를 하나로 모으겠다는 것이 정 회장의 계획이다.

정 회장은 국가대표팀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K리그를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대한축구협회는 수익 창출의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국가대표팀 성적에 따른 수익모델 확보에만 매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가대표팀 위주로 정책이 만들어지면서 아시아 최상위 수준인 K리그는 자연스레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정 회장이 현역 최장수 프로축구단 구단주인데다 2년여에 걸친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경험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앞으로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는 더 긴밀해질 것"이라며 "그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던 프로축구의 중계권 협상 또한 A매치 중계권과 연계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정 회장은 아마추어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공을 들일 계획이다. 선거에 나서며 강조한 축구문화, 축구 인프라 등의 강화를 위해서라도 아마추어축구의 부흥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정 회장은 A매치 위주의 중계방송을 K리그와 더불어 아마추어리그로도 방향을 이동, 한국 축구의 총체적인 발전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지니고 있다.

진중하지만 말한 것은 꼭 지키는 정 회장의 특성상 향후 한국 축구계 전체가 많은 변화를 겪으리라 예상된다. '축구 대통령'으로 자리잡은 정 회장이 4년 임기 동안 한국 축구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기대감과 궁금증이 교차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