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공천에 목숨 걸며 당내 분란 점입가경탈락자 집단탈당 등 후폭풍 조짐으로 뒤숭숭

정치판 '피의 3월' 공천 전쟁이다
여야, 공천에 목숨 걸며 당내 분란 점입가경
탈락자 집단탈당 등 후폭풍 조짐으로 뒤숭숭


총선 전야에 공천 회오리가 거세다. 여야 구별없이 공천을 둘러싼 홍역이 확산되면서 총선 전열이 흩어지고 당마저 흔들리고 있다. 4ㆍ15 총선이라는 ‘금배지 전쟁’에서 공천은 출마자들의 당락까지 가를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여서 공천을 향한 후보자들의 투쟁은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한다.

현재 진행중인 각 당의 공천 분란은 외견상 비슷한 양상를 띠고 있지만, 그 내막은 매우 복잡하고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1 야당인 한나라당은 ‘현역 탈락’이 공천 잡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으나 당권을 둘러싼 세력간 파워게임마저 가세하면서 당 전체가 혼돈 상태다.

- 한나라 공천혁명, 세력간 파워게임 양상

공천 분란의 신호탄은 1월30일 현역인 권태망 의원(부산 연제)이 면접 토론에서 당 사무국 출신의 여성부대변인 김희정씨에게 밀려 탈락하면서 시작됐다. 권 의원의 탈락은 한나라당 공천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권 의원을 탈락시킨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은 줄곧 “공천 혁명과 총선 승리에 적합한 인물이 후보가 될 것”이라고 밝혔고, 그런 점에서 권 의원의 탈락은 공천 혁명의 ‘희생양’이란 분석도 없지 않았다. 당의 한 공천심사 위원은 “권 의원이 지역에서 무명의 김 부대변인보다 더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교체 여론이 높았고, 다른 (열린우리당) 후보와의 예상 시뮬레이션 결과도 좋지 않았다”며 “‘공천 본보기’를 위해 바꿔야 한다는 게 대다수 심사위원들의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30대 젊은 여성인 김 부대변인은 ‘공천 물갈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회창 전 총재측 인사들이 대거 탈락한 것도 공천 분란의 요인이다. 한나라당은 지역구를 △경선 실시 △정밀 여론조사 실시 △단수공천 등 3가지로 분류해 진행한다는 공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경선을 실시한 곳은 10여 곳에 불과했고, 여론조사 또는 ‘물갈이’라는 명분에 근거해 단수 공천하는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총재 측근 인사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났다. 대선 패배 직후인 2002년 12월30일 위로와 휴식을 겸해 제주도 함덕 해수욕장에 모인 의원들이 결성한 ‘함덕회’의 몰락은 대표적인 예다. ‘함덕회’ 8인방 중에서 목요상 의원만이 살아 남았고 양정규(제주 북제주)ㆍ정창화(경북 군위ㆍ의성)ㆍ유흥수(부산 수영)ㆍ김종하(경남 창원 갑) 의원은 불출마 선언으로, 최돈웅 의원(강원 강릉)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총선 출마를 접었다. 김기배 의원(서울 구로 갑)은 2월25일 공천 심사에서 탈락했고, 하순봉 의원(경남 진주)은 공천 면접에서조차 배제됐다. 김 의원은 “이 전총재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럴 수 있냐”며 공천 절차를 문제 삼았고, 하 의원은 뒤늦게 서울로 상경해 경위를 따졌지만 이들이 구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서청원 의원을 비롯, 서 의원계 인사들에 대한 공천 불이익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에는 공천에서 탈락한 이회창ㆍ서청원계 인사들이 “이번 공천은 ‘최병렬 당’을 만들기 위한 보복 공천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반발, 최 대표의 교체를 주장한 수도권ㆍ소장파 의원들의 ‘반최(崔)’대열에 가세해 공천 후유증이 당 주도권 다툼으로 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천 전쟁’은 후보들 뿐만 아니라 심사위에서도 진행되는 듯하다. 김일윤(경북 경주)ㆍ김만제(대구수성갑)ㆍ나오연(경남 양산) 의원 등이 소장파의 ‘개혁 공천’ 압력에 밀려 탈락한 반면, 정형근(부산 강서갑)ㆍ김용갑(경남 밀양ㆍ창녕) 의원이 개혁 공천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문열ㆍ안강민 위원 등의 ‘보수 역할론’에 힘입어 살아남은 것은 대표적인 예다. ‘YS의 입’으로 통하는 박종웅 의원의 탈락은 심사위의 논란과 김문수 위원장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총선을 앞두고 ‘안풍(安風)’의 멍에를 벗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 민주, 호남물갈이 무산으로 내분 격화

민주당은 현역 위주의 공천과 ‘낙하산 식’ 공천이 분란의 배경이 되고 있다. 민주당 현역 중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을 제외하고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은 없는 상황이다. 당내 공천 개혁의 상징이었던 ‘호남 물갈이’는 한화갑 전 대표가 지역구로 유턴해 공천이 확정되고, 김홍일 의원이 복당하면서 물 건너 간 상태다. 김경재 의원이 지역만?옮긴 전남 순천과 광주 동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 전당원 경선 방식에 출마자들이 집단으로 반발해 파장이 커지자 지난달 29일 당 상임위에서 유권자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나눠먹기식ㆍ낙하산식 공천도 민주당 내분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2월 초 공천심사위원장인 강운태 사무총장실은 의자가 내던져지는 등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서울 노원 지역에 공천을 신청한 이모씨가 당 법률자문 단장인 최인호 변호사가 단수 공천된 것에 항의, 물리력을 동원한 것이다. 결국 최 변호사는 지역구를 경기 안산 상록으로 변경했지만 그 후유증은 매우 컸다. 또 불출마를 선언한 장성원 의원 지역(전북 김제)은 오홍근 전 청와대 대변인이 단수 공천되자 이 지역 읍면동 협의회장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 우리당, 낙하산 공천에 반발 확산

열린우리당은 전략 지역에 대한 낙하산식 공천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치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았던 경선 원칙이 이런저런 이유로 ‘단수 공천’으로 변질되면서 공천 신청자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2월23일에는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ㆍ권기홍 전 노동부장관ㆍ유인태 전 정무수석 등이 단수 공천된 지역 공천 신청자와 지지자들이 당의 일방적 공천에 반발, 집단 행동에 나서 당직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 중 이호윤(서울 도봉 을), 이미경(수원 팔달), 정재학(경북 청도) 씨 등은 22일부터 당사 앞에서 천막농성 중이다.

또 27일에는 같은 처지에 있는 황상모(부산 서구)ㆍ배병헌(울산 울주)ㆍ정기영(충북 충주)씨 등 중앙의 낙하산 공천으로 경선 기회를 빼앗긴 10여개 지역 출마자들이 여의도 소재 미래정경연구소 사무실에서 비상대책위를 갖고 ‘민주경선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정치적, 법적, 물리적 힘까지 동원해 경선 원칙을 관철시키기는데 공동대응할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우리당 공천심사위 관계자들은 최근 영입한 인사들이 경선에서 줄줄이 낙마한 것에 충격을 받고 전략적 공천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의장과 김한길 총선기획단장도 “경선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당 입장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밝혀 당분간 공천 분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3-02 22:2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