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을 마지막 정치무대로 삼은 정치인들거센 '개혁바람' 속에서 살아남기 안간힘

거물들의 마지막 불꽃 만개냐? 낙화냐?
4·15총선을 마지막 정치무대로 삼은 정치인들
거센 '개혁바람' 속에서 살아남기 안간힘


4ㆍ15 총선의 격전이 코앞에 다가왔다. 각 당 후보들의 윤곽도 거의 드러나 ‘소리없는 전쟁’은 벌써부터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에 승자와 패자가 있듯 총선도 마찬가지여서 후보들마다 올인(all-in) 게임에 몰입,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그들 중 4ㆍ15 총선이 마지막 정치 무대가 될 수 있는 후보들은 총선의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수십년 정치 풍상을 헤쳐 왔거나 특별한 정치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정치 거물들에게 총선은 단순한 당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승자는 정치적 명예와 파워, 때로는 대권 도전의 용기를 가질 수 있지만, 패자는 불명예와 함께 영원히 정치를 떠나야 할 판이다.

거물들이 승자의 깃발을 움켜지기 위해 ‘마지막 불꽃’을 피우려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올인의 불꽃이 화려하게 타오를 지, 반대로 피지도 못하고 사그러들 지는 알 수 없다. 한달여 앞으로 바짝 다가온 총선만이 불꽃의 향배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 대권 후보들 힘겨운 싸움 예상

거물 정치인 중엔 ‘대권’과 직ㆍ간접의 인연이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전력이 있는 자민련 이인제 의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차기 주자로 거론돼 온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국민통합21의 정몽준 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4ㆍ15 총선 결과에 따라 잠룡(潛龍)의 테를 두를수 있고, 그 반대로 승천조차 불가능한 이무기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ㆍ금산)은 초반 노무현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인 안희정씨의 도전에 고전이 예상됐으나 안씨가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철창 신세를 지게됨에 따라 한시름 돌린 듯 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여서, 정치 생활 16년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의 이인제 죽이기”라며 반발,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있지만 지역에서 상당한 감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의원측의 한 관계자는 “만일 이 의원이 구속될 경우 부인(김은숙)의 출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이 의원이 대권 꿈을 버리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권영길 대표(경남 창원을)는 제15대ㆍ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거물이지만 지난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한테 패했다. 이번 총선에서 설욕을 다짐하고 있는 권 대표의 한 측근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다”면서 총선 승리를 자신했다. 이주영 의원측도 권 대표의 상승세를 인정했지만 ‘한나라당 텃밭 힘’을 강조했다. 이 의원이 신임 당 대표 선거(3월18일)에 출마를 선언한 것은 그러한 힘에 기댄 측면이 없지 않다.

지난 대선 때부터 차기 주자로 거론돼 온 박근혜 의원(대구 달성군)은 최근 차기 당 대표 1순위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잠룡으로 인정받고 있다. 3ㆍ18 전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홍사덕 원내총무와의 양자대결, 또는 박 의원의 승리를 점치는 게 당 안팎의 분위기다.

특히 박 의원이 대표가 될 경우 한나라당의 기반인 영남과 지지층이 분열된 충청권에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박근혜 대표설’이 벌써부터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박 의원이 대표가 되고 총선 승리를 이끌 경우 박 의원은 성큼 차기 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반면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날 땐 단지 ‘대통령의 딸’이란 기억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역구에서는 박 의원의 독주가 예상됐지만 윤용희 경북대 교수가 열린우리당의 상승세를 업고 출마, 총선 결과가 주목된다.

정몽준 의원(울산 동구)은 지난 대선 때의 악몽을 만회하기 위해 지역구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로 낙천낙선 대상에 올라있는 것도 부담이다. 민주당 김경재 의원이 주장한 ‘민주당 입당설’에 대해서는 지역정서를 의식, “근거없는 소문”이라며 불쾌한 반응이다. 지역의 한 중견 언론인은 “정 의원이 현대 왕국에서 무난히 4선을 했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라고 말해 이번 총선이 ‘정치인 정몽준’에 대한 시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김현배 후보가 공천이 확정된 상태고,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가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 조순형·한화갑, 민주당 진로에 큰 영향

거물 정치인 중엔 민주당 조순형 대표낮?‘적지’에 몸을 던진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총선을 앞두고 이런 저런 이유로 지역구를 변경한 경우도 있다. 조 대표는 지난 1월 19일 민주당 창당 4주년 기념사에 ‘대구 출마’라는 폭탄 선언을 해 호남당 이미지를 탈피하고 공천 물갈이를 압박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4선의 ‘미스터 바른말(쓴소리)’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조 대표의 결단은 정치권과 대구 지역에도 반향을 일으켜 한나라당 일각에선 조 대표 출마 지역에 후보를 내지 말자는 주장도 있었고, 부친인 조병옥 박사의 대구와의 인연 때문에 조 대표의 당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그러나 조 대표의 출마 예정지로 거론된 대구 남구에 이재용 전 남구청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되고 지역 특유의 반민주당 여론이 되살아 나면서, 최근 들어 조 대표가 고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화갑 전 대표(전남 무안ㆍ신안)는 조순형 대표와 대조적으로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다가 본래 지역구로 복귀해 총선 결과가 주목된다. 지난 1월 27일 지역구 변경을 선언한 한 전 대표는 3일 뒤 검찰이 경선 자금 수사를 앞세우며 옥죄어 오자 민주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인 뒤 “옥중 출마” 운운하며 지역구로 복귀했다. 1967년 정치에 입문한 한 전 대표는 ‘리틀 DJ’란 별칭과 함께 민주당의 뿌리인 호남의 대표성을 띠고 있어 그에 대한 수사 결과와 당락 여부는 총선 후 민주당의 좌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전 대표와는 다른 경우지만 특별한 사정으로 지역구를 변경한 거물 정치인도 있다. 민주당의 김중권 전 대표는 본래 지역구인 경북 봉화ㆍ울진에서 서울 마포갑으로 옮겼다. 지난 총선서 19표 차로 낙선한 김 전 대표는 경북 울진에서 3선(11·12·13대)을 기록했고, 이번 총선에서도 고향 출마를 준비해 왔으나 “분당 후 어려움에 처한 당에서 요청해 마포갑으로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이 지역에서 5선을 한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노웅래 부대변인이 나섰고, 한나라당에선 구속된 박명환 의원 대신 신영섭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가 출마한다.

한나라당 홍사덕 원내총무는 최병렬 대표 퇴진과 함께 소장파의 압력에 떠밀려 경기 고양일산갑에서 출마하게 됐다. 홍 총무는 내심 강남 지역이나 고향인 경북 영주, 비례 대표를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의외의 지역에 공천된 셈이다. 이와 관련, 당 공천심사위의 한 관계자는 “일산지역은 지난 총선 때 공천을 잘못해 4석을 민주당에 넘겨줬다”며 “학력 수준이 높은 중산층이 많이 살아 한나라당 정서에 부합해 그 곳에 공천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은 열린우리당에서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이 출마해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고, 민주당에선 차태석 당직자가 공천이 확정된 가운데 한광옥 전 대표설도 흘러 나오고 있다.

- 서청원 행보에 한나라당 관심

탈당이나 복당을 통해 총선에 나서는 거물들 중엔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한동 전 총리가 눈에 띈다. 지난 5일 탈당을 선언한 서 전 대표는 지난 대선과 대표 경선 때만 해도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대선과 경선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줄곧 각을 세웠던 최병렬 대표측으로부터 ‘팽(烹)’대상에 올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화그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까지 돼 ‘거물’이란 훈장은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비록 국회의 석방 결의로 풀려 났지만 이것마저 족쇄로 작용해 공천에서 배제될 상황에 처했고 ‘서청원 살리기’에 앞장섰던 서청원계 의원과 원외 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는 비극을 불러왔다. 결국 공천이 어렵다고 판단한 서 전 대표는 미리 탈당을 선언, 무소속 출마를 예고했지만 당선 ㈉灌?불투명한 상황이다. 설령 총선서 살아 온다 해도 검찰의 사정 칼날이 번득이고 당내 기반도 사라져 서 전 대표가 더 이상 거물로 남을 수 있을 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하나로국민연합 대표였던 이한동 의원(경기 연천ㆍ포천)은 2월 19일 ‘제2의 친정’인 자민련으로 복당했다. 6선인 이 의원은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 자민련 총재, 국무총리 등 정관계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잦은 당적 변경으로 ‘철새 정치인’이란 혹평을 받아온 데다 지난 대선에서 하나로 국민연합을 창당해 출마했으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도로 `잊혀져 가는 정치인'으로 전락하자, 재기를 모색하고자 자민련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이 의원은 비례대표 대신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고, 한나라당 고조흥 지구당 위원장, 우리당 이철우 경기북부비전21공동대표 등과 겨룰 예정이다.

열린우리당 김원기 최고 상임고문(전북 정읍)은 지난 대선을 계기로 비주류 정치 거물(5선)에서 주류의 핵심으로 편입했지만 앞서 한화갑ㆍ이인제ㆍ서청원 의원 등과 마찬가지로 불법 정치 자금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서해종건으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받은 혐의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것이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 고문은 지역구에서 민주당 윤철상 의원과 15대 총선에 이어 두번째로 격돌하게 된다. 첫 대결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광을 받은 윤 의원이 이겼지만 이번 총선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판세 자체가 미세한데다 김 고문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김 고문이 검찰의 멍에를 벗고 승리할 경우 국회의장ㆍ국무총리설이 현실화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김 고문에게 더 이상 정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 김덕룡·이부영, 새 리더로 부상할 호기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서울 서초을)과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원(서울 강동갑)은 민주화운동의 동지로 한나라당에서 비주류의 동병상련 관계를 유지하다 이 의원이 탈당하는 바람에 각각 다른 당에서 정치적 야망을 꿈꾸고 있는 거물이다. 대권 꿈을 지닌 잠룡이란 점도 유사하다.

김 의원은 당 중진들이 공천 탈락과 소장파의 압력에 밀려 사라진 자리에서 무게를 더하고 있다. 중진 의원 15인회 모임을 주도하며 당 분란을 수습하고 소장파의 개혁 요구도 수렴하면서 뚜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대표 경선에서 저력을 보인 바 있는 김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5선에 오를 경우 수도권 의원과 소장파의 지지를 바탕으로 새 리더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고, 나아가 잠룡의 태를 갖출 수도 있다. 지역에선 민주당 권만성 후보와 열린우리당 김선배 후보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부영 의원은 지난 1월 11일 당 의장 선출을 위한 전대에서 아쉽게 3위에 머물렀지만 그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무대로 만들었다는 평가다. 정가에선 이 의원이 4선의 중진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할 경우 차기 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이번 총선에서 이 의원은 강동구청장을 세 번 지낸 한나라당 김충환 지구당위원장과와 격돌한다. 김 위원장은 이 위원의 공천으로 구청장을 지내 한 배를 타왔으나 이 위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우리당으로 옮겨가면서 맞수가 됐다. 민주당에선 양관수 고대 객원교수가 출마해 3파전도 점쳐진다.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경남 남해ㆍ하동)과 민주당 박상천 의원(전남 고흥ㆍ보성)은 4선 의원으로, 대변인ㆍ법무장관ㆍ대표 최고위원 등 같은 이력을 거친 거물들이다. 특히 박희태 의원은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과 총선에서 격돌하게 돼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해대전’으로 불리는 두 사람의 대결에서는 1988년 13대 총선에 이어 두번째로 당시 민정당 후보였던 박 의원이 민중당 후보로 출마한 김 전장관을 압도적 표차로 이겼지만, 김 전 장관이 군수로 나선 이후에는 박 의원이 공천한 한나라당 후보가 잇따라 패했다. 이번 총선은 박 의원 개인에게 정치적 명운이 걸린 시험대이지만 PK(부산ㆍ경남) 지역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공략이라는 상징성을 띠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박상천 의원은 추미애 의원을 비롯해 소장파들로부터 퇴출 대상으로 지목되고 이 문제가 당 분란의 원인으로 작용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조순형 대표가 방패막을 쳐 총선 출마가 보장됐지만 총선에 악재가 된 것은 분명하다. 박 의원은 총선에서 5선 고지에 오를 경우, 명실상부한 당 대표나 국회의장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예로운 은퇴도 당선이 된 다음의 문제여서 요즘 박 의원은 조정된 지역구에 잦은 발걸음을 하고 있다. 당내에선 유정석 전 해양수산부 차관ㆍ이석형 변호사가 도전장을 낸 가운데 열린우리당의 장철우 변호사, 신중식 전 국정홍보처장, 김덕모 호남대 교수 등의 도전이 거세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3-10 21:5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