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간부들 여야로 갈려 금배지 사냥에 나서

캅스들의 여의도 상륙작전
전·현직 간부들 여야로 갈려 금배지 사냥에 나서

“포돌이ㆍ포순이 출~동! 정치권 부정부패는 꼼짝 마라.”

경찰이 ‘여의도 상륙작전’에 나섰다. 목표는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다. 현재 이 작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이는 전ㆍ현직 경찰 고위 간부는 전ㆍ현직 경찰 총수를 비롯해 6~7명. 수 십년 동안 경찰 분야에서 한솥밥을 먹은 이들이지만, 금배지를 따내기 위한 공격 루트는 제 각각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출신지역 등이 여당과 야당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전국구)로 이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관심은 ‘4월 전투’에서 과연 몇 명이 ‘전사’하지 않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느냐 여부다. 각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비교적 탄탄대로를 달려온 경찰에서의 생존게임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 정치사에서 총선이라는 게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터가 아니던가.

여자 ‘포청천’이 경찰제복을 벗은 까닭은?

△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무영 전 경찰청장, 이팔호 전 청장, 김강자 총경, 최기문 경찰청장

17대 총선 대열에 뛰어든 전ㆍ현직 경찰 고위간부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단연 여성 ‘포청천’ 김강자(58) 총경이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인 그녀는 경찰의 꽃이랄 수 있는 경무관 승진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불쑥 사표를 던지고 정계입문을 선언했다. 민주당이 민생을 책임지는 당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여성ㆍ청소년 문제의 대표적인 해결사인 김 총경을 17대 총선의 비례대표 인사로 영입한 것이다.

1970년 경찰에 처음 말을 들여놓은 김 총경은 항상 ‘여성 1호’라는 수식어를 달고 왔다. 경찰학교에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한 그녀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여성으로는 처음 총경으로 승진하며 충북 옥천서장을 맡아 첫 여성경찰서장에 올랐다. 특히 그녀는 옥천서장 재임 시절 미성년자를 고용한 티켓다방에 강력한 철퇴를 가했고, 서울 종암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의 포주를 상대로 청소년 성매매 단속에 나서는 등 윤락과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여 일약 스타 경찰로 명성을 얻었다.

“정치의 정(政)자도 모르고 (정계 입문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 그녀가 33년간 몸담았던 경찰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여성ㆍ청소년 문제 해결에 대한 남다른 열정 때문이다.

“수 십만 명의 가출 청소년 문제만 하더라도 성 매매는 물론 절도 폭행 등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청와대에 건의, 13개 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서로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고, 권한은 내놓으려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청소년 문제의 실체에 대해서는 깜깜하고….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 진정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부처나 기관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기가 막힐 정도로 질려버렸지요.”

3년여 전부터 청소년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에 골몰하던 그녀에게 민주당으로부터 “현장 실무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입법 활동을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느냐”면서 뜻밖의 영입 제의가 왔다. 며칠간 깊은 고민에 빠졌던 김 총경은 “여기(경찰)서 일하는 것보다 거기(국회)에서 일하는 게 더 효과적이겠다”고 판단, 떨리는 손으로 사표를 썼다. 남편도 처음에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국민이 불신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는 아사리판(정치)에 왜 뛰어드느냐”고 반대했지만, 김 총경의 포부를 듣고는 “당신 뜻을 더 크고 멋지게 펼 수 있도록 돕겠다”며 힘찬 격려를 보냈다고 한다.

“경찰만큼 좋은 직업은 없어요. 한마디로 멋지게 살아왔습니다. 여성의 발판이 좁고 보수적인 경찰에 들어와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내가 목표한 것은 모두 이뤘습니다. 앞으로 금배지를 달게 된다면 4년(국회의원 임기)내에 내가 목표한 바를 반드시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경찰 계급장 떼고 한판 붙어봐!

4ㆍ15 총선을 관전할 전국 경찰들의 시선은 온통 부산 사하갑 지역으로 쏠릴 전망이다. 지난해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상임중앙위원을 맡고 있는 이헌만(53) 전 경찰청 차장과, 역시 경찰(서울 중부경찰서장) 출신인 한나라당 엄호성(49) 의원이 이곳에서 물러설 수 있는 정면 맞대결을 펼치기 때문이다. 경찰 계급으로 보면 치안정감(이 전 차장, 군의 중장급)과 총경(엄 의? 군의 대령급) 총경 출신 ‘투캅스’의 대결이다.

경남 밀양 출신인 이 전 차장은 “사하구를 선택한 것은 모교(동아대)와의 인연 때문이고, 경찰에서 함께 일한 적은 없지만 엄 의원과는 좋은 선후배 관계”라면서 “정치적 목표점이 다른 후배와 불가피하게 맞붙을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심적 부담이 크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 전 차장은 동아대 석좌교수로 위촉돼 새해부터 시작하게 될 강의를 준비하던 지난해 8월, 부산 정치개혁추진위원장인 조성래 변호사의 동참 요청을 받고 정계에 입문했다.

“나 자신이 (공직 인사에서) 지역정치 구도의 피해자 아닙니까. 그런 것을 깨는데 일조하고 싶어 동참했지요. 인사철 마다 영ㆍ호남, 충청으로 갈라져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것을 내가 실감했잖아요. 이것을 뿌리뽑아야 우리 정치와 공직사회가 안정됩니다.”

서울경찰청 방범부장, 인천경찰청장, 청와대 치안비서관, 부산경찰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경찰 내부에서 유력한 총수감 물망에 올랐던 그는 2000년 12월 치안정감 3명이 한꺼번에 옷을 벗는 경찰 수뇌부 인사파동 때 퇴진의 아픔을 겪은 당사자이다.

이 전 차장은 요즘 당원 모집과 유권자를 상대로 한 얼굴 알리기에 열심이지만 아직까지 발걸음이 무겁다. 그는 “돈도 없고 조직도 없고 (열린우리당의) 인기도 별로 없고,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툰드라지대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 전 차장은 현지 지역정서로 볼 때 메가톤급 ‘노풍’이 불지 않는 한, 4,000억원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한 엄 의원과의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찰 총수들도 나서나.

전ㆍ현직 경찰청장들의 정치 행보도 관심거리다. 먼저 이무영(60) 전 경찰청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에 입당, 자신의 고향인 전주의 완산구에서 이미 표밭갈이에 돌입했다. 3선으로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장영달(56)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이 전 청장은 퇴임 후 전북지사 출마를 준비하는 등 승승장구 하다가 뜻밖에 불거진 ‘수지 김 피살사건’과 관련, 내사 중단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 전 청장은 그러나 민주당 입당 직전 무죄 확정을 받는 등 멍에를 벗어 요즘 신바람이 난다고 한다. 전북 출신으로 처음으로 경찰총수를 지낸 그는 “금배지를 달게 된다면 경찰에서 쌓은 노하우와 경륜을 토대로 새롭고 투명한 정치모델을 제시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팔호(60) 전 청장도 정치권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다. 그는 1999년 부산경찰청장 재직 때부터 노무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열린우리당 입당설이 꾸준히 흘러나온다. 그는 입당할 경우 자신의 고향인 충남 보령 뿐 아니라 20여년간 살고 있는 서울 용산구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전 청장은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 연락은 오지만 정치할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아 응할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기문(52) 경찰청장도 노무현 정권의 TK(대구ㆍ경북)지역 교두보 마련을 위해 고향(영천)에서의 징발 출마설이 나돌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취임후 고향에 내려간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또 대구경찰청장을 지낸 조창래(57)씨도 경북 성주ㆍ고령에서 출마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월15일 펼쳐질 ‘여의도 상륙작전’에서 성공할 경찰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김성호 기자


입력시간 : 2004-01-08 16:52


김성호 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