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1·11 전대 이후…차기주자 가시화 계기

여권 권력지도가 바뀐다
열린우리당 1·11 전대 이후…차기주자 가시화 계기

열린우리당은 12월29일 당 의장 경선을 통해 전당대회(1월11일)에 나설 예비후보 8명을 선출했다. 정동영 의원을 비롯해 수도권의 이부영 의원, 영남권에서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등이 선두권을 유지하는 등 지도부의 윤곽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

이번에 구성되는 당 지도부는 총선의 중심체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 총선이후 노무현 정권의 여당 역할을 주도하게 된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 내의 권력재편과 향후 대권을 꿈꾸고 있는 인물들의 정치적 행보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물 건너 간 여당판 빅매치

12. 29 예선과 당 안팎의 여론을 종합할 때 열린우리당의 전대는 정동영 의원을 축으로 각 계파 대표주자들이 맞붙는 ‘1대 다자(多者)’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동영 의원의 독주가 예상돼 관심을 모았던 여당판 ‘빅매치’는 물 건너 갈 전망이다.

유력한 당 의장 후보로 거론된 김근태 원내대표가 예선전에 불참, ‘정동영 대 김근태’ 흥행 카드가 무산된 게 직접적인 이유. 민주당의 ‘조순형-추미애’ 흥행 이벤트를 목도한 열린우리당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때문에 위기의식이 팽배한 열린우리당에서는 흥행 점화를 위해 합종연횡을 통한 ‘정동영 대 영남 단일후보’, ‘정동영 대 이부영’ 카드 등이 거론되고있지만 기대 만큼의 효과를 거둘 지는 미지수다.

열린우리당 뿐만 아니라 정가에서 ‘정동영 대 김근태’ 카드가 관심을 끈 것은 단지 박빙 승부의 흥행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두 의원이 여권의 유력한 차기 주자라는 점이 ‘빅매치’의 가장 큰 속성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여권의 ‘대권 예비전’을 미리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이다.

실제 정동영 의원과 김근태 대표는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란히 출마한 바 있어 이미 차기 주자 반열에 올라있는 상태다.

특히 정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직전인 12월18일 종로 유세에서 “국민경선을 끝까지 지켜주고 내 등을 떠받쳐 주었다”며 차기 주자로 치켜 세워 주목을 받아왔다. 당시 노 대통령은 정 의원 외에 추미애 민주당 의원을 차기 여성주자로 부각시켜 눈길을 끌었는데 묘하게도 두 의원은 최근 주목받는 차기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빅매치’ 무산과 관련, 정동영 의원과 김근태 의원이 대권에 대해 각기 다른 접근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즉 정 의원이 당 의장 경선을 대권의 확실한 지렛대로 삼으려고 한 반면, 김 의원은 당 의장 경선에서 발을 빼 다음 기회를 노렸고 원내대표로서의 책임감도 적지않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것은 정 의원이 김 의원의 출마를 공개적으로 권유한 반면 김 대표는 김원기 공동의장을 비롯해 다수 의원들이 지지를 전제로 출마를 요청했음에도 끝내 거부한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 대표가 예비선거 등록일(12월28일) 막판까지 장고를 거듭한 것은 실질적 당 대표인 당 의장이 갖는 ‘대권 선점 효과’를 의식, 고민을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참모도 “김 대표가 (2002년)민주당 경선에서 3%밖에 얻지 못했는데, 당 구조도 바뀐 만큼 현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대권에 다가가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으니 당 의장 경선에 나서라고 주문했다”며 “김 대표가 등록일까지 출마를 고민한 것은 대권에 대한 고려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반문, 이를 뒷받침했다.

그는 김 대표의 당 의장 경선 불출마와 관련,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말해 김 대표의 대권꿈이 여전함을 은근히 드러냈다.

정동영ㆍ김근ㆍ김혁규 3강구도에 관심

‘정동영 대 김근태’의 빅매치가 관심을 끈 데는 영남권의 차기 주자로 거론된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열린우리당 합류도 한몫 했다. 당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주변에서는 김 전 지사가 총선서 전국구 상위 순번으로 금배지를 단 뒤 총선 후 총리에 기용, 대권 주자로서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그럴듯한 얘기가 나돌았다.

또한 ‘조순형 대 추미애’의 흥행에 버금가는 효과를 내기 위해 김 전 지사가 당 의장 경선에 출마, ‘정동영 대 김혁규’의 빅매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영남권이 결집해 김 전 지사를 밀어 박빙승부를 유도한다는 시나리오다.

그럴 경우 소장 대 중진, 호남 대 영남, 차기 주자의 대결 등 ‘흥행’ 요소가 많아 대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지사는 노 정권의 실세인 이강철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의 적극적인 권유에도 불구하고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최근 열린우리당 주변에서는 김 전 지사의 지명직 중앙상임위원 내정설과 함께 차기 ‘영남주자’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만일 정동영 의원이 당 의장에 선출되고 김 전 지사가 중앙상임위원이 된다면 김근태 원내대표까지 포함해,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3인이 우리당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차기 대권을 향한 ‘정동영-김근태-김혁규’의 또다른 ‘빅매치’가 이미 시작되는 셈이다.

■ 또 하나의 흥행카드는 '노무현·강금실'

열린우리당의 1. 11 전대는 ‘빅매치’가 무산, 적자가 불가피해졌다. 한나라당이 ‘최병렬 대 서청원’, 민주당이 ‘조순형 대 추미애’ 카드로 대박을 터트린 것과 대조적이다.

본래 여권은 12월 개각 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강금실 법무부장관을 차출, ‘정동영 대 강금실’이라는 빅매치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물론 열린우리당 김원기 의장까지 나서 강 장관에게 수없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강 장관은 한결같이 ‘My Way’를 외치며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다음에 등장한 빅매치 카드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였지만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인사가 곧바로 여당의 ‘얼굴’이 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면서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해 무산됐다. 이에 따라 ‘정동영 대 김근태’ 카드가 대타로 급부상했지만 이 또한 김 대표의 불출마로 무산됐다.

때문에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빅매치’ 실패를 만회할 새로운 빅매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대 후 1월말 입당설과 강금실 장관의 2월 입당설이 그것이다.

지난 12월20일 노 대통령과 김근태 원내대표가 부부동반으로 청와대 회동을 가졌을 때 김 대표는 노 대통령에게 열린우리당 입당을 요청했고, 노 대통령은 ‘시기’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노 대통령의 입당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노사모 출신의 청와대 386 관계자도 “2월쯤 (열린우리당에)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그러한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또한 강금실 장관도 현재 고집을 꺽지 않고 있지만 2월을 전후해 노 대통령의 ‘올인(All in)’ 정치에 마지막 흥행 카드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이란 장애물이 있고, 강 장관의 원칙적이고 자유분방한 정신이 노 대통령의 ‘올인’ 정치와 타협을 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1-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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