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캠프와 연관 없는 의외의 인물 형사재판·IT 전문가로 정평"친재벌 판결 지적에 동의 못해" 군면제·김기춘 실장 라인설 등 청문회 과정서 곤욕 겪기도

황찬현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이 지난달 25일 감사원장 후보자에 지명됐다. 정치권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의외의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황 후보자는 대선 캠프와 직접적인 인연도, 하마평에 오른 적도 없다.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선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큰 쟁점은 군면제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라인설 정도였다. 새누리당은 호평을 쏟아냈고, 민주당은 유보 입장을 보였다. 대체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다.

따라서 황 후보자는 큰 변수가 없는 한 감사원장 자리에 안착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 15일 처리 예정이던 임명동의안은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민주당이 선결 조건으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때문이다.

형사재판ㆍIT 전문가

경남 마산 출신인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는 마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시 22회와 연수원 12기로 1982년 수원지법 인천지원 판사로 입관했다. 법관 생활 중 절반 가까이를 형사재판을 담당해 형사재판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황 후보자는 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재판장 때 2002년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과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굿모닝시티 사건, 대우그룹 부실회계감사 사건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을 법과 형사소송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각급 법원에서 다양한 재판업무를 하면서 기록을 꼼꼼하게 파악ㆍ분석한 후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면서도 구체적 사안에 가장 적합한 결론을 도출해 박근혜 대통령의 깊은 신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 전산담당관과 법정심의관,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등을 두루 거쳐 법원 행정에 정통한 인사로 분류된다. 올해 4월부터는 서울중앙지방법원원장 자리를 맡고 있다.

황 후보자는 또 정보기술(IT) 분야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취미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기도 하다. 황 후보자가 1996년 출범을 주도한 정보법학회는 법관, 경제학자, IT 전문가 등 300명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사법정보화 커뮤니티 회장도 맡았다.

황 후보자는 법원행정처 전산담당관, 법정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등기전산화 작업을 주관, 최단기간에 최소비용으로 등기전산화 시스템의 성공적 완성과 정착에 기여한 공적으로 2008년 황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인선 배경에 대해 "황 후보자는 신망과 존경을 받는 강직한 법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며 "사회적 파장 컸던 사건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서 엄정하게 처리했던 분으로 감사원장 직책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밝혔다.

정치권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대선 캠프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고 하마평에도 오르지 않은 데다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감사원장에 현직 지방법원장을 지명한 건 이번이 처음인 까닭이다.

사회적 명성이나 지명도 등과 무관하게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에 걸맞는 인사를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의 조각 인사와 마찬가지로 해당 분야 전문성에 중점을 둔 인사 스타일을 재확인시켰다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당초 황 후보자의 지명과 관련해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빗발쳤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주장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법원장에 임명된지 6개월만에 자리를 옮겨 법원장급 자리 4개가 공석이 됨에 따라 업무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입을 모았다.

야당 의원들은 또 인사 과정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인맥이 작용했다는 의혹과 감사원 업무와 연관이 없었던 황 후보자의 경력도 문제 삼았다. 공세가 이어지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막아섰다. 국감 자리에서 감사원장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청문회서 각종 의혹 제기

그리고 지난 11일과 12일 양일간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가장 큰 쟁점은 군 면제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라인설이었다. 그러나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먼저 황 후보자는 대학원 진학으로 입대를 연기한 후인 1977년 재검 때 좌우 시력이 0.1로 현역병 대상이었는데 한 달 후인 같은 해 8월에는 좌우 0.05로 시력이 정정돼 군 면제를 받은 뒤 3년 후 사법시험 합격 채용 신검에서는 좌우시력이 다시 0.1로 돌아왔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군 면제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병적기록부에 1977년 7월과 한 달 뒤인 8월 병적기록관의 서명 필체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의혹에 무게를 실었다. 황 후보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국방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에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공개 사과했다.

황 후보자는 "0.1 시력은 나안 상태에서 시력표를 보고 한 것이고, 0.05 시력은 굴절도에 의한 정밀검사"라며 "사법시험 후 0.1로 환원된 건 오래된 일이라 기록은 남지 않았고, 의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시력표에 0.1밖에 없기 때문에 필요하면 0.1로 쓴다"고 해명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라인설에 대해 같은 마산중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비서실장과는 사적인 교류나 만남은 이번 건 (감사원장 내정) 이전에는 없었고, 민정수석과는 법조인 모임에서 어쩌다 만나 인사를 나누는 정도"라고 해명했다.

이밖에 각종 법ㆍ규정 위반 의혹도 제기됐다. 먼저 업무추진비의 불투명, 부적절 집행 의혹과 관련해 황 후보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직원들과의 단합을 위해 싼 비용으로 구내식당으로 한 것 등이 논란을 가져와 송구하다"고 말했다.

2001년에서 2002년 사이 빚을 내 드림창투 등 비상장 주식을 취득하고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직무 관련성이 있는 정통부 산하 관련 심의위에서 활동하면서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데 대해서도 "처신이 적절치 않았다"며 "백지신탁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또 정보통신정책심의위에서의 활동과 법관 재직 시설 SKT, 롯데건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등에 대해 친(親) 재벌적 태도나 판결을 내렸다는 지적과 관련해 "동의할 수 없다. 그렇게 판결할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1981년 경기도 광주군에서 서울 강동구 암사동으로 주소지를 이전한 것에 대해선 "출산 편의를 위해 주소지를 옮긴 것은 사실이다.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업무시간과 서울시립대 수업 시간이 겹친 것과 증여세 늑장 납부 의혹에 대해서는 "송구하다"고 말했다.

여야 반응 '온도차'

인사청문회 이후 여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 소속 특위 위원들은 황 후보자가 감사원장으로서의 적합한 자질을 갖췄다고 한목소리로 호평했다. 민주당의 특위 위원들은 대체로 유보적 입장을 취했고, 일부는 부적격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인사청문회 다음날인 지난 13일 황 후보자에 대한 심사경과보고서 채택 여부가 논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야당 소속 청문위원들은 병역 면제 관련 자료 등 추가 요청 자료가 이날 오후 2시 회의 개의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의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어 지난 15일로 예정된 황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처리 역시 불투명해졌다. 하루 전인 지난 14일 민주당이 황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선결조건으로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을 받고 있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내세우고 나선 때문이다.

민주당의 연계전략은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압박을 극대화하려는 정략으로 분석된다. 황 후보자의 경우 국회 본회의 표결이 필요한 만큼 압박 효과가 적지 않다. 그러나 황 후보자가 이렇다 할 흠결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향후 감사원장 자리에 안착하리란 시선이 많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 후보자의 거취가 표류하면서 감사원장 자리의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민주당은 '정략적 발목잡기'라는 역풍에 부딪힐 가능성도 크다"며 "조만간 문 후보자의 거취가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