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공천 물갈이' 내분당권파·비당권파 첨예한 대립, '분당' 최악사태 가능성도

한나라 "갈데까지 가는거야" 격화
한나라당 '공천 물갈이' 내분
당권파·비당권파 첨예한 대립, '분당' 최악사태 가능성도


한나라당이 '공천 파동'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지구당 당무감사 자료 유출로 촉발된 당내 갈등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대지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의 날카로운 대치국면은 오기와 감정싸움까지 뒤섞여 악화일로로 치닫는 형국이다. 최악의 경우 분당사태로 비화할 것이라는 얘기도 거침없이 나온다. 한 당직자는 “브레이크 없이 서로 마주 달리는 기차를 보는 것 같다”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이 1997년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비주류측 왜 봉기했나?

한나라당에 휘몰아치고 있는 작금의 내분사태는 멀게는 최병렬 대표 체제 출범 때부터, 가깝게는 “17대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되지 못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12월21일)는 최 대표의 대폭적인 물갈이 발언 때부터 예고됐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당무감사 자료 유출은 언젠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당내 공천 갈등을 조금 일찍 폭발시킨 도화선에 불과하다. 당 중진들을 겨냥한 이재오 전 사무총장의 ‘5ㆍ6공 청산론’이 작은 불씨를 던졌다면, ‘지역구 의원 30% 이상이 공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내용의 자료 유출은 불꽃을 일으키는 시너 역할을 한 셈이다.

사실 서청원 전 대표와 친 이회창 계를 주축으로 한 당내 비주류 세력은 그동안 검찰의 대선자금 불법모금 수사와 당 운영 방식 등을 둘러싸고 최 대표 등 당지도부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불만이 쌓일대로 쌓여 당권파에 대한 역공을 호시탐탐 노리던 비주류측에게 당무감사 자료 유출 건은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비주류측의 한 재선 의원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이렇게 기름을 끼얹을 수 있느냐”며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또 다른 한 의원은 “(당권파가) 우리 목에 칼을 들이대겠다는 데 그냥 있을 수 있느냐”고 날을 세웠다. 비주류측의 이번 ‘봉기’는 단순한 기세싸움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사활을 건 ‘생존게임’으로 당권파와의 전면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 대표는 일찍부터 “정치는 여론을 존중해야 하는데 여론은 어느 당이건 대폭적인 물갈이를 요구하고 있다”며 17대 총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방침을 시사해 왔다. 물론 최 대표도 소속 의원들의 반발을 의식, “대표의 권한이 아닌, 시스템에 의한 물갈이”를 강조하고 있지만, 최 대표의 주변 인사들은 “텃밭인 영남권의 인상적인 물갈이와 이회창 전 총재의 그림자 제거 없이는 열린우리당의 침투를 막아낼 수 없을 뿐더러 수도권에서도 승산이 없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최 대표측은 이를 위해 당내에 일정한 세(勢)를 갖고 있는 김덕룡, 강재섭 의원 등에게 상당한 공을 들여 범주류 연합군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 당내 갈등과 관련해서도 이들 두 의원은 최 대표(주류측)과 서 전 대표(비주류측)의 양보와 타협을 주문하고는 있지만 최 대표 쪽에 가깝게 서 있다는 전언이다. 아울러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 소속 남경필, 오세훈, 원희룡 의원 등도 최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ㆍ서 힘겨루기 ‘2라운드’

최 대표가 물갈이 공천을 위한 명분과, 당내의 원군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료 유출로 빚어진 비주류측의 ‘봉기’를 수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당 지도부의 당무감사 자료 폐기 약속에도 불구하고, C(경선대상) D(경선 또는 탈락) 등급을 받은 의원들이 ‘지도부 사퇴’ ‘공천작업 중단’ ‘비대위 해체’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일부 시도 지부장과 중진들도 최 대표에게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당내에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서 전 대표가 비주류의 핵심으로 이번 사태의 전면에 나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정면승부를 선언한 것은 최 대표에게 여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양측은 이미 당무감사 자료 유출 진원지를 놓고 ‘음모론’과 ‘역 음모론’을 거론하는 등 서로를 의심하며 감정싸움을 벌이는 등 일촉즉발의 전선에서 대치해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표 경선에 이어 제 2라운드의 힘겨루기인 셈이지만, 이번 싸움의 강도는 ‘1차전’ ㎰姑?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서 전 대표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비정상적인 당무감사 자료 작성은 사당화 음모의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난 것”이라면서, 사태 수습을 위한 의원ㆍ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 개최와 공천심사위원회 재구성 등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당무감사 자료 유출에 고리를 걸어 최 대표를 비롯한 당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을 시도하는 한편, 최 대표의 사심이 들어갔다고 의심하는 공천심사위의 판을 새로 짜겠다는 계산이다. 서 전 대표는 그러면서 “지도부가 이를 묵살한다면 전임 당 대표로서 더 이상 침묵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도 놓고 있다.

물론 최 대표는 “운영위 의결을 거친 공천심사위를 무효화하라고 하는 것은 당헌ㆍ당규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연석회의를 열 때가 아니며 운영위 등을 통해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있다”며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 전 대표측은 “당헌에는 대표 또는 지구당 위원장 5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연석회의를 소집하도록 돼 있다”며 “최 대표가 이를 거부하면 해당 의원들이 결사체를 만들어 법적 대응을 하거나 불신임에 나설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경고했다. 서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형국이다.

분당까지 갈까?

최 대표는 이재오 사무총장을 희생양으로 삼아 경질하고 서 전 대표와 비교적 막역한 사이인 이상득 의원을 후임에 임명하는 것으로 이번 사태가 수습되기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최 대표는 나아가 당 내분이 지속될 경우 총선 승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판단, 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를 조기에 개최하고 당무감사 결과 D급으로 분류된 인사를 총선 후보로 우선 공천하는 등 비주류를 적극 설득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 전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측은 “공천심사위가 재구성되지 않으면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며 공천 보이콧까지 거론하는 등 여전히 결사항전의 분위기다. “최 대표의 사당화와 불공정 공천의 의도가 드러났는데 어떻게 싸움을 멈추느냐”는 주장이다. 실제로 비주류측에 서 있는 상당수 의원은 “최 대표가 있는 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타협점을 찾기가 여의치 않다. 더욱이 양측 모두 “여기서 밀리면 벼랑 끝으로 떨어진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이처럼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한나라당의 갈등 국면이 어떤 형태로 귀결되느냐는 17대 총선지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로선 이번 내분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속단하기 힘들지만 벼랑 끝에 가서야 뭔가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당 안팎에서는 서 전 대표가 이미 최 대표와의 결별을 작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최악의 경우 분당사태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분당사태로 4ㆍ15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만큼 비주류측도 ‘분당이후 공멸’의 길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과연 한나라당은 빅뱅 할 것인가.

입력시간 : 2004-01-0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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