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업계 '미다스의 손'게임·뷰티·도서·내비게이션 이어 증권 애플리케이션 출시 '주목'한게임, NHN, 카카오 등 PC·모바일 넘나들며 '승승장구'

'카카오'의 영향력이 온ㆍ오프라인을 뒤덮으며 김범수 의장의 존재감이 또 한 번 재조명되고 있다. 게임, 뷰티, 도서, 내비게이션, 미팅 등 영역을 확장해온 카카오가 마침내 증권 애플리케이션까지 출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까닭이다.

'증권 플러스 for 카카오'의 출시 배경에는 김 의장이 있었다. 김 의장이 설립한 벤처캐피털 케이큐브벤처스는 일찍이 이 애플리케이션의 성장성을 점치며 투자를 진행해 왔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은 얼핏 보면 일반 증권사 증권거래 애플리케이션(MTS)과 큰 차별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카카오톡을 통해 등록한 관심종목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투자 수익이나 손실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다. 국내 가입자만 3,500만명이 넘는 '카카오톡'을 기저에 깔고 있기에 일부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해당 애플리케이션의 성공을 점치고 있다.

증권뿐만이 아니다.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국민게임으로 불리던 '애니팡'을 시작으로 카카오를 통해 서비스됐던 애플리케이션 대부분은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중 'for 카카오'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 것을 찾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 김 의장이 걸어온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가난 딛고 삼성에 입사

"항구에 머물러 있는 배는 언제나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이유는 아닙니다." 김범수 의장이 NHN을 떠나며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자신의 말처럼 김 의장은 언제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배를 몰아왔다.

1966년생인 김 의장은 할머니를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호구지책을 위해 아버지는 막노동을 해야 했고 어머니 역시 식당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나이였지만 김 의장은 그런 호사를 누릴 수도 없었다. 안주할 배경이 없었고 어려서부터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해야만 했던 그 당시의 경험이 지금의 김 의장을 상당 부분 만든 셈이다.

국민학교 시절 김 의장의 일과는 집에 있던 백과사전을 읽고 외우는 것으로 채워졌다. 줄줄이 꿴 백과사전 내용을 바탕으로 친구들을 모아 퀴즈게임을 주최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김 의장이 즐겼던 백과사전의 지식과 게임이 이후 '한게임'과 '카카오'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도 큰 무리가 아니다.

김 의장이 1년을 재수해 들어간 1986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는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대표(이상 86학번),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85학번)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 의장과 지금의 NHN을 만든 것이나 김정주, 김택진 대표로부터 카카오에 투자 받은 것 등도 이 때의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학 재학 시절 후배 사무실에서 PC통신을 접한 김 의장은 '연결된 세상'이 주는 매력에서 한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산업공학을 전공했던 그의 진로를 바꾼 것도 그때의 경험이었다. PC통신 관련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딴 김 의장은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김 의장은 삼성SDS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남들이 코볼, 포트란으로 프로그램을 짤 때 유독 윈도에 집중했던 김 의장은 삼성SDS가 국내 최초의 윈도 환경 PC통신 '유니텔'을 성공시키는데 1등 공신이 됐다. 기획, 설계, 개발, 유통,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를 섭렵하며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러나 김 의장은 재계 1위의 삼성에 머무르고 있지만은 않았다.

도전, 또 도전

잘나가던 직장인으로 있던 1998년, 돌연 사표를 던지고 나온 김 의장은 '온라인에서 즐기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 '한게임'을 세웠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마련한 500만원으로 창업했지만 IMF외환위기 직후였던 까닭에 금세 자금난에 빠진 김 의장은 한양대학교 앞에 국내 최대 규모의 PC방을 열어 안정적인 수익원을 만들기도 했다.

전 세계 최초로 웹에서 자동으로 클라이언트를 구동해 즐기는 한게임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인터넷 시장을 장악했다. 1999년 말에 첫 서비스를 시작한 한게임의 이용자는 3개월 만에 100만명을 넘어섰고 1년 반 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다.

김 의장은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던 2000년,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한게임 4주당 네이버 1주의 합병으로 합병비율이 불리하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그는 두 회사가 힘을 합쳤을 때에 발생하는 시너지효과만 생각했다.

한게임, 네이버의 합병으로 탄생한 NHN에서 김 의장은 이해진 의장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4년 NHN 단독대표가 된 김 의장은 한국게임산업협회 초대회장과 벤처기업협회 부사장을 맡아 대외 활동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2007년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해 NHN USA 대표로 자리를 옮긴 김 의장은 이듬해 다시 회사를 떠났다.

모드 걸 내려놓고 미국으로 떠나 안식년을 즐기던 김 의장에 눈에 들어온 것은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이었다. 마치 PC통신과의 조우했을 때처럼 아이폰은 그에게 모바일 혁명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다.

한국에 들어온 김 의장이 새롭게 손을 뻗은 곳은 벤처기업 '아이위랩'(현 카카오)이었다. 국내에 출시도 되지 않았던 아이폰을 들여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라고 주문했던 김 의장은 '부루닷컴', '위지아' 등 몇 번의 실패 끝에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탄생시켰다.

2010년 3월 카카오톡으로 국내 IT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카카오는 출시한지 불과 1년 만에 1,000만 이용자를 돌파하는 등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로 떠올랐다. 2012년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한 이후 지금까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카카오로 김 의장은 지금까지 국내 모바일의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힐링전도사로 나선 키다리아저씨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미다스의 손' 김범수 의장은 사회공헌활동에도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재벌 총수들처럼 복지재단을 만들어 돈을 쾌척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 국민의 '힐링전도사'로 나선 것과 후배 기업인들을 위한 '키다리아저씨'가 된 것이다.

김 의장은 지난해 6월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와 함께 '대한민국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김 의장은 "한국의 직장인은 경제ㆍ사회적 압박 속에서 지쳐있다"며 "잠시 주춤하고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 감정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심리치유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NHN에 근무하던 2006년 마인드프리즘에서 정신분석 검사를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 마음 치유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당시 큰 성공을 거뒀음에도 심한 마음의 공허감을 느꼈던 자신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마인드프리즘의 지분 70.5%를 인수한 김 의장은 검사료와 출판비를 포함해 500만원이었던 프로그램 비용을 8만원으로 낮췄다. 치유 프로그램인 '내 마음 보고서'는 현재 카카오톡의 선물하기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올해 중 심리치유를 위한 사회적기업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이후 카카오와 사업적으로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김 의장은 후배 기업인 지원에도 열심이다. 지난해 10월 김 의장은 모바일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1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 해 4월 말 청년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 조성을 위해 100억원을 선뜻 내놓은 것도 눈에 띈다. '카카오펀드'라고 불리는 해당 펀드에는 카카오가 100억원, 정부가 180억원, 민간이 20억원을 각각 출자하는 방식으로 조성된 바 있다. 기업 규모에 비하면 막대한 자금을 잇달아 내놓는 김 의장의 쾌척은 분명 남다른 면이 있다.

그 밖에도 김 의장은 카카오와 별도로 케이큐브벤처스라는 투자사를 설립, 모바일 생태계 활성화에 공헌 중이다. NHN을 나온 직후 "한국이 100명의 능력 있는 벤처기업인을 배출할 수 있도록 자금과 노하우를 지원하는 일을 하겠다"던 그의 공언이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주식부호 지도 다시 쓸까

김범수 의장의 카카오는 현재 IT업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으로 꼽힌다. 모바일메신저 시장을 선점한 카카오톡이 PC메신저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내놓는 애플리케이션마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2011년 18억원 매출에 12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카카오는 2012년 462억원 매출에 70억원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고 지난해에는 2,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놀라울 만큼의 성장폭을 기록한 것이다.

카카오의 성공으로 김 의장이 지니고 있는 주식가치도 쭉쭉 오르고 있다. 비상장사인만큼 카카오의 정확한 주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장외 거래 가격을 통해 살펴본 카카오의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2011년 9월 카카오가 206만주의 전환우선주를 발행할 당시 발행가는 1만원 수준이었다. 당시 카카오는 한국투자파트너스 매버릭캐피탈, 위메이드 등을 통해 206억원을 유치했다. 일 년 뒤인 2012년 4월 전환우선주(460만주)를 다시 발행할 당시 발행가는 2만원이었다. 이 때는 텐센트와 위메이드가 각각 720억원, 20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10월 카카오가 우리사주 25만주를 삼성증권을 통해 처분했을 때 가격은 주당 7만9,560원이었다. 말레이시아의 버자야그룹이 지난 1월 카카오 지분 0.4%를 사들일 당시 가격은 주당 9만원 선이었다. 매년 수배로 성장, 마침내 액면가의 180배까지 뛰어오른 것이다.

매년 실적이 뛰어오르고 있다는 점을 굳이 염두하지 않고 최근에 거래된 주당 9만원으로만 계산해도 카카오의 지분 30.9%를 지니고 있는 김 의장의 주식 평가액은 1조3,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주식부호 중 10위권에 해당하는 액수다. 개인회사인 아이위서비스를 통해 보유한 카카오 지분 24.5%까지 염두하면 단번에 주식부호 4위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 카카오의 기업공개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주식부호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카카오톡의 가입자 수 확대가 더뎌지고 있다는 점이나 카카오가 글로벌 시장 공략에 다소 부진한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승부사'의 면모를 보여온 김 의장이 이번에는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주목되는 이유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