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지갑 열 '블루슈머'를 잡아라

부유한 노년층 상대 '실버시터' 인기
소비 주도 '골드퀸' 전용 브랜드도

'반려족' 인구 1000만명 넘어서
펫비즈니스 시장 수조 원대 규모

유통단계 줄인 커뮤니티 직거래 활발
생협의 '아이쿱'·'스몰웨딩족' 각광

디지털 부작용 해소'디톡스'등 눈길

갑오년 새해가 밝았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 어느 때보다 낮은 청년취업률에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시기까지 겹치며 청ㆍ장년 상관없이 저마다 창업에 나서고 있지만 그만큼 실패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소규모 자영업자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인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필요'와 '용기'만 가지고 성공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 인구구조의 변화, 소비트렌드의 변동 등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꼭 필요해진 셈이다.

이와 관련, 통계청에서 2007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는 블루슈머(Bluesumer)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의 소비자를 뜻하는 블루슈머를 찾아내 이들을 대상으로 창업을 기획한다면 불황 속에서 성공을 일궈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愛 밥상족'을 대상으로 한 유기농ㆍ친환경 식사 상품과 서비스, '가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아토피 방지상품 등 2009년 블루슈머에서 언급된 사업들은 이미 유망직종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2013년과 2014년 통계청이 발표한 블루슈머 자료들을 통해 창업을 계획하는 이들이 어떠한 아이템을 잡으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살펴봤다.

'은퇴한 부유층'의 지갑을 열어라

연령 및 삶의 조건을 기준으로 삼을 때, 은퇴할 나이가 됐음에도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 착실히 준비해온 '은퇴한 부유층'들과 중년의 나이에도 자신을 위한 소비는 아끼지 않는 '꽃보다 누나'들이 블루슈머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바탕으로 2011년 발간한 '은퇴빈곤층의 추정과 5대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 후에도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은퇴부유층'은 전체 은퇴가구의 3.2% 수준이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착실한 노후준비에 자녀의 출가로 부양의무에서도 해방돼 여유롭게 노후생활이 가능한 은퇴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마케팅 서비스가 유망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은퇴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고급 마케팅 서비스가 일찍부터 발달해왔다. 노년층 'TONK족(Two Only No Kidsㆍ자녀에게 부양받기를 거부하고 부부끼리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노인세대)'에 맞는 평면 설계의 주택이 발달했고 고급 버스를 개조해 고액의 부인복ㆍ가방ㆍ보석 등을 싣고 이동판매에 나서는 새로운 형태의 판매업도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은퇴부유층을 겨냥한 사업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교외 대신 도심과 가깝고 생활이 편리한 실버타운이 인기를 끌고 있고 백화점에서는 부유층 노년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담 코디네이터를 운영해 주목을 받고 있다. 화장품 회사 폴라의 경우 백화점 이용이 어려운 지방의 부유층 노인 고객을 위한 이동 판매 서비스를 2011년부터 시작했다. 그밖에 은퇴부유층의 육체적인 변화와 노인심리를 이해해 적극적으로 상담하는 정서적 상담업무와 유사시의 응급조치를 수행하는 건강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주는 프리미엄 '실버시터(Silver Sitter)'도 유망 직종으로 꼽히고 있다.

경기침체에도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40~50대 여성을 뜻하는 '골드퀸(Gold Queen)'도 주요 블루슈머들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4050세대의 2011년 대비 2012년의 소득 증가율은 2030세대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이에 4050세대의 생활비 관리를 주로 하는 골드퀸들이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불경기 속에서도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골드퀸 여성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맞춤형 상품이나 서비스가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패션업체에서는 기존의 아줌마 패션이 아닌 4050 여성 전용 브랜드를 속속 선보이고 있고 이들을 겨냥한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외식업계도 소비시장의 큰손인 4050 여성을 위한 이색 마케팅을 발 빠르게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과 떨어져 반려동물 애지중지

새로운 가족형태로 인해 나타난 블루슈머도 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 '견우와 직녀'들과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반려족'들이 그 주인공이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다른 지역에 가족이 있는 가구는 245만1,000가구로 전체의 14.1%에 달한다. 이중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이른바 '기러기 가구'는 전체 결혼 가구의 10%에 달하는 115만 가구에 이른다.

직장 등의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야 하는 남편들에게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되는 문제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다. 생활비가 이중으로 들기 때문에 아파트 등 큰 주거공간 대신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얻어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관련해 이삿짐이 필요 없이 모든 생활가전 가구가 구비된 소형 주거형태인 코쿤 하우스(Cocoon House)가 주목을 받고 있다. 원룸보다는 작고, 고시원보다는 규모가 커 혼자 생활하기에 불편이 없다.

세탁하기에 번거로운 의류를 항상 새 옷처럼 관리해주는 의류관리기 등 가사에 서툰 혼자 사는 남편들의 부담을 덜어줄 생활가전도 인기를 얻고 있고 혼자 외식하는 사람들을 위해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만들어 눈치를 보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도 생겼다. 떨어져 있는 가족들의 일상을 수시로 보고 싶어하는 홀로 생활하는 이들에게는 와이파이 기능이 탑재돼 사진을 무선으로 전송받을 수 있는 디지털 액자, 홈 CCTV 등의 감성형 가전제품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와 독신가구의 증가로 애완동물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여기는 반려족도 늘어났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1,000만명을 넘으며 관련 시장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펫산업협회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따르면 한국의 펫비지니스 시장은 수 년전 이미 5조원대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용품과 서비스가 점점 더 차별화, 고급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천편일률적이었던 건조사료, 깡통사료 대신 고급 유기농 간식과 수제 특화 간식이 등장하는가 하면, 반려동물의 건강을 염려하는 친환경 목재가구와 애완견 전용 고급 유모차도 수입되어 판매 중이다.

애완견들을 위한 TV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미국, 이스라엘에 이어 전세계 세 번째로 Dog TV가 올해 2월부터 서비스될 예정이다. 낮 시간 홀로 지내는 개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흥미와 학습을 유도하는 내용으로 개들이 몰입해 볼 수 있는 시각과 청각에 최적화돼있다. 까다로운 반려동물 수입검역과정과 동물 학대방지 및 사후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가능한 반려동물 관리사도 유망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소비활동도 주목

어차피 할 소비라면 조금은 특별하게 해보자는 생각을 지닌 대안소비자들도 블루슈머로 각광을 받고 있다. 유통단계를 뛰어넘기도 하고 공정무역 제품을 이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매년 폭등하는 소비자물가로 아예 유통단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하는 블루슈머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산지가격과 소매점 물가 사이에 있는 여러 단계의 유통구조 때문에 물가가 높아졌다고 판단, 행동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으로 커뮤니티 직거래 방식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유통단계를 뛰어넘는 것은 커뮤니티 직거래 방식이다. 아파트부녀회, 동문회 등의 커뮤니티가 생산자와 직접 연계하는 공동구매를 통해 제품단가를 낮추는 일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약재와 울금 같은 특용작물을 비롯해 육아와 교육 등 서비스 부문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고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방식도 생겨났다. 직거래 유통방식이 늘어남에 따라 직거래를 주선하는 중개업이나 온라인 직거래 안전 서비스 역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활협동조합(생협)도 유통단계를 줄여 구매가격을 낮추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생협인 아이쿱은 2003년 287억 원이던 매출이 2011년 3,000억 원을 넘어서며 고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금융 및 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되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어 협동조합의 큰 성장세가 예상된다.

'웨딩푸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스몰웨딩족'들도 블루슈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결혼비용의 거품을 빼기 위해 가짓수를 줄이고 실속은 높인 웨딩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하객 초청을 최소화하고 교회의 정원이나 집에서 결혼식을 치르기도 하고 주례 없는 간소한 결혼식도 인기를 얻고 있다.

스몰웨딩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이 등장해 통칭 '스드메'로 불리는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묶은 합리적인 가격의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고 여행사들은 '자유허니문여행'이라는 이름의 실속 여행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주택구입비용을 줄이기 위해 작은 규모의 신혼집을 마련, 개조하는 인테리어업도 유망한 사업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고 공간 절약형 가구, 가전제품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왕 소비할 것이라면 죄책감을 덜 느끼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하자는 뜻을 앞세운 '배려 소비자'들도 눈에 띈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이 지난 2012년 실시한 '국내소비자의 CSR관련 인식조사'에 따르면 '상품구매 시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사회적 책임을 잘 이행한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는 편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5.9%가 '그렇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리활동을 하는 사회적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2013년 12월까지 고용노동부로부터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은 1,012개이다. 이들은 환경, 보건, 문화, 교육,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경우 생존율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2012 사회적기업실태조사'에 의하면 2007년에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의 생존율이 82.7%였으며, 2009년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은 모두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시대 불편함을 해소하라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급속도로 찾아온 디지털 시대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블루슈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으로 후유증을 앓거나 지우고 싶은 인터넷상의 흔적들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등 증상도 다양하다.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1년 인터넷중독실태조사'에 의하면 스마트폰 중독률은 8.4%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는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심해지는데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의 경우 현실에 무감각해지고 주의력이 크게 떨어지는 '팝콘 브레인'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SNS 사용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엠브레인과 SK커뮤니케이션즈가 2011년 국내 SNS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용자의 40.1%는 SNS 이용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중독의 폐해는 스트레스를 넘어 육체적 고통을 초래하기도 한다. 머리가 거북이처럼 구부정하게 앞으로 굽어 나오는 '거북목 증후군'과 손가락이 저리거나 엄지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지는 '손목터널 증후군'을 호소하는 스마트폰 사용자들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렇듯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늘어나면서 인체에 있는 독소를 제거해 건강을 찾는 '디톡스(Detox)' 요법을 디지털 분야에서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통신사와 소프트웨어업체는 자녀들의 스마트폰 이용을 조절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고 스마트폰 액세서리 분야에서는 눈 건강을 위한 특수 안경, 안구마사지 기계 등과 손을 사용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는 거치대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밖에도 정보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스마트폰용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는 내 흔적들을 지워주는 사업도 각광을 받고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사이트에 남겨둔 콘텐츠와 개인정보들을 관리해주는 '디지털세탁소'가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온라인 상조회사인 미국의 라이프인슈어드닷컴은 가입한 회원이 사망하면 인터넷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사전에 작성한 유언을 확인한 후 고인의 '흔적 지우기'에 들어간다. 페이스북 등에 올려둔 사진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 회원이 다른 사람 페이지에 남긴 댓글까지도 일일이 찾아 지워준다.

아예 인터넷에 흔적을 남기지 않게 해주는 서비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냅챗의 경우 10초가 지나면 받은 사진이나 글이 자동적으로 삭제된다. 국내 포털사이트 다음의 '5초 메시지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1초, 3초, 5초, 10초 단위로 시간설정이 가능하며 해당 시간이 지나면 삭제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