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스타' 외국인 연예인 전성시대

샘 해밍턴
호주 출신 개그맨 KBS '개그콘서트'서 데뷔 '진짜 사나이'로 인기몰이
미국 출신 부산 사투리로 사랑받아
외국인 배우 1호 혼혈배우는 데니스 오 등도 인기 가세
F(X)·엑소 등 아이돌그룹 중국인 영입 대륙 공략

MBC '진짜사나이'에서 '구명병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을 필두로 하는 외국인 연예인들의 활약이 뜨겁다. 예능프로를 비롯해 드라마ㆍ영화와 가요계까지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외국인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처럼 단순히 프로그램의 양념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점차 그 비중을 키우고 있어 제2의 외국인 연예인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 예능계 블루칩으로

"예능의 신이 날 도와주는 것 같다."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호주 출신 개그맨 이 최근 한 연예정보프로에 나와 얘기한 스스로에 대한 평가다. 실제로 은 최근 방송가에서 가장 핫한 예능 블루칩으로 꼽히고 있다.

로버트 할리
은 '국내 외국인 개그맨 1호'로 꼽힌다.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2002년 아예 눌러앉았다는 은 한 개그 공연에서 즉석무대에 오른 것이 계기가 돼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하게 됐다. '개그콘서트'의 '하류인생' 코너에 게스트로 나와 시청자와 눈을 맞췄던 은 이후 코믹한 영어뉴스를 소재로 하는 '월드뉴스'에서 고정자리를 따내며 개그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고 두 곳의 소속사에 들어갔지만 처우가 좋지 않았던 까닭에 홀로서기를 한 은 교통방송에서 영어방송 DJ를 맡으며 역량을 키워나갔다. 이후 여러 방송에 얼굴을 비쳤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던 은 올해 초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리며 곧바로 '진짜사나이'에 합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뚝배기' CF로 대박

한국어에 담긴 행간의 의미와 뉘앙스까지 완벽하게 구사해야만 하는 개그맨에 비해 적당한 위트와 방송센스만 가지고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예능프로는 그 특성상 외국인 연예인들의 산실이 되어왔다. 국내 1호이자 유일한 외국인 개그맨 이 정통 개그프로에서 예능프로로 옮겨온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외국인 연예인의 수용 범위가 넓은 까닭에 그 역사 또한 길다. 1세대 외국인 예능인으로는 1990년대부터 수많은 예능프로 및 드라마, CF 등을 섭렵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를 들 수 있다. 미국 출신으로 국제 변호사이기도 한 는 외국인임에도 부산 사투리를 감칠나게 구사하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라리사. 연합뉴스
MBC '남자 셋 여자 셋', '탐나는도다' 등에서 맛깔나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의 대표작은 뭐니뭐니해도 '쌀국수 뚝배기' 라면 CF였다. "한 뚝배기 하실래예?"라는 유행어를 만든 해당 CF는 수천 건의 패러디물을 양산하기도 했다.

와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출신 예능인 이다 도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1992년 연세대 한국어학당 학생으로 한국땅을 밟은 이다 도시는 EBS '프랑스어 회화'에 보조강사로 출연하다 특유의 빠르고 수다스러운 입담으로 인기를 끌며 예능의 길에 들어선 사례다. "안녕하세요? 이다 도시인데요 울라라~"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해다.

외국인 예능인 러시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방송된 KBS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여성들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한국의 모습을 이해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해당 프로그램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고 한국어 구사능력도 뛰어난 외국인 예능인들을 양산해냈다.

'미수다' 출신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사람은 일본 출신의 후지타 사유리이다. 뜬금없는 사차원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후지타 사유리는 MBC '사유리의 식탐여행'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돌직구 화법'을 구사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그밖에 영국 출신 에바 포비엘은 CF모델을 거쳐 KBS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에서 배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러시아 출신 라리사는 성인 연극이라는 독특한 분야에 진출해 관심을 모았다.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핀란드 출신의 따루는 홍대 근처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따루주막'을 열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다니엘 헤니
브라운관은 혼혈출신이 득세

외국인 연예인들이 일으키는 바람은 드라마, 영화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 우리 사회에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면서 그 영향이 드라마ㆍ영화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배우 시대의 문을 연 것은 현재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인 이었다. 1994년 KBS 드라마 '딸부잣집'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은 '제5공화국',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천국의 계단' 등 굵직굵직한 드라마에 출연했다. 1979년 통일교 관련 행사 차 방한한 것이 인연이 돼 한국에 눌러앉게 된 은 1980년 EBS 독일어 강의를 시작으로 방송을 처음 탔다. 이후 리포터와 CF모델 등으로 얼굴을 알린 은 연예인인 동시에 대학교수, 경영인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일본 출신 배우인 유민의 경우 당시만 해도 몇 안 되는 주연급 배우로 활약했다. 2001년 MBC 드라마 '우리집'으로 한국 드라마에 데뷔한 유민은 MBC 드라마 '좋은 사람', SBS 드라마 '유리화', '불량주부', '아이리스2-아테네'영화 '청연' 등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외국인 배우의 시초가 이었다면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 배우 시대의 서막을 연 사람은 바로 였다.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는 188cm의 훤칠한 키에 근육질 몸매를 이용,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2005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하며 준수하고 이국적인 외모로 여성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는 영화 'Mr. 로빈 꼬시기', '마이파더' 등에서 열연을 펼쳤다.

이참
가 외국인 배우로서는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자 데니스 오, 줄리엔 강 등 '제2의 '들이 속속 등장했다. 주한미군 출신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데니스 오는 몇 편의 CF에서 얼굴을 비치다 2005년 MBC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부족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하지는 못하고 결국 활동을 접었다.

서툰 한국어 실력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경우도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줄리엔 강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종합격투기 선수인 형(데니스 강) 덕분에 한국에 정착했던 줄리엔 강은 2009년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 어눌한 발음으로 극의 재미를 더욱 살렸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SBS 드라마 '스타의 연인', '드림' 등에서는 여지없이 한국어 능력 및 연기력 부족을 지적받아야만 했다.

최근 차세대 혼혈스타로 꼽히고 있는 이는 리키 김이다. 미군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리차드 닐리. 한국이 좋아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씨가 된 리키 김은 SBS'정글의 법칙' KBS'출발드림팀'등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으며,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가요계엔 중국 출신 많아

아이돌 그룹이 주도하는 가요계는 연예계 중에서도 외국인 연예인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으로 꼽힌다. 기획사들이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 인재로 눈을 돌리며 시작된 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EXO
아이돌이 처음 나왔을 당시 가요계에서는 외국인 멤버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영어 랩을 위해 교포 출신 멤버가 1명 정도 포함될 뿐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대부분의 그룹에 외국인 멤버가 1명 이상은 포함되는 것이 대세가 됐고 이를 위해 그룹 결성 때부터 현지 오디션을 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아이돌 그룹에 포함된 외국인 멤버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중국 출신들이다. 그룹 미쓰에이(miss A)의 경우 4명의 멤버 가운데 2명(페이, 지아)이 중국 출신일 정도다. 오디션을 통해 2006년 영입된 이들은 국내 멤버들에 비해 예능프로나 연기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그룹 내에서 메인 보컬과 핵심 안무를 담당하고 있는 등 비중이 작지 않다. 지금은 탈퇴했지만 슈퍼쥬니어의 한경을 비롯해 유키스의 알렉산더, 슈퍼주니어-M의 헨리와 조미 등도 중국 출신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엑소()의 크리스, 루한, 타오, 레이 등이 중국인이다.

그룹 투피엠(2PM)의 멤버인 닉쿤은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처음에는 예쁘장한 외모의 외국인 멤버로 영어 랩만 담당하며 눈에 띄지 않았던 닉쿤은 따뜻한 인상과 매너를 무기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며 2PM의 간판으로 자리잡았다. 태국인 아버지와 중국계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닉쿤이지만 한국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도 듣고 있다.

그룹 F(X)의 빅토리아는 중국 출신이지만 그룹 리더를 맡을 정도로 중심 멤버로 자리잡고 있다. 빅토리아는 밝은 성격, 수려한 외모로 각종 예능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의 매력을 뽐냈다. 특히, 닉쿤과 빅토리아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부부로 출연, '국제결혼'을 한 신혼부부의 일상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젠 대한민국 국민 귀화 연예인은 누구?



한국 연예계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연예인 중 상당수는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니다. 단순히 한국어와 문화에 익숙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연예인의 꿈을 이루고자 아예 국적을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귀화 연예인의 대표주자로는 를 꼽을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생활한 는 1997년 귀화하며 한국식 이름 하일로 개명했고 영도 하씨의 시조가 됐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맡고 있는 은 본명인 베른하르트 크반트보다 한국식 이름이 더 익숙한 경우다. 1986년 한국에 귀화하며 '한국을 돕겠다'라는 뜻의 이한우라는 이름을 선택한 은 2001년 한국 문화에 동참하겠다'는 뜻의 현재 이름으로 다시 개명했다. 귀화하며 자연스럽게 독일 이씨의 시조로 자리잡았다.

이다 도시는 연세대에서 강사생활을 하던 중 한국인 사업가와 만나 결혼했다. 이후 1996년에 귀화해 살아왔지만 남편과의 가치관 갈등으로 결혼 16년 만인 2009년 이혼해 두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으로 살고 있다. 본관을 따로 신고하지 않은 이다 도시의 경우 여성인 까닭에 한국에서 유일한 '도시'씨로 남아있다.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 출신의 라리사는 2005년 귀화했다. 지난해 귀화 후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한 라리사는 대선 투표율이 75%를 넘을 경우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 '교수와 여제자3'에서 알몸으로 말춤을 추겠다고 공약을 걸어 눈길을 끌었다. 마찬가지로 '미수다' 출신의 구잘도 지난해 귀화했다. 구잘은 지난해 말 한 연예프로그램에서 "한국사람이 되어 우리나라라고 하고 싶었다"며 귀화 이유를 밝혔다.

영화 '방가방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했던 방대한도 귀화 연예인 대열에 합류했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칸 모하마드 아사주드만이라는 본명을 지니고 있던 방대한은 2011년 귀화했다. 방대한은 M.net '슈퍼스타K3'에 출연해 "피부색은 다르지만 한국에 대한 사랑이 커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