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장편 '정글만리' 펴낸 조정래세계의 시장 중국 무대로 펼쳐지는 경제전쟁 그려"중국 G1 시대 곧 도래 우리의 갈 길 모색했다"

소설 ‘정글만리’를 펴낸 조정래 작가가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야인사에서 다시 ‘국민작가’로 돌아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한국 근현대사를 꿰뚫는 대하소설 3부작으로 일찌감치 ‘국민작가’ 반열에 오른 조정래 작가가 신작 ‘정글만리’를 들고 돌아왔다. 이번 소설의 주 무대는 이전처럼 한반도와 만주가 아닌 드넓은 중국대륙 전체다. 문제적 소설가에 그치지 않고 재야인사로 더욱 활발히 활동 중인 조 작가의 신작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경제 및 문화를 담은 걸작

조정래 작가가 새로 선보인 ‘정글만리’는 3월부터 지난 10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108일간 연재한 내용을 3권 분량으로 묶은 것으로 연재 당시 1,2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바 있다. 급성장한 중국을 무대로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5개국의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경제전쟁을 그린 ‘정글만리’의 제목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원칙인 ‘정글’과 만리장성의 ‘만리’를 따서 완성했다.

‘정글만리’의 구상은 작가가 ‘아리랑’을 쓰기 위해 한중수교 전이었던 1980년대에 취재차 만주에 갔을 때부터 시작됐다. 조 작가에 따르면 ‘소련은 무너졌는데 중국은 왜 무너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갖고 돌아와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작정한 게 ‘정글만리’의 단초가 됐다. 중국을 무대로 삼은 것은 휴전선 이남에 머물러 있는 작가들의 의식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조 작가는 “중국이 2016년쯤에는 미국을 제치고 G1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이 전망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21세기 상황에서 우리의 갈 길을 넓고 깊게 모색해 보자는 것이 이번 소설의 주제”라고 소개했다. 이어 조 작가는 “(중국의 급성장은) 세계적인 문제이면서 직접적으로 같이 가는 삶을 살아온 한국의 문제”라며 “앞으로 30년은 굉장히 중요한 새로운 국면이 될 것이고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지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서 조 작가는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의 배경에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작가는 “정치체제에 일당독재가 있을 뿐이지 나머지는 중국이 더 자본주의적”이라며 “중국에서는 싫어하겠지만 ‘중국적 사회주의’를 ‘중국적 자본주의’로 바꿔 부르는 게 더 솔직하고 진실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정글만리’가 중국의 경제 성장에만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 작가는 “중국 문화의 깊이, 중국 인민들의 업적, 동북공정 문제와 중국과의 관계, 한중일의 관계를 보여주려 했고 예전 정권에서 동북아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고 한 것이 얼마나 철없는 환상이었는지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조 작가가 중국을 통전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정글만리’인 것이다.

‘태백산맥’ 있게 한 어린 시절

조정래 작가는 부친인 조종현이 부주지로 있던 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 선암사에서 1943년 태어났다. 부친이 사답을 소작인들에게 분배해준 일로 주지와 충돌을 빚은 이후 그의 가족은 선암사를 떠나 순천으로 이사했다.

전남 보성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
소작인들을 배려하는 부친의 행동은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 이후 우익 일색의 경색된 분위기 속에서 조 작가의 가족들이 갖은 고초를 겪는 빌미가 됐다. 당시 여섯 살에 불과했던 조 작가는 부친이 서북청년단원들에게 몰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끌려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됐고 이는 나중에 ‘태백산맥’을 집필하는 주요 계기가 됐다.

조 작가가 순천남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일년쯤 지났을 때 거의 폐인 지경에 이른 아버지가 풀려났고 조 작가의 가족들은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조 작가 가족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1951년 1.4후퇴 당시 느닷없이 집안에 들이닥친 외국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가 폭행을 당한 것이다. 어린 나이의 조 작가는 공포감에 휩싸인 채 그것을 고스란히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고 이 때의 충격으로 한동안 야뇨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1953년 휴전이 이루어지며 조 작가의 가족은 피난생활을 마감하고 부친의 형제가 사는 벌교로 가게 됐다. 조 작가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기가 조 작가와 가족의 가장 행복한 한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벌교상고의 교사로 재직한 부친이 많은 돈을 벌어오지는 못했지만 이 때의 생활은 어린 조 작가의 불안감을 치유해준 안식의 시간이었다.

1956년 부친이 광주 제일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기며 조 작가의 가족들도 광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갔다. 광주서중에 다니던 조 작가는 1959년 부친이 서울 보성고등학교로 다시 직장을 옮긴 것에 발맞춰 보성고에 진학한다. 한때 농촌 사회활동을 실현시키겠다는 꿈을 꾸며 이과반에 적을 두었던 조정래는 3학년 2학기에야 국문과로 진학목표를 바꾸고 대학입시에 전념, 1962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소설가부터 발행인까지

전북 김제에 있는 ‘아리랑문학관’에는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 육필원고가 전시돼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대학 시절 조정래 작가는 교내학술상 창작부문 상을 타고, 국문과 문학의 밤에서도 1학년 중 유일하게 시를 낭송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같은 동국대학교 국문과 동급생인 김초혜 시인을 만나 사랑을 싹 틔운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나타낸 조 작가이지만 등단에는 어려움을 겪다가 1970년, ‘현대문학’에 소설 ‘누명’과 ‘선생님 기행’이 추천되며 문단에 등단했다. 소설가로 문단의 말석에 이름을 올린 조 작가는 ‘황토’(1974),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1977), ‘한, 그 그늘의 자리’(1978), ‘유형의 땅’(1982), ‘어머니의 넋’(1988) 등 다섯 권의 창작집과 장편소설 ‘대장경’(1976), 연작 장편 ‘불놀이’(1983) 등을 펴냈다.

상복도 있었다. 조 작가는 ‘유형의 땅’으로 1981년도 현대문학상 소설 부문상을 수상했고 ‘불놀이’로 1983년도 대한민국문학상을, ‘메아리메아리’로 1984년도 소설문학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같은 시기 조 작가는 ‘월간문학’ 편집장(1973), ‘소설문예’ 발행인(1976)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1978년에는 ‘도서출판 민예사’를 설립해 1980년까지 대표로 활동했으며 1985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문학’ 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전천후 문학인으로 활동한 셈이다.

‘20년 글감옥’에서 3부작 완성

문학계에서는 조정래 작가의 작품세계가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한 1983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전 작품들이 작가의 체험을 배제하고 사회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면 이후부터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뚜렷한 민족의식과 역사성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의 효시이자 가장 문제작으로 꼽히는 것은 역시나 ‘태백산맥’이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이어 1980년 5월의 광주까지 암담한 시련의 역사를 겪으며 조 작가는 동학농민전쟁에서부터, 3.1운동,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중항쟁의 역사를 대하소설로 엮어낼 계획을 세우고 ‘태백산맥’ 집필준비에 열중했다. 5월의 광주를 눈으로 확인하고 온 조 작가는 ‘직접 체험을 소설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창작원칙을 전면 철회하고 어린시절 겪은 여순사건 등 자신의 체험을 끄집어내 ‘태백산맥’에 버무려 넣었다.

‘태백산맥’을 써내려간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작가는 소설의 문제의식을 부정하는 세력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다. ‘태백산맥’을 한 권씩 마칠 때마다 형사들이 찾아와 검열했고, 조 작가를 방송에 출연시킨 스태프진은 한직으로 내몰렸다.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1만6,500매 분량으로 완간된 ‘태백산맥’은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1980년대 최고의 작품’, ‘1980년대 최대의 문제작’으로 꼽히며 화제를 모았다.

조 작가의 도전은 끝이 아니었다. ‘태백산맥’을 마친 조 작가는 다시 약 1년간의 취재와 자료정리 기간을 거쳐 1990년 12월 ‘아리랑’의 집필에 착수, 1995년 7월에 탈고한다. 태백산맥이 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라는 짧은 시간에 한정됐던데 반해 ‘아리랑’은 구한말인 1890년대부터 1945년까지의 시간대를 아우르는 또 하나의 대작이었다.

조 작가의 대하소설 3부작 중 대미를 장식하는 ‘한강’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겨레’에 연재, 10권으로 완결됐다. ‘태백산맥’에서 이데올로기 갈등을 정면으로 다뤘고 ‘아리랑’을 통해 민족사의 굴절 과정을 형상화했다면 ‘한강’은 폭력적인 정치권력에 의해 자행된 사회적 비리와 이에 대응하는 민중의 성장을 그렸다.

‘아리랑’부터 ‘한강’ 사이의 기간이 길었던 데는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고발된 영향이 컸다. 11년의 법정사투 끝에 2005년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은 조 작가는 조사받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작품 쓰는 것을 중단하는 고통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4.19혁명, 5.16쿠데타, 10월유신과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및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현대사를 묶은 ‘한강’을 마치며 조 작가는 자신의 표현대로 ‘20년 글감옥’에서 출옥했다.

뚜렷한 신념으로 안철수 지지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소설만큼이나 정치색이 뚜렷하다. 여느 예술가들이 정치현장에 몸을 담그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이 있어야만 하는 곳,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 생각되면 어디든 달려가는 성격이다.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위에도, MBC 파업의 현장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농성장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잠들어있는 봉하마을에도 조 작가는 굳건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조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더욱 거세진 듯 보였다. 조 작가는 당시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겉은 육영수이고 속은 박정희”라며 거세게 비판한 반면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는 “평생 삶을 통해 진정성, 헌신성, 실천성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후 조 작가는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영혼의 교감이 있었다”며 안철수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아왔고, 지난달부터는 안 의원의 싱크탱크격인 정책 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조 작가는 앞으로 10년간 1권짜리 장편 2개와 3권짜리 2개, 단편집과 산문집을 하나씩 쓸 계획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꿰뚫은 국민작가이자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재야인사로서 조 작가의 이후 행보가 주목된다.

●조정래 작가

출생 1943년 8월 17일

학력 순천남초등학교(1956)

광주서중학교(1959)

보성고등학교(1962)

동국대학교 국문과(1966)

1970 문단에 등단

1973 ‘월간문학’ 편집장

1976 ‘소설문예’ 발행인

1978 ‘도서출판 민예사’ 설립

1985 ‘한국문학’ 주간

1997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좌교수

2005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문

2011 EBS 국제다큐영화제 자문위원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명예홍보대사

2012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대사

<관련기사>조정래의 숨길을 느끼려면?

조정래 작가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바로 조 작가의 대표작인 ‘태백산맥’, ‘아리랑’의 이름을 따 지어진 문학관들이다.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아리랑문학관은 2003년 5월에 개관했다. ‘아리랑’을 통해 김제의 역사까지 살펴볼 수 있게 만들어진 아리랑문학관은 소설의 주 무대였던 징게맹갱의 상징성을 부여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아리랑문학관 제1전시실에는 ‘아리랑’ 주인공들의 험난한 대장정을 각 부의 줄거리와 함께 시각자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원고지 2만매에 이르는 조 작가의 육필 원고를 전시해놨다. 제2전시실에는 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 사진으로 보는 작가의 인생 및 취재수첩과 자료 노트들이 전시돼 있고 제3전시실에는 가족사진 및 애장품 등을 통해 조 작가의 면면을 살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태백산맥문학관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위치해 있다. 2008년 11월 개관한 태백산맥문학관은 단일 작품을 위해 설립된 문학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태백산맥’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고발로 태백산맥문학관 건립 계획도 무산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태백산맥문학관의 주요 전시물 또한 ‘태백산맥’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다. ‘소설을 위한 준비와 집필’, ‘소설 ‘태백산맥’의 탈고’, ‘소설 ‘태백산맥’의 출간 이후’, ‘작가의 삶과 문학소설 ‘태백산맥’’ 등의 주제들로 마련된 전시 공간에 조 작가가 쓴 1만6,000여 장의 친필원고 등 719점의 전시물이 공개돼 있다. 조 작가가 머무르면서 집필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작가의 방도 따로 갖춰놔 눈길을 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