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 영입 1순위, 자천타천 정계진출 줄이어

방송인 출마러시 "여의도는 놀던 물이라서?"
여야 정치권 영입 1순위, 자천타천 정계진출 줄이어

총선이 다가오면 정다운 ‘TV 얼굴’이 하나 둘씩 시청자를 떠나간다. 17대 총선이 치러지는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다. 물론 일찌감치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온 방송인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브라운관 스타’를 빼내 손쉽게 인기를 얻어보겠다는 여야 정치권의 구태가 더욱 치열하게 재연되고 있는 것이 방송인의 총선 출마 러시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4ㆍ15 총선을 앞둔 지금 서울 여의도 방송가는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는 경선절차 없이 어느 당의 어느 지역구 공천을 약속 받았다고 하더라”, “○○○는 어느 당의 영입 제의를 받고 고심하고 있다고 하더라”는 등의 ‘카더라 통신’이 무성하게 나돈다. 또 일부 방송인의 17대 총선 출마 선언으로 방송 프로그램까지 차질을 빚을 정도라는 말도 들린다.

TV 앵커와 아나운서, 진행자, 해설자, 탤런트, 개그우먼 등 유명 방송인의 주가가 4ㆍ15 총선 호재에 힘입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지역구나 비례대표 공천 약속을 전제로 뜨거운 러브 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각 당이 방송인을 영입대상 1순위로 올려놓은 것은 뻔하다. 전파매체를 통해 축적된 높은 대중적 인지도가 당의 인기를 높여 총선 득표력으로 직결시킬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MBC 기자 출신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정치에 입문한 지 불과 8년만에 직선 여당 대표로 당선돼 유력한 차세대 대권주자로 등장한 점도 방송인들의 정계진출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다.

방송인 17대 총선 출마 도미노

4ㆍ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에 입당 또는 공천신청을 했거나 출마가 예상되는 방송인은 어림잡아 30여명선. 그 동안 방송계에서 선ㆍ후배 관계로 한솥밥을 먹어온 이들이지만, 이제 정치적 성향이나 출신지역 등에 따라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할 처지가 됐다.

먼저 한나라당에 입당한 방송인으로는 인기 프리랜서 아나운서 이계진(58)씨와 SBS TV ‘한선교ㆍ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진행해 온 한선교(43) 아나운서가 눈에 띈다. 1973년 KBS 공채 1기로 방송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이번에야 말로 정치가 변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동참하기 위해 시민의 대표로서 선거에 출마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강원 원주시에서 출마할 예정이다. 이씨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의원으로부터 입당을 적극 권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도 경기 용인ㆍ수지에서 출마키로 하고 이미 SBS측에 총선 출마 때문에 프로그램 진행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는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도 방송을 그만두고 총선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가 가족과 제작진의 만류 끝에 출마의사를 접은 바 있다.

SBS 오락프로그램 ‘솔로몬의 선택’에 출연해 온 김동성(34) 변호사는 한나라당의 서울 성동에 공천을 신청, 이세기(67) 전 의원과 구상찬(46) 부대변인 등 6명과 치열한 ‘예선전’을 펼쳐야 할 전망이다. 레슬링 해설가로 잘 알려져 있는 ‘빠떼루 아저씨’ 김영준(56)씨는 경기 고양 일산 을에, SBS 국제부장 출신의 정군기(43)씨는 경기 고양 일산 갑에 각각 공천신청을 했다. KBS 스포츠기자 출신의 스포츠 평론가 최동철(60)씨는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한나라당 한승수 의원의 지역구인 강원 춘천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한 탤런트 김을동(59)씨는 경기 성남 수정에 출마, 금배지에 재도전한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널리 알려진 박경재(59) 변호사도 한나라당에 공천신청을 했다. 16대 총선 때 동생 박경식(51)씨와 함께 자민련에 입당,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이번에 서울 영등포 갑 출마를 노리고 있다. TV에서 ‘신바람 건강법’ 강의로 한때 인기돌풍을 일으켰던 황수관(59) 교수는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후보신청서를 냈다. 황씨는 16대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서울 뗬汰뼁?출마, 한나라당 박주천 의원에 고배를 마셨다.

탤런트 차인표(37)씨와 개그우먼 김미화(45)씨도 한나라당 영입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차씨는 한반도 상황을 왜곡한 007영화 출연을 거부하는 등 한나라당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다는 것이다. 김씨는 최병렬 대표가 “차분한 이미지가 좋다”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KBS TV ‘역사 스페셜’을 진행했던 탤런트 유인촌(53)씨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박찬숙(59)씨는 한나라당측의 입당 제의를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MBC 출신 여 앵커 대결 성사될까?

열린우리당도 MBC 앵커 출신의 박영선(44)씨를 영입, 선대위 대변인으로 임명하는 등 방송인 영입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박씨는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박씨의 대항마로 KBS 앵커 출신으로 서울 중구 지구당위원장 박성범씨의 부인인 신은경(46)씨를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해 선대위 대변인에 기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어서 주목된다. 신씨의 영입이 성사될 경우 이번 선거기간 동안 양대 방송국의 여성 앵커 출신의 입씨름에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해 온 김방희(39)씨도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 경제특보로 영입돼 서울 서대문 을에 출마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은 또 MBC TV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인 엄기영(53) 이사, 역시 MBC 앵커 출신의 이인용(47)씨, MBC의 손석희(48) 아나운서 부장, 유명 방송 진행자인 이상벽(57)씨와 임성훈(54)씨 등의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MBC기자 출신인 정동영 의원이 당의장에 선출됨에 따라 방송인 영입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엄 이사와 손 부장은 정치입문이나 총선출마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못박은 상태여서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천하장사 출신으로 KBS 씨름 해설위원인 이만기(40) 인제대 교수도 높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열린우리당의 경남 마산ㆍ합포 지역구 경선에 뛰어들었다. 이 교수는 지난 16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뒤, 김호일 전 의원에게 막판 뒤집기를 당해 낙천의 아픔을 겪었다. 민주당도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는 있지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 뒤질세라 방송인 영입에 사력을 쏟고 있다. 한편 KBS 보도본부장을 지낸 류근찬(55)씨는 자민련 후보로 충남 보령ㆍ서천 지역에 출마하고, 개그먼 김형곤(42)씨는 지난 16대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서울 성동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다시 출마한다.

이처럼 방송인을 대상으로 한 정치권의 무차별식 영입 바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인기 영합에만 집착한 나머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공평한 경선절차 없이 공천을 약속하는 것이야말로 대표적인 구태정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아울러 대다수 시청자들은 인기 앵커나 아나운서, 탤런트 등을 정치인이 아닌 방송인으로 계속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까?

입력시간 : 2004-01-28 15:1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