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측근 불법자금 당 유입으로 도덕성에 흠집탄핵빌미 제공으로 총선 흐름 변화조짐에 긴장

우리당 '노무현 딜레마' "도움이 안되네"
盧 측근 불법자금 당 유입으로 도덕성에 흠집
탄핵빌미 제공으로 총선 흐름 변화조짐에 긴장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과 청와대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4ㆍ15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 두고 ‘청와대발’ 악재가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우리당 안팎에서 청와대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측도 우리당이 책임을 청와대에만 떠넘긴다며 불만을 토로, 양측 간에 냉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우리당을 강타하고 있는 불법 자금의 당사 유입 문제는 청와대와의 ‘거리두기’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 5일 정동영 우리당 의장은 지역구인 전주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전격 취소하고 급히 당으로 달려가, 긴급 당직자 전원 회의를 열었다. 노 대통령의 386 핵심측근인 여택수 전 청와대부속실행정관이 롯데그룹으로부터 받은 불법 자금 3억원중 2억원이 당사 보증금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이 미칠 파장 때문이었다.

- "창당이래 최대 위기"

정 의장은 회의를 통해 “재벌 기업에서 받은 검은 돈이 창당 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고 놀랐다”며 “한나라당 하면 부정부패, 민주당하면 지역당, 열린우리당 하면 정치개혁을 연상하는데 우리 스스로 구태를 보이면 존재 근거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이어서 “호화 당사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총선을 치를 수 없으며, 불법 자금이 유입된 당사를 깔고 앉아 1당이 될 수 없는 만큼 오늘부로 당사 퇴거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불법자금의 당사 유입에 따른 위기감은 정 의장 뿐만 아니라 우리당 전체를 짓누르고 있다. 그 동안 우리당은 창당 자금과 관련, “의원들의 갹출금으로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야당과 차별화된 도덕성을 강조해왔는데, 이것이 거짓말로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도덕성과 개혁정치가 우리당의 창당 이념인데 불법 자금이 창당 과정에 유입됐다면 국민에게 무슨 명목으로 지지를 호소할 수 있겠냐”면서 “창당 이래 최대 위기”라고 말했다.

구속 수감중인 안희정씨가 지난 대선전 롯데그룹으로부터 여러 차례 걸쳐 5~6억원대의 불법 대선 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총선을 앞둔 우리당에 악재가 되고 있다. 그 동안 5대 기업에서 ‘한나라당 730억 대, 노 후보 캠프 0 원’이 들어 갔다는 수사 결과가 뒤집어 진 것이다. 안희정씨의 롯데 불법자금 수수로 삼성, 현대차, LG, SK 등 나머지 4대기업에서도 불법자금이 노 캠프에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증폭되면서 더 이상 야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할 수 없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우리당 안팎에선 총선까지만이라도 노 대통령의 그림자를 차단해야 한다는 말마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최근 ‘탄핵정국’에 대해서도 우리당 일각에선 청와대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탄핵 정국의 빌미를 제공한 청와대측이 적절치 못하게 대응함으로써 청와대와 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고조시켰다는 것이다. 선관위가 노 대통령에게 ‘선거 중립’을 요구한 것에 대해 청와대가 김우식 비서실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어 "선관위 결정을 존중하나,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공식 발표, 노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게 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야당에게는 탄핵 공세의 빌미를 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 盧 입당시기 놓고 당ㆍ청 불협화음

이와 관련, 정동영 의장의 한 측근은 “대통령의 우리당 지?발언에 대한 선관위의 판단에 다소 문제가 있고, 야당의 탄핵 추진이 억지인 것은 사실이지만 청와대가 선관위의 결정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냄으로써 국민의 불만이 청와대 뿐만 아니라 우리당에게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사의 여론 조사에서도 노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강조했다.

총선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탄핵의 정당성이나 성사 여부를 떠나 정 의장 체제 이후 우리당이 총선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데, 탄핵 정국으로 총선 흐름에 변화가 올 지도 모르겠다”면서 우려와 함께 청와대에 간접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우리당과 청와대 간에 간극이 벌어지면서 노 대통령의 입당을 놓고도 양측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측이 노 대통령의 조기 입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당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노 대통령의 입당이 총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퓐?총선 후로 늦춰 달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입당과 관련,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5일 “총선 후는 아닌 것 같다”며 “3월말쯤 입당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어 “4월 5일이면 특검이 끝나는데, 그때는 시간이 촉박한 느낌이 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당 입당을 “당연한 것”이라면서 총선 전에 입당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당에서는 노 대통령의 입당 시기를 놓고 이견이 대립하고 있다. 시니어 그룹이 총선 전 입당을 주장하는데 반해, 소장파를 비롯한 당직자들은 총선 후 입당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시니어그룹의 김근태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참여정부 1년의 공과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여당인 우리당을 평가할 것이 분명하다”며 “따라서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대통령이 즉시 입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동영 의장측의 한 초선 의원은 “노 대통령의 입당은 총선과 관련해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로 여론이 안 좋은 상태서 입당하는 것은 총선에 도움이 안된 다”며 노 대통령의 총선 전 입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처럼 당ㆍ청 간에 불협화음이 고조되면서 정가에서는 “우리당이 ‘노무현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즉 총선 ‘올인(all-in)’전략에 청와대가 인원 차출과 지역발전 공약 등 인적ㆍ물적 지원의 덕으로 우리당의 지지율 상승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최근 노 대통령을 비롯한 측근 인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총선에 악재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한 정치평론가는 “우리당과 청와대의 불협화음 이면에는 총선 후 누가 당의 중심이 되느냐를 놓고 시니어 그룹과 주니어 그룹, 청와대 인맥과 당 인맥 간의 대결이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총선이 끝나면 당ㆍ청 간의 불협화음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전망도 했다. 총선 후 정계개편의 회오리와 맞물려 양측 간의 세 대결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당이 안고 있는 ‘노무현 딜레마’는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 그룹과 정동영 의장이 주축이 된 친정 그룹 간 파워 게임의 불씨를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3-10 21:4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