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집중 표적된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발땐 강력 응징" 견지 北 원색 비난 한몸에 받아국방부 창설후 첫 유임 문무 겸비한 강골 무인

연합뉴스
북한이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연일 대남 위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겨냥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김관진(64) 국방부 장관을 '타깃'으로 삼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 의지를 피력할 때 유난히 눈에 힘을 주는 까닭에 김 장관은 '레이저 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지난 8일 담화에서 개성공단 잠정 중단 이유에 대해 "김관진과 같은 극악한 대결 광신자들에 의해 개성공업지구가 동족 대결과 군사적 도발의 마당으로 전락되는 사태를 더는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달 25일에는 김 장관을 '보복 타격의 첫 번째 벌초 대상(우리민족끼리)'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어 북한은 '전쟁 불망나니'(3월2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우리 혁명무력의 과녁으로 세울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인간 오작품(불량품)'(4일 군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이라고 김 장관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8일 북한군이 김 장관의 사진을 과녁 삼아 사격 훈련을 하는가 하면, 군견(軍犬)이 김 장관 사진이 붙은 허수아비 인형을 물어뜯는 장면을 방송했다.

북한이 연일 대남 위협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김 장관을 '주적(主敵)'으로 삼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북 강경론자'인 김 장관의 유임에 그만큼 부담을 느낀 방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김관진(오른쪽) 국방부 장관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기자
김 장관은 2010년 11월 부임 이후 "북한의 도발 시 10배로 보복하라"고 힘줘 말해 이목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김 장관은 최근에는 개성공단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동기생 김병관 낙마에 전격 유임

당초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됐던 김병관 전 후보자는 여러 논란 끝에 지난달 22일 결국 낙마했다. 김 전 후보자의 낙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명을 받은 지 38일 만이었다. 김 전 후보자는 지명 직후부터 여러 의혹과 함께 도덕성 논란에 시달렸다. 박 대통령은 김 전 후보자의 사퇴에 따라 공석이 된 신임 국방장관에 김관진 장관을 유임하기로 결정했다. 김 장관은 조각(組閣)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었다.

또 김 장관은 조각에 앞서 청와대에서 장관직 유임 요청을 여러 차례 제안 받았으나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병관 전 후보자의 갑작스러운 낙마 등 비상상황을 맞아 고심 끝에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 장관은 육사 동기생(28기)인 김병관 전 후보자 '덕분'에 유임의 행운을 누린 셈이다. 새 정부의 첫 국방장관이 된 김 장관은 국방부 창설 이래 첫 유임 사례도 남겼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국가안보가 위기인 상황에서 최근 사이버테러까지 있었다"며 "가중되는 국가안보위기에서 박 대통령은 또다시 정치적 논쟁과 청문회로 시간을 지체하기에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위급한 상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유임 배경을 설명했다.

전북 전주 출신인 김 장관은 군인정신을 강조하는 강골의 전형적인 무인(武人)으로 풍부한 야전 경험과 정책 경험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다. 김 장관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육사 1년 후배이고,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과는 동기다.

전북 전주 출신인 김 장관은 서울고와 육사를 나왔다. 김 장관은 육사 기수 중에 1명만 선발하는 독일 유학 시험에 합격해 1969년부터 3년간 독일 육사에서 공부한 '유학파'다.

김 장관은 육군본부 전략기획처장과 2군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3군사령관을 거쳐 합참의장을 지냈다. 2010년 11월 국방장관에 임명돼 2년4개월 동안 복무했다. 김 장관은 '안보만은 철저히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장수와 호흡 그리고 견제

김병관 전 후보자가 발탁됐던 데는 출신 지역 안배 그리고 적당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뒷받침됐다고 한다. 김 전 후보자(김해)와 박흥렬(부산) 경호실장은 부산 경남, 김장수 실장은 광주, 육사 25기인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서울 출신이다.

그러나 김병관 전 후보자의 낙마로 김관진 장관이 유임됨에 따라 안보라인 빅 4 중 2명이 호남, 1명이 서울, 1명이 부산으로 재편됐다. 특히 김관진 장관은 안보라인의 컨트롤타워라 할 김장수 실장과 함께 군 출신 '호남인맥'의 대표주자로 부각됐다.

1년 선배 그리고 동기생인 김장수 실장, 김관진 장관, 박흥렬 실장, 김병관 전 후보자 사이에는 얽히고 설킨 일화들이 있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6년 11월 김 실장은 현역 육군참모총장으로는 최초로 국방부 장관에 발탁됐다. 육군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가려면 적어도 5, 6개월 정도의 휴식이 있었던 게 관례였다.

김 실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함에 따라 공석이 된 육군참모총장 바통은 박흥렬 실장이 이어받았다. 당시 박 실장의 계급은 중장으로 육군참모차장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기생인 김관진 장관과 김병관 전 후보자는 대장으로 각각 3군 사령관과 1군 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동기라고는 하지만 중장이 대장들을 제치고 육군참모총장에 오른 것 역시 사상 처음이었다고 한다.

김 실장은 2007년 대선을 통해 정권이 교체됐지만 입지는 되레 승승장구했다. 김 실장은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고, 지난해 대선 때는 박근혜 선거캠프에 들어가 대선 승리에 적잖은 공을 세웠다.

그런가 하면 김 장관은 합참의장을 거쳐 2010년 11월 국방장관에 임명되는 등 나름대로 착실하게 승진 코스를 밟았다. MB 정권 퇴장과 함께 뒤안길로 사라질 것 같았던 김 장관이었지만 김 전 후보자의 낙마로 다시 한 번 영전의 기쁨을 누렸다.

반면 사실상 동기들에게 밀린 김 전 후보자는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쳤지만 2008년 3월 군복을 벗었다. 육사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김 전 후보자이기에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김병관 카드'는 비록 불발탄으로 돌아갔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김 실장에 대한 적당한 견제 장치가 필요했다고 본 것 같다. 김 장관은 김 실장과는 특별히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로 전해진다.

김 장관은 '얼굴마담 장관'은 단호히 거부할 만큼 주장과 색깔이 강한 인물이다. '레이저 김'이란 별명이 괜한 게 아니다. 새 정부 초대 국방부 수장인 김 장관의 향후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관진의 국방관은 '전투형 부대 육성'



각군 총장에게 군령권 부여 지휘구조 개편에 적극적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국방관(觀)'은 '전투형 부대 육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0년 11월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국방부 수장으로 취임한 김 장관은 '전투형 부대 육성'에 주력해왔다.

김 장관은 또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우리 군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 북한이 도발할 경우 자위권 차원에서 도발 원점을 타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 정부 때 임명된 인사의 유임을 결정한 것도 김 장관의 '스타일'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2010년 12월4일 취임한 김 장관은 '전투형 부대 육성', '정신교육 강화', '관료적 풍토 쇄신'을 화두로 던지며 개혁 의지를 다졌다. 지난 정부까지 김 장관의 재임 2년4개월 동안 이런 부분에서 군이 상당한 결실을 봤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장관은 육해공군 등 각군 총장에게 군령권을 부여하는 지휘구조 개편에도 적극적이다. 이런 점에서는 새 정부의 군 출신 인사들과 다소 견해차이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장관은 야전 주요 지휘관과 작전, 전략, 정책, 전력증강 분야 등을 두루 경험한 덕분에 문무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김 장관은 자유로우면서도 기강이 바로 선 군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유임 전까지만 해도 "아이고 너무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던 김 장관이지만 유임이 결정되자 "우리의 대비 태세를 철저히 유지해 가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응징 태세를 고도로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신발끈을 조였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