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방위 사정 칼날… '말년' 꼬이나경기고 1학년때 일본 유학 1966년 귀국 본격 경영 수업세세한 업무도 챙겨 '완벽주의 회장' '유행'보다 '원칙' 경영 선호'MB 사돈 집안' 특혜시비 휘말려 사면초가 사정 칼날 비켜갈수 있을까

비교적 순탄한 경영인생, 말년에 ‘험로’넘어설까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위기를 맞았다. 각종 비리혐의로 사정기관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있어서다.

효성그룹이 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번번히 수사망을 비켜갔던 예전과 달리 이번만큼은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사정기관들이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효성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오며 비교적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조 회장이 말년에 일생일대의 험로에 직면했다. 과연 조 회장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굴지의 그룹으로 육성

1935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군북국민학교를 다니다 5학년 때 재동국민학교로 전학하며 상경했다. 경기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한 조 회장은 1학년을 마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히비야 고등학교와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의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 입학해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과정을 준비 중이던 조 회장은 1966년 부친인 고 조홍제 창업주의 부름을 받고 귀국했다.

조 회장의 경영 참여도 바로 이때부터다. 당초 효성물산 관리부장을 거쳐 동양나이론의 건설본부장직을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섰다. 당시 조 회장은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였고,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1975년 한영중공업을 인수해 효성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조 회장은 중전기기와 산업기계를 국산화하고 양산하도록 했다. 이 회사는 효성그룹을 국제적인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킨 원동력으로 꼽힌다.

1980년대엔 화섬사업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석유화학 분야 뛰어들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 금융자동화기기와 중대형 컴퓨터를 비롯한 하드웨어 사업과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에 참여해 정보통신(IT)분야에 진출했다.

1982년 효성그룹 회장에 공식 취임한 이후 끊임없는 사업다각화와 경영혁신으로 지금의 효성을 일궈냈다. 특히 IMF 당시인 1998년 계열사를 합병하고 비핵심 계열사 및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 혁신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완벽주의와 독서경영

조 회장은 ‘완벽주의 회장’으로 통한다.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겨 붙은 별명이다. 특히 임직원에게 ‘철저함’을 주문하려면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며 공부에 매진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경제석학들의 경영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을 선호한다. 이런 ‘학자’적인 면은 선친을 많이 닮았다는 평가다. 물론 이런 성향 때문에 융통성이 없다거나 보수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조 회장의 학자적 소양은 경영에 발을 내디딘 당시부터 많은 빛을 봤다. 1974년 오일쇼크의 여파로 나일론 원자재인 ‘카프로락탐’ 품귀 현상을 빚었을 당시 지혜롭게 대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조 회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완성품인 카프로락탐의 직접 구입보다 매입이 더 쉬운 기초 원자재를 구입해 카프로락탐을 제조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조 회장의 지식과 주도 면밀한 연구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 회장은 기업 경영활동 외에 ‘민간경제외교관’으로도 오랜기간 활동했다. 한일경제협회 회장을 맡아 한일FTA 체결 추진 등 한일 재계의 현안 이슈 해결에 앞장섰고, 2009년까지는 한미재계위원회 한국위원장을 맡았다.

또 2004년까지는 태평양연안경제협의회(PBEC) 회장을 역임해 한국 재계의 세계적인 위상을 높인 바 있다. PBEC은 20여개 국가와 각국의 1,100여개 기업으로 구성된 태평양 지역 최대규모의 민간 경제협력체다.

이밖에도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한중경제협회 부회장 등을 맡았으며, 와세다대학 한국동창회장과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교 재단 이사, 한국동창회 명예회장 등도 맡고 있다. 그동안 거쳐간 자리만 10개가 넘어간다.

특히 조 회장은 2007년 전경련 회장에 취임했다.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지구를 7바퀴나 도는 의욕적인 경제외교를 펼쳐왔다. 재임기간 동안 조 회장은 재계의 화합과 전경련의 위상 제고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담낭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임기를 8개월 남긴 채 전경련 회장 직에서 물러났다. 고령이라 회사 안팎에선 걱정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이듬해 2월 공식 활동을 재개하고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열정적으로 현안을 챙겨왔다.

각종 비리 수사로 위기

그러나 조 회장은 최근 전례에 없던 위기를 맞고 있다. 회장일가의 각종 비리혐의와 관련해 사정기관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국세청에 따르면 효성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외사업에서 발생한 대규모 부실을 감추려고 1조원대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회장 일가는 차명주식 등 1,000억 원대 차명재산을 관리하며 각종 양도세와 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회장 일가의 계열사 차명대출을 적발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관세청 역시 효성그룹 자회사를 대상으로 외환거래 검사를 벌였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비교적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조 회장이 말년에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조 회장의 말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hankooki.co.kr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주요 프로필

출생

1935년 11월19일(경상남도 함안)

학력

2013 일리노이공과대학 공학 명예박사

2005 와세다대학교 공학 명예박사

1966 일리노이공과대학 대학원 화학공학 석사

1959 와세다대학교 공학 학사

1955 히비야고등학교

경력

2008 제10대 한일경제협회 회장

2007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2005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장

2005 제9대 한일경제협회 회장

2002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국제회장

2000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1999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부회장

1998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전략위원장

1998 한국종합기술금융 등기 이사

1995 한강포럼 회장

1994 APEC PBF 한국대표

1993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1992 한중경제협회 부회장

1991 한미경제협회 부회장

1989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1987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84 동양학원 이사장

1982 효성그룹 회장

1981 한-스페인협회 회장

1981 효성중공업 회장

1976 한-덴마크경협위원회 회장

1976 효성물산 대표이사 사장

1975 효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1973 동양폴리에스터 대표이사 사장

1970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사장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