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의혹에 봉변당한 '소신'잇따른 '소신 수사'로 검찰 신뢰 회복 평가받아 청와대·여당과 '잡음'도

채동욱 검찰총장. 연합뉴스
채동욱 검찰총장이 지난 13일 전격 사퇴했다. 한 언론에서 '혼외아들 의혹'이 제기된 지 일주일만의 일. 채 총장은 법무부가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을 감찰 의사를 밝힌 이후 이런 결정을 내렸다.

법무부는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법무장관이 결심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검찰 안팎의 생각은 다르다. '검찰총장 감찰'이라는 초강수는 청와대와의 상당한 교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시선이 많다.

일련의 사태로 채 총장은 진위 여부를 떠나 개인의 위상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여기에 씁쓸한 뒷맛만을 남긴 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채 총장. 그런 그가 걸어온 족적을 따라가 봤다.

대형사건 다루며 능력 인정

채동욱 검찰총장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검찰 내에서 범호남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원적이 전라북도(군산)인 때문이다. 세종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 1988년 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첫 발을 들였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혼외아들 의혹 관련 감찰 지시가 내려진 13일 사퇴의사를 밝히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주성기자
이후 부산지검 동부지청과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에서 형사부장, 대검찰청 마약과장, 서울지검 특수2부장, 대검 수사기획관, 부산고검 차장, 전주지검장, 법무부 법무실장, 대전고검장, 대검 차장, 서울고검장 등을 역임했다.

대검 중수과장·중수부장을 지내지 않아 '정통 특수통'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서울지검 특수2부장과 대검 수사기획관을 맡아 대형사건을 수사하며 특수통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분석력과 상황 판단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채 총장이 특별수사에 첫발을 들인 건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팀에 합류하면서다. 채 총장은 전 전 대통령의 12·12 군사반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사건의 검찰 논고문을 작성할 정도로 논리가 뛰어나다.

2003년 서울지검 특수2부장 때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를 파헤치기도 했다. 당시 집권 여당이던 정대철 민주당 대표를 구속했다. 삼성에버랜드 사건,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의 공금유용 사건 등도 수사했다.

대검 수사기획관이던 2006년에는 중수부의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맡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또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을 수사하기도 했다. 대전고검장으로 재직하던 2010년에는 '스폰서 검사' 진상조사단장을 맡았다.

이런 대형사건 수사 경력이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서울지검 특수2부장에서 서산지청장으로 사실상 좌천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특수라인에 복귀해 박영수 중수부장 휘하에서 후배 특수통 교관 역할을 담당했다.

채 총장은 검찰 조직 내 신망도 두텁다. 자상하고 겸손한 성품에 부드러운 인상을 겸비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강단이 있고 선이 굵다는 평을 듣는다. 또 선후배들과 사적 모임을 갖지 않는 등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전언이다.

선행으로도 유명하다. 서울지검 특수2부 부부장검사 시절인 1998년부터 수년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내준 사실이 2006년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행은 수혜 학생들이 채 총장에게 보낸 감사편지로 알려졌다.

당시 감사편지 수신처는 서울지검 1004호실이었다. 채 총장이 특수2부 부부장으로 이 방을 사용하던 무렵이다. 이를 바탕으로 채 총장이 직원들과 함께 장학금을 기부해온 것으로 확인되면서 '검찰 천사'의 존재가 드러났다.

'소신수사'에 강력 의지

채동욱 총장이 급격히 검찰 안팍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해 벌어진 사상 초유의 '검란'으로 인해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물러나면서다. 당시 검찰 차장이던 채 총장은 대행체제를 이끄는 '구원투수'로 등장해 검찰 총수의 공백사태와 검찰 내부의 분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3월 채 총장은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그러나 그 전까지 총장 인선 작업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퇴임 직전 사상 최초로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꾸려졌다.

이때 새정부가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진 '공안통'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김학의 대전고검장이 심사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대신 채 총장과 김진태 대검찰청 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이 3배수 후보로 확정됐다.

저울질 끝에 결국 최종 후보자로 낙점된 건 채 총장이었다. 대검 중수부도 해체되고 검찰 특별수사 기능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서 특수통 간부가 이를 수습해야 한다는 판단이 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채 총장을 선택한 청와대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채 총장은 '파도남'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무난히 검증을 통과했다. '파도남'은 "파도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의 평가에서 비롯된 말이다.

채 총장은 4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낙하산이 아닌 내부에서 추천된 특수통 검사가 검찰 수장에 오른 건 2002년 이명재 총장 이후 11년 만이다. 채 총장이 '정권 보위'보다 '수사 논리'에 충실한 행보를 보일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후 채 총장은 '소신 수사'에 의지를 보였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4대강 담합비리 의혹 사건,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 수사, CJ그룹 이재현 회장 비자금 조성 사건, 원자력발전소 비리 사건 등 큼직한 사건에서 수사논리에 입각해 진행했다.

심지어 청와대 하달 사건에 대해서도 '소신 수사'를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각종 증거를 기반으로 공소 유지가 가능할 경우 모든 권한을 담당 검사에 맡겼다. 채 총장이 검찰 내부에서 '소신 총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채 총장이 취임한 건 '떡검'이나 '색검' 등으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시기였다. 검찰 내부에서도 정치권력이나 재벌과의 유착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런 가운데 채 총장의 행보는 국민들로부터 "시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치권의 입장은 온도차가 있었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여권조차 현재의 검찰을 불편한 심기로 바라봤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한 검찰의 행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은 채 총장 취임과 함께 속도감 있게 전개됐다. 검찰은 채 총장 취임 보름 뒤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을 구성했다. 특별수사팀은 5월말 원 전 원장과 김 전 서울청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향으로 의견일치를 봤고, 채 총장도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시각은 달랐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신중을 기하라"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자 검찰은 크게 반발했다.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 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한 데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금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또한 윤 팀장은 "채동욱 검찰총장도 자리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 사건을 최소한 불구속기소라도 해서 공소유지를 해보려고 참고 있는 것"이라며 채 총장의 심중을 우회적으로 드러내 청와대를 격앙시켰다.

이후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는 "검찰 통제가 어렵다" "손을 봐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보수진영에서는 노골적인 '채동욱 비토론'을 제기했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채 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혼외아들 주장에 타격

정부 여당과 검찰 간에 난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지난 6일 조선일보가 채 총장에게 혼외아들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 충격을 줬다. 채 총장이 10여년간 혼외 관계를 유지하는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다는 의혹이다.

채 총장은 엄연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채 총장은 군 법무관 시절 고등학교 동창인 양경옥씨와 결혼해 슬하에 2녀를 뒀었는데 2009년 큰딸을 잃었다. 큰딸은 어릴 때 패혈증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어 22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혼외 관계는 실정법 위반 여부를 떠나 부도덕한 행위로 인식된다. 더욱이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경찰청장과 함께 '4대 권력기관장'으로 불리는 검찰총장이 혼외 관계에서 자식까지 뒀다면 사생활 문제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채 총장은 혼외아들의 존재를 극구 부인했다. 채 총장은 "검찰총장으로서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들에 대해 굳건히 대처하겠다"며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 본연의 직무수행을 위해 끝까지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채 총장은 해당 보도의 배경을 '검찰 흔들기'로 지목했다. 보도가 나온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검찰 수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검찰 내부에선 정보의 출처를 두고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일단 경찰이나 국정원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지는 분위기다. 경찰과 국정원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고 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선 두 기관 중 한 곳이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보도 하루 뒤인 지난 7일 해당 언론은 "보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민ㆍ형사 소송을 내거나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라도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채 총장은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이어 지난 9일 해당 언론은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언론은 채 총장의 혼외 아들로 의심받는 아동의 학교 관계자의 말을 빌어 "채 총장의 혼외 아들 학교 기록에 아버지가 '채동욱'이라고 적은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채 총장은 보도 직후 "정정 보도를 청구할 예정"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유전자 검사도 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속 보도에 검찰 내부에서 '더 이상 끌려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채 총장은 공직자로 구설수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영(令)을 세우기가 곤란한 상황이 됐다. 검찰 안팎에선 '진실게임'결과와 무관하게 채 총장이 중도에 물러날 것이라는 얘기가 회자됐다.

그러던 지난 13일 오전 법무부는 채 총장에 대한 감찰 의사를 밝혔다. 법무부는 "국가의 중요한 사정기관의 책임자에 관한 도덕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검찰의 명예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어 "조속히 진상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키고 검찰 조직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장관은 당사자인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된 감찰관을 통해 조속히 진상을 규명해 보고하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날 채 총장은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채 총장은 '검찰총장직을 내려 놓으며'라는 제목의 짧은 입장을 발표하고 "검찰총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라며 "임기를 채우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밝혔다.

채 총장은 "5개월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올바르게 검찰을 이끌어 왔다고 자부한다"며 "모든 사건마다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나오는 데로 사실을 밝혔고 있는 그대로 법률을 적용했으며 그 외 다른 어떤 고려도 없었다"고 말했다.

'혼외아들'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채 총장은 "전혀 사실무근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라며 "근거없는 의혹제기로 공직자의 양심적인 직무수행을 어렵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