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창규 KT 회장 내정자1989년 삼성전자 첫발 반도체 성장 주도반도체 최고 권위의 '앤디 그로브상' 수상"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업무 무거운 책임감"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업무를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황창규 KT 회장 내정자의 첫 인사말이다. 이 한마디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황 내정자의 양어깨는 무겁다.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KT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인 때문이다.

내부조직을 추스르는 일을 시작으로 실적회복과 신성장동력 마련 등 해묵은 과제가 셀 수 없다. 그럼에도 KT 내부에선 기대의 시선이 많다. 삼성전자 스타 CEO 출신이 이완된 조직을 조기에 정비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켜 주리란 생각에서다.

삼성 반도체 신화 주역

KT는 지난 16일 CEO추천위원회를 개최하고 이석채 전 KT 회장의 후임으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내정했다. 황 내정자는 내년 1월 중순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으로 공식 선임된다. 임기는 2017년 정기 주주총회 개최일까지 3년이다.

황 내정자는 KT의 미래전략 수립과 경영혁신에 필요한 비전설정능력과 추진력 및 글로벌마인드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IT분야 전문가이면서 새로운 시장창출 능력과 비전실현을 위한 도전정신을 보유한 것도 장점으로 평가됐다.

황창규 KT 회장 내정자가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 시절인 2006년 세계최초 CTF 낸 드기술 개발과 상용화 성공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으로서 국가의 CTO를 역임하는 등 ICT 전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부분 역시 강점이다. KT는 황 내정자가 현재 KT가 처한 위기를 극복함과 동시에 경영을 본궤도에 올리고 장기적으로 회사의 가치를 크게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53년 부산에서 출생한 황 내정자는 부산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탠퍼드대 책임연구원과 인텔 자문역 등을 거쳐 1989년 삼성전자에 첫발을 들였다.

황 내정자는 1991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직을 맡았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신화'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황 내정자는 2000년부터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사업부장을 담당하면서 D램 업계 1위 경쟁력을 키우고 플래시메모리 부문에서 삼성전자를 업계 1위에 올려놨다.

황 내정자는 특히 2002년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에서 '반도체 메모리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내용의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황 내정자의 성을 따서 이를 '황의 법칙'으로 칭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1999년 256MB에서 2000년 512MB, 2001년 1GB, 2002년 2GB, 2003년 4GB, 2004년 8GB, 2005년 16GB에 이어 2006년에는 32GB 개발에 성공하면서 '황의 법칙'을 그대로 입증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황 내정자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산업계 인사 중 최초다. 또 2006년엔 세계 반도체 기술발전에 기여한 학자와 기업인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앤디 그로브상'을 동양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2009년 삼성전자를 떠난 황 내정자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초빙교수와 지식경제부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장을 지냈다. 이어 올 3월 성균관대학교가 황 내정자의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해 석좌교수로 임용했다.

황 내정자는 자기 관리가 엄격하고 치밀하게 성과와 실적에 치중하는 인물로 통한다. 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실행해나가는 능력과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에 몸담았을 당시 군대식 리더십을 보여주며 '독한 사람'이란 말을 들었다.

반면, 소통에는 적극적이라는 평가다. 황 내정자는 회의시 지위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주문한다고 한다. 삼성전자 시절 사원급 연구원이 임원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보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일화도 있다.

황 내정자는 다방면에 걸쳐 재주가 많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미술에도 일가견이 있다. 특히 구한말 사군자 중 매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황매산 선생의 친손자로도 유명하다. 이밖에 테니스와 골프 실력도 수준급이라는 전언이다.

KT 내부 반응 두 갈래

황 내정자 선임에 대한 KT 내부의 반응은 두 갈래다. 먼저 임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취임 후 황 내정자가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석채 전 KT 회장도 취임 후 70여명의 임원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은 바 있다.

특히 현재 KT 임원진에는 이 전 회장의 측근 100여명이 포진해 있다. 따라서 황 내정자가 수월하게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선 물갈이가 필수라는 분석이다. KT는 현재 임원진 물갈이를 포함한 조직 개편 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조사작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KT 직원들은 환호했다. 삼성전자 '스타 CEO' 출신인 황 내정자가 회장에 취임하면 KT가 글로벌 기업으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여기에 전임 회장 재임 시절 무너진 조직을 재건하고 사기도 진작시킬 것이란 희망도 작용했다.

해묵은 과제 '첩첩'

황 내정자는 미처 축배를 들 겨를도 없이 업무에 돌입했다. 지난 17일 서울 모처에 사무실을 마련해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여있는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잠시도 쉴 새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황 내정자의 선결 과제는 내부조직을 추스르는 일이다. KT는 이 전 회장의 불명예 퇴진과 맞물려 임직원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여기에 현재진행형인 검찰 수사도 부담이다. 흔들리는 조직을 안정시키는 한편 임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이를 위해선 실적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 들어 KT는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올 1분기 KT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6조1,045억원과 3,673억원에서 올 3분기 5조7,346억원, 3,078억원으로 각각 6%, 16% 줄었다.

고객수 역시 경쟁사에 밀리고 있다. 10월 기준 KT의 이동전화 서비스 시장 점유율은 30.1%로 올 1월보다 0.9%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LG유플러스의 점유율은 1.2%포인트 상승했고, SK텔레콤은 0.3%포인트 하락했다.

실적 회복을 위해선 조직슬림화가 필수다. 올 9월 기준 KT의 정규직 직원 수는 총 3만1,750명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직원을 합친 수보다 6배 정도 많다. 경영효율화를 위해 구조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도 시급하다. 국내 통신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때문에 통신사들은 '탈(脫)통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 해외 진출 방안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KT도 통신을 넘어 새 먹거리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앞서 기존 탈통신 사업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 전 회장은 '탈통신'을 기치로 취임 전 30개이던 계열사를 53개로 늘렸다. 그룹 매출은 커졌지만 이익은 늘지 않았다. 시너지 창출보다 통신 사업 부진을 비통신 계열사 실적으로 메운 때문이다.

삼성전자와의 관계 개선도 황 내정자의 역할로 꼽힌다. 2009년 이 전 회장이 국내 최초로 아이폰을 본격 도입하면서 KT는 삼성전자와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양측은 갈등을 반복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전자는 KT에 자사 단말기를 경쟁사보다 늦게 공급하거나, 아예 일부 단말기는 공급하지 않는 등의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이처럼 불편한 두 기업의 관계를 삼성전자 출신인 황 내정자가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 내정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낙하산의 고리를 확실하게 끊는 것이다. KT는 그동안 회장 선임과 관련해 낙하산 인사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황 내정자는 이런 논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황 내정자를 둘러싸고도 일부 잡음이 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친박' 핵심인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과 가까운 사이라는 게 주된 내용이다. 황 내정자는 임기 3년 동안 이런 낙하산 의혹이 단지 허무맹랑한 루머였음을 입증해야 한다.

황 내정자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양호'하다. 그러나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제조사 출신으로 서비스업인 통신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을 것이란 점과 노조가 없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강한 KT 노조와의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기 힘들 것이란 걱정이다.

여기에 재벌식 성과주의 마인드가 강한 황 내정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하지 않을지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황 내정자는 과연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위기의 KT를 구해낼 수 있을까. 그의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