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vs 박영선 vs 이승희한나라·우리·민주당 여성대변인, 서릿발 '말의 전쟁' 선봉장
가시돋친 '입담여걸' 삼국지 전여옥 vs 박영선 vs 이승희 한나라·우리·민주당 여성대변인, 서릿발 '말의 전쟁' 선봉장
- 박ㆍ전 KBS 입사동기, 이는 전 대학선배
대변인 타이틀은 지난 1월 MBC 앵커 출신인 박영선씨가 먼저 달았다. 며칠 뒤 민주당은 현 정권에서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이승희씨를 대항마로 내세웠다. 가장 늦게 합류한 전여옥 대변인은 이승희 대변인의 대학(이화여대) 후배이면서, 공교롭게도 둘 다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 대변인은 박 대변인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78학번으로 81년 KBS 입사 동기다. 박 대변인은 82년 MBC로 옮기기 전까지 경제부에서 일했고, 전 대변인은 문화부 기자였다. 여성으로서 해외특파원을 지낸 것도 공통점이다. 당 대표격인 정동영 의장과 최병렬 전 대표가 직접 영입한 것도 똑같다. 전 대변인이 가세하기 전까지 박ㆍ이 대변인의 설전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의 사활이 걸린 총선이 본격화되고, 탄핵정국 와중에 전 대변인이 합류하면서 대변인 3국지의 본막이 올랐다. 탄핵안이 가결되던 3월12일, 열린우리당 박 대변인과 민주당 이 대변인은 너무나 다른 창을 들었다. 박 대변인은 ‘국민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탄핵 당했습니다’라는 제하의 논평을 내고 의회 쿠데타로 열린우리당 의원이 처참하게 쓰러지고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박 대변인의 논평은 스스로 “얼마동안 대변인을 할 지 모르지만 이런 논평은 다시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특이했다. 하나는 박 대변인이 TV를 통해 탄핵안이 통과되는 장면을 보면서 논리적 재단없이 감정이 전하는 대로 논평이 나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논평이 나가기 전 항상 정동영 의장과 협의를 했는데, 그날은 박 대변인 단독으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그만큼 박 대변인에게 탄핵안 가결의 충격이 컸다. 같은 날 이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란 논평에서 정반대의 논지를 폈다. 이 대변인은 노 대통령 탄핵 의결은 대통령의 위헌ㆍ위법 행위에 대해 의회가 헌정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54년 헌정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 정치적 시각 첨예한 대립각 탄핵 후폭풍이 정국을 몰아치면서 박 대변인은 한나라당 전 대변인과 2라운드에서 맞붙었다. 3월18일 오전 CBS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은 탄핵 정국에 대해 각이 선 입장 차를 내보였다. 전 대변인은 “탄핵안 가결 요건은 11일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다시 보면 된다”고 주장한 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투신에 대해선 “형법 252조 2항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권력을 행사해 자살할 의도가 없던 피해자를 자살로 몰았기에 노 대통령은 자살 교사죄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 대변인은 야권의 방송사 항의 방문을 거론하면서 “5공 당시의 언론통제 주역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언론통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한 사고의 변화가 없는 한 한나라당의 인식과 판단이 고쳐지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 “탄핵안 가결 장면이 CNN 등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대단히 창피했고 정치권 모두가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받아쳤다. 민주당 이 대변인은 며칠 뒤 ‘대통령의 간접 살인’이란 논평을 내고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 사실상 전 대변인의 손을 들어주는 행보를 취했다. 총선 정국의 이슈였던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세 대변인은 뚜렷한 시각 차를 드러냈다. 전 대변인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촛불집회가 자발적 집회라면 100만명 가까운 인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거대한 무대장치 등이 동원될 수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했고, 이 대변인은 21일 ‘촛불시위 조직동원에 앞장 선 열린당의 목적'이란 논평에서 열린우리당이 촛불시위에 조직적으로 인원을 동원해 지지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의 논평이 나오자 박 대변인은 ‘촛불집회를 보고…’라는 논평을 통해 시대정신과 시민정신을 읽지 못하는 야당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맞섰다. - 전 ‘공격형’, 이 ‘논리형’ 박 ‘섬세형’ 세 대변인은 또 노무현 대통령의 헌재 불출석, 노 대통령의 ‘돼지저금통’, 고건 대통령 권한 대행의 사면법 개정안 거부 등과 관련해 양보 없는 기 싸움을 펼쳤다. 세 대변인은 싸움 스타일은 다르다. 전 대변인이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하는 ‘저돌형’이라면, 이 대변인은 ‘논리형’이다. 그녀는 정치학 박사답게 ‘첫째, 둘째, 셋째…’조목조목 문제점을 적시한다. 박 대변인은 ‘섬세형’으로 꼼꼼한 준비와 정제된 표현이 돋보인다. 전 대변인은 1주일 가량의 대변인 생활을 ‘막노동’에 비유하면서 노 코멘트 없는 대변인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만큼 정치를 투명한 장으로 순화시키겠다는 뜻이다. 또디지털 시대의 정보 및 말의 홍수 시대에 진실을 전달하는 대변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 대변인에 대해서는 “논평이 날카롭고 전문지식이 바탕이 된 품격을 갖추었다”고 평했다. 반면 박 대변인에 대해서는 “현장에 강한 방송인으로 작은 부분에도 노력하는 모습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 대변인은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논평을 하려고 한다”며 “단순히 당론을 전달하는 대변인이 아닌 당론을 만들어 가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새로운 대변인 상을 제시했다. 또한 전 대변인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날카로운 힘’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박 대변인에 대해선 “편하면서 전달력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박 대변인은, 괴테의 ‘파우스트’ 마지막 구절 중 ‘여성다움이 세상을 이끈다’는 말을 인용해 공격 일변도의 논평이 아니라 세상을 보듬고 철학이 있는, 그래서 선진 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대변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희망했다. 전ㆍ이 두 대변인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있는 분들”이라고 짧게 평했다. 스스로의 위상에 대해서는 ‘절벽 위의 산책’으로 표현하면서 여당 대변인의 어려움도 토로하기도 했다. ‘여풍’(女風)에 비유되는 여성 정치시대에 등장한 세 여성 대변인이 앞으로 삭막한 정치풍토를 어떻게 순화시킬 지 주목되는 요즘이다.
입력시간 : 2004-03-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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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