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 CJ 이재현 회장2002년 회장 취임 후 사명 바꾸고 공격 경영 10년 만에 재계 12위인재 중시 등 경영스타일 조부 이병철과 많이 닮아올해 영업이익 급감 등 창사후 최대 위기 맞아

CJ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실적 악화는 물론 검찰 수사까지 이어지며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룹의 위기가 중첩되며 자연스레 CJ호를 이끌고 있는 이재현 CJ 회장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가 '비운의 황태자'에서 재계 12위 그룹의 총수로 거듭났던 이 회장이 위기를 딛고 다시 기지개를 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운의 황태자로 태어나

이재현 회장의 부친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인 이다. 한때 삼성의 후계자로 꼽혔던 이 전 회장은 결국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의 대권경쟁에서 패배,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배제된 까닭에 '양녕대군'으로까지 불리는 인물이다. 범삼성가의 장손으로 지금쯤 재계 1위 삼성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던 이 회장은 부친의 실각으로 한순간에 '비운의 황태자'가 됐다.

씁쓸한 탄생배경 때문일까. 이 회장이 자라온 세월에서도 '비운의 황태자'의 냄새가 난다. 1960년에 태어난 이 회장은 삼성가의 장손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살았다.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법학과에 들어간 이 회장은 4년 내내 버스로 통학하고 점심은 학교식당에서 해결했다고 전해진다. 주변 친구들이 재벌가 자제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학업에만 전념했다는 것이다. 삼성가 3세들 중 유일하게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것도 주목된다.

이 회장의 결혼과정 또한 재벌가 자제답지 않았다. 이 회장은 대학 4학년 때 미팅을 통해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한 김희재씨를 만나 결혼했다.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씨와 연애할 때, 이 회장은 자신이 삼성가 사람이라는 것을 숨겨가며 만났다고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의 '삼성가 장손 티 안 내기'는 1985년 제일제당에 입사할 때까지도 계속됐다. 대학을 졸업한 이 회장은 삼성 계열사가 아닌 씨티은행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좋게 표현하면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경영능력을 검증받으려 하기 위해서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고 이병철 창업주가 "장손에게 왜 남의집살이를 시키느냐"고 불호령을 내려 결국 당시 삼성의 주력 계열사였던 제일제당에 들어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면에 어떤 일이 숨어있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제일제당 입사 후 이 회장은 1993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발령받을 때까지 7년 넘게 경리부 및 기획관리부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재무통으로서의 이 회장이 이때 완성된 셈이다. 잠시 삼성전자에 몸담았던 이 회장은 불과 몇 달 만에 친정인 제일제당 상무이사로 복귀했다. 이후 이 회장은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 된 제일제당의 부사장(1997년) 및 대표이사 부회장(1998)을 거쳐 2002년 3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격적 행보 보인 은둔의 경영자

1993년 시작된 CJ의 계열분리 작업은 1997년 법적으로 완전히 정리됐다. 당시 36세였던 이재현 회장은 자신 홀로 경영 전면에 나서기에는 나이나 경험이 모두 부족하다고 판단,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과 그룹을 함께 경영했다. 대외업무는 손 회장이, 내부경영은 이 회장이 맡는 쌍두마차 체제였지만 각자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2002년 회장으로 취임하며 본격적으로 회사를 이끌게 된 이재현 회장은 같은 해 '제일제당'이라는 기존 사명을 CJ로 바꾸는 등 그룹에 자신의 색깔 입히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CJ호의 키를 홀로 잡은 이후에도 이 회장은 이재현 회장은 한참 동안 은인자중하며 대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론에 나타나는 것을 꺼리며 작은 인터뷰기사 하나 내지 않은 까닭에 재계에서도 유명한 '은둔의 경영자'가 된 것이다.

대외활동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이 회장이지만 회사를 키우는 데는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다. 이는 삼성에서 분가해 나온 이후 CJ가 보인 M&A(인수ㆍ합병) 행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삼성의 전자 및 중공업 위주의 투자 전략에 밀려 성장한계를 보이고 있었던 당시의 CJ에 미디어, 물류, 홈쇼핑 사업 등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덧입혔다. 이와 더불어 화장품, 음료 사업 등 그룹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는 과감히 없애버렸다.

이러한 이 회장의 도전은 계열분리 직후 미국 드림웍스의 2대주주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는 그동안 설탕, 밀가루, 식용유 등 식품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짜왔던 점을 감안한다면 도박에 가까운 투자였다. 이후 2000년까지 CJ는 CJ개발, CJ시스템즈, CJ엔터테인먼트, CJ CGV, CJ미디어, 드림라인, CJ투자증권, CJ GLS, CJ푸드시스템, CJ홈쇼핑 등을 쉴새 없이 설립 및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2000년 이후에는 미디어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을 확장해갔다. CJ는 경남방송과 마산방송을 시작으로 양천유선방송, 금양방송, 중부산방송, 해운대기장방송, 충남방송, 모두방송, 영남방송 등을 잇달아 사들이며 케이블TV업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주력인 식품과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활발한 인수작업이 진행됐다. 해찬들, 삼호F&G, 하선정, 신동방, 한일약품 등을 인수한 CJ는 각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에는 M&A 시장의 최대어로 불리는 대한통운을 인수해 물류 1위 업체로 단번에 올라서기도 했다.

이처럼 CJ가 기존의 식품 분야 이외에 바이오 및 신소재,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신유통 이라는 그룹의 4대 축을 탄탄히 세울 수 있었던 데에는 '승부사'로서의 이 회장의 힘이 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회장의 공격경영으로 계열분리 당시 5개 계열사, 매출 1조3,000억원, 영업이익 97억원에 불과한 중형기업이었던 CJ는 지난해 기준 83개 계열사, 매출 26조8,000억원, 영업이익 1조3,700억원의 재계 12위 대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병철 닮은 경영스타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이재현 회장은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창업주와 많은 부분 닮았다. 이 회장을 '리틀 이병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장 본인도 자신에게 각별한 사랑을 쏟은 할아버지를 '정신적 지주'로 의지하는 모양새다. CJ 본사 로비에 고 이 창업주의 좌상이 벽면 부조로 조각돼있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CJ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회장은 평소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고 이 창업주의 좌우명이었던 '겸허', '경청' 등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고 전해진다. 이 회장 자택에는 고 이 창업주가 직접 써서 물려준 '겸허'라는 글귀가 여전히 걸려있을 정도다.

이 회장이 고 이 창업주와 가장 닮은 점은 특유의 경영철학이다. 대표적으로 인재중시 경영을 꼽을 수 있다. 고 이 창업주는 인재를 키우고 그 인재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점은 이 회장도 마찬가지다. 인재를 중시하는 이 회장의 성격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기존 경영진에 대해 대폭적인 신뢰를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정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꼽히는 트렌드를 읽는 안목 또한 할아버지를 닮아있다. 한동안 적자가 날 것이 예상되더라도, 전 세계의 트렌드로 볼 때 중장기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여겨지면 추진하는 것이 이 회장의 스타일이다. 그룹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회장이 추진했던 M&A가 대부분 성공적으로 끝났던 것도 특유의 안목 덕분에 가능했다는 평이다.

부하직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도 고 이 창업주를 닮은 부분이다. 이 회장은 말단직원들과 수시로 자유토론을 하고 등산, 영화감상 등을 함께 하는 자리도 자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CJ가 여타 대기업에 비해 복장, 호칭이 자유로운 것도 이 회장 특유의 소탈함에 영향 받은 부분이다.

이미경 CJ E&M 부회장
최대 위기 극복할까

CJ는 2010년 5월 '2013년 Global CJ, 2020년 Great CJ'의 기치를 내걸고 제2의 도약을 선언한 바 있다. 이재현 회장 또한 경영의 초점을 그룹 창립 60주년인 2013년에 맞춰왔다.

그러나 정작 2013년을 맞이하며 CJ는 최악의 한 해를 겪고 있다. 이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 전체가 해외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2008년과 2009년에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임직원 명의 차명계좌, 역외탈세, 편법증여 등 다양한 혐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상황이라 과거처럼 쉽게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또한 바닥이다. 실제로 주력계열사인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 감소폭은 20%에 달한다. 동반성장 이슈로 CJ푸드빌, CJ프레시웨이 등의 출점이 제한된 것도 큰 부담이다. 5월 18일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내핍경영에 들어갔지만 쉽게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탄생 60주년을 맞아 축복받아야 할 올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CJ를 이 회장이 어떻게 재편해나갈지 주목된다.

부친 이맹희 전 회장, 누나는 이미경 부회장
이재현 회장 가족은?



검찰의 CJ 비자금 수사가 확대되면서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재현 CJ 회장 가족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의 부친인 은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경기도 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씨의 딸이었다. 삼성화재 지분 18%를 보유하고 있던 손씨는 계열분리 발표 당시인 1993년 보유지분 전체를 팔고 제일제당 지분을 매입했다. 최대주주로 있었으나 제일제당의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던 손씨는 1996년과 1998년 아들 이 회장에게 제일제당 주식 140만주를 증여, 경영권을 넘겼다.

이 전 회장과 손씨의 자녀로는 이 회장 이외에도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이 있다. 경기여자고등학교, 서울대 가정관리학과,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지역학 석사, 중국 후단대 역사교육학 박사 출신의 이 부회장은 CJ의 문화사업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CJ E&M은 영화, 음악, 게임, 연예기획사 등 문화산업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곳으로 해당 계열사를 진두지휘하는 이 부회장도 자연스레 문화계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왔다.

이 사장은 배재고등학교, 타이완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한때 제일제당의 일본, 중국 사업에 몸담기도 했으나 현재는 CJ 경영에 관계하지 않고 있다. 이 사장이 맡고 있는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CJ CGV의 스크린 광고를 비롯해 CJ 계열사 광고 대행을 독점하고 있는 곳으로 형제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