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노무현' 야망의 질주정치개혁 이끌 변화의 기수, 구정치 세력과 한판 승부

열린 우리당 '정동영호' 출범
'포스트 노무현' 야망의 질주
정치개혁 이끌 변화의 기수, 구정치 세력과 한판 승부


정동영 의원이 1월 11일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전당 대회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새 당 의장으로 선출됐다. 개혁 성향의 최연소 후보인 정 의원이 실질적 여당의 대표가 됨으로써 ‘개혁과 세대 교체’라는 정치권의 화두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됐고, 총선에서 ‘구질서’와의 한판 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관련기사

  • 앵커에서 유력한 차기주자로
  • 정 의원의 대표 당선이 주목 받는 것은 그가 ‘정치 변화’의 상징성을 띠었다는 점과 차세대 유력한 지도자로 꼽혀 왔기 때문이다. 특히 정 의원은 일찍부터 ‘포스트 盧’의 1순위 주자로 거론돼 왔고, 정가에서는 우리당의 전당 대회를 통해 ‘차기’를 선점하는 최대 효과를 거두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우리당 경선의 최대 이벤트로 기대됐던 ‘정동영-김근태’ 카드가 무산된 배경을 놓고 일각에서 김 원내대표의 ‘차기’에 대한 고려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정 의장의 ‘포스트 盧’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11일 정동영 의원이 의장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총선 세대교체 바람 거세질 듯

    신임 정 의장이 ‘차기’ 주자로 뚜렷이 각인된 것은 2002년 대선 운동 마지막 날인 12월 18일 노무현 후보의 종로 유세 때다. 이날 노 후보는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본 뒤 "속도 위반 하지 말라. 여성 대권을 꿈꾸는 추미애 의원이 있고, 내가 힘들 때 뒷받침해준 정동영 의원도 있다"며 정 의장을 차기 주자로 치켜올렸다.

    이에 앞서 정 의장은 11월 28일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여타 후보들이 중도 사퇴하는 바람에 국민경선이 좌초할 위기에 처하자, 패배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국민경선을 끝까지 완주해 국민에게 신선한 인상을 주었다. 정 의장의 ‘아름다운 패배’는 차기 주자 반열에 있던 이인제· 정몽준 의원과 대비되는 것이어서 당시 정가에서는 “차기 후보는 정동영”이란 얘기가 나오기까지 했다.

    정 의장은 후보 단일화와 이후의 대선 운동 기간에 국민참여운동본부장으로 맹활약, ‘포스트 노무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 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선 후에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특사 자격으로 참가해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벌써부터 정 의장을 (차기 주자로)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그해 5월과 6월에 정 의장이 중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하고, 7월에는 노 대통령을 대신해 영국에서 열리는 진보정치회의에 참석할 것이 알려지면서 ‘포스트 盧=정동영’이란 등식이 기정 사실인 양 받아 들여지기도 했다. 특히 2003년 ‘4·24 재·보궐 선거‘ 후 정 의장이 신당추진결의 모임에 전격 참석해 일순간에 신주류의 중심에 선 것과 관련, 정 의장과 노 대통령이 비밀리에 만나 사전에 ‘신당’ 창당을 위한 ‘밀약’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 의장의 주가는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정 의장은 신당 창당과 관련, 민주당 구파로부터 역풍이 불자 좌고우면하는 태도를 취해 청와대와 강경 개혁파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신당 대표 입성이 대권 행로에 분기점이 될 것을 고려한 나머지 민주당 구세력과 개혁파 양쪽에 다리를 걸친 것?화를 자초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신당 창당의 주도권은 ‘정·천·신(정동영·천정배·신기남 의원)’ 개혁 3인방 중 천정배· 신기남 의원으로 넘어갔고, ‘포스트 盧’의 위상도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천정배· 신기남 의원이 차기 주자로 거론되면서 청와대의 시선도 곱지 않게 변해 갔다.

    총선용 ‘간판’ 최적임자

    하지만 정 의장은 이내 ‘4세대 정당론’을 내세우며 추미애 의원 등 당사수파와 격론을 벌이며 신당 창당을 주도해 갔다. 정 의장을 비롯한 당 안팎의 개혁세력들은 지난해 10월 구파와 결별, 신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고 정 의장은 개혁파의 리더로 자리 잡아 갔다.

    정동영 신임의장이 김원기 전 의장으로부터 건네받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이종철 기자

    정 의장이 ‘차기’를 의식한 분명한 액션을 보인 것은 우리당 창당을 전후해 전당대회 방식을 놓고 중진그룹과 힘겨루기를 할 때다. 정 의장은 김원기 전 의장 등 당내 파워 그룹에 맞서 직선제를 관철시킴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정 의장은 이 때부터 우리당의 대표로 유력시됐고 총선 정국은 그에게 힘을 실어 주는 계기가 됐다.

    ‘차기’를 놓고 정 의장과 경쟁 관계에 있던 김근태 원내대표가 ‘대권 선점효과’를 얻을 수 있는 당 의장 경선에 불출마한 것은 그 같은 ‘대세’를 간파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크 호스로 예상되던 이부영 의원과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이 전대 경선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정 의장이 총선용 ‘간판’으로 최적임자라는 당 안팎의 평가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정 의장이 경선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한 데는 총선을 고려한 유권자의 판단이 최우선적으로 작용했지만, ‘차기’ 주자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게 반영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총선의 변수가 될 호남표의 향방과 관련, 민주당에 우호적인 호남표가 DJ 이후 ‘호남 대통령’을 갈망하면서 정 의장이 대표가 된 우리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내공 부족’ 인식 불식이 과제

    정 의장은 우리당 전대를 계기로 지도력을 시험받게 됐다. 당내 사정은 여전히 복잡한 데다,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변신과 민주당의 저항, ‘지역’ 장벽 등도 거쳐야 할 관문이다. 때문에 정가 일각에서는 정 의장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적 내공’ 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권 레이스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추락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총선이 기다리는 4월은 차세대 지도자로 비상할 수 있는 ‘야망의 계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역경(易經)’이 말한 바, 뛰어난 재능을 안으로 간직하고 자신의 도리를 지키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함장가정(含章可貞)의 계절’이 될 것인가.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1-14 14:5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