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당선무효', 당선자 60여명 '수사중'… 대규모 당선 무효사태 예고우리당 과반수 유지에 중대 변수, 여대야소 구도 바뀔 수도

총선 후폭풍… "당선증에 잉크도 안 말랐는데"
공포의 '당선무효', 당선자 60여명 '수사중'… 대규모 당선 무효사태 예고
우리당 과반수 유지에 중대 변수, 여대야소 구도 바뀔 수도


4월 20일 오전 11시 한나라당 당선자 대회를 앞둔 여의도 천막당사 앞. 4ㆍ15 격전지에서 살아나온 선량들이 각자의 무용담을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 이규택 의원(경기 여주)은 한쪽에서 굳은 얼굴로 연신 전화를 하고 있다. 5선과 3선의 훈장을 단 김덕룡ㆍ김무성 의원이 이 의원에게 다가가 손을 건넸지만 온전히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비방한 이 의원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250만원을 선고,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 선거법 위반 절반 이상이 우리당 소속

17대 총선 지역구 당선자 243명 가운데는 이 의원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인 당선자가 50여명, 다른 사건 혐의로 재판에 계류 중이거나 검찰수사 중인 당선자가 10여명으로 이들에 대한 수사 및 재판 결과에 따라 대규모 당선무효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수십 곳에서 재ㆍ보선이 불가피해 열린우리당의 의석이 현재 과반수에서 단 2석만의 여유가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여대야소’ 구도가 뒤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6대 총선의 경우 선거법 위반혐의로 당선무효가 된 경우는 8명에 불과했지만, 17대 총선에서는 두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불법 선거 적발 건수가 16대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데다 개정 선거법의 기준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다. 16대 선거사범 71명에 대해서 개정 선거법을 적용할 경우 무려 25명이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다.

검찰은 총선 다음날인 4월16일 지역구 당선자 243명 가운데 53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당선자의 배우자 7명과 선거사무장 1명 등 8명도 입건된 상태라고 한다. 이 중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고발한 24건은 그 혐의가 매우 위중해 당선무효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입건된 당선자 중 절반 이상이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알려져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및 재판 결과에 따라 열린우리당의 국회과반수 유지에 중대변수로 등장할 전망이다.

본지 확인결과, 4월28일 현재 40명 가까운 당선자들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19건)되거나 수사 의뢰(18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선관위가 고발한 당선자는 열린우리당의 유필우(인천 남갑)ㆍ강성종(경기 의정부을)ㆍ김기석(경기 부천원미갑)ㆍ이상락(경기 성남중원)ㆍ이원영(경기 광명갑)ㆍ유시민(경기 고양 덕양갑)ㆍ윤호중(경기 구리)ㆍ복기왕(충남 아산)ㆍ오시덕(충남 공주ㆍ연기)ㆍ김성곤(전남 여수갑)ㆍ김맹곤(경남 김해갑) 등 11명, 한나라당 권오을(경북 안동)ㆍ이덕모(경북 영천)ㆍ김광원(경북 영양ㆍ영덕ㆍ봉화ㆍ울진)ㆍ김정부(경남 마산을)ㆍ최구식(경남 진주갑) 등 5명, 자민련 류근찬(충남 보령ㆍ서천) 등 모두 17명이다. (도표 참조)

이들 중 김기석ㆍ김맹곤ㆍ류근찬 당선자는 최근 기소돼 재판에 계류 중이고, 류 당선자는 4월23일 사전선거운동 위반 혐의로 실형이 선고됐다. 김맹곤 당선자는 “지난해 11월 지역내 종친의 개업식 때 직원이 보고도 않고 난(蘭)을 보낸 게 문제가 됐는데 당시는 총선 출마를 생각지도 않았던 때”라며 반박했다. 류 당선자도 “선관위가 고발한 금풍제공 혐의는 이미 불기소처분됐고 다른 사안은 경미해 문제될 게 없다고 보는데 언론이 잘?보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열린우리당 유시민ㆍ윤호중 당선자측은 “선거 때마다 정모씨가 이미 결론이 난 ‘서울대프락치 사건’을 문제 삼는데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매듭을 짓겠다”며 오히려 고발을 달가와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한나라당 최구식 당선자측은 “진주 선관위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을 도 선관위에서 무리하게 고발까지 했다”며 억울해 했고, 김광원ㆍ김정부 의원측은 “검찰에 충분한 입증자료를 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본지가 확인한 수사의뢰 대상은 모두 19명으로 혐의 내용이 ‘의혹’ 수준이어서 몇 명이나 당선무효로 이어질 지 미지수다. 그러나 최근 경북경찰청이 한나라당 장윤석 당선자(경북 영주)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문경경찰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신국환(경북 문경ㆍ예천)씨의 동생을 긴급체포하?등 검ㆍ경이 당선자 주변 사람들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여 ‘안전지대’에 머물던 당선자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17대 총선 당선자 가운데 일부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 결과에 따라 당락이 뒤바뀔 수도 있다.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되면 당선무효,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대상자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7명과 검찰 수사 중인 당선자 2명 등 모두 9명이다.

열린우리당 염동연 당선자(광주 서갑)는 ‘나라종금 로비사건’과 관련, 99년 7월~2000년 2월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에게서 나라종금 화의관련 청탁 등 대가로 2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됐지만 현재 진행 중인 항소심에서 ‘대가성’이 인정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386 최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당선자(강원 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도 4월20일 썬앤문으로부터 불법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1년6월 실형이 구형돼 의원직 유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열린우리당 신계륜 의원(서울 성북을)은 대부업체 ‘굿머니’에서 2억5,000여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에 법정에 서야 하고, 같은 당 이호웅 의원(인천 남동을)도 재작년 대선 때 하이테크하우징에서 불법 정치자금 1억5,000만원을 받아 이상수 의원에게 전달한 혐의로 1심이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은 이규택 의원이 첫 희생자 명단에 오른 가운데 정형근 의원(부산 북ㆍ강서갑)은 ‘언론대책 문건사건’관련 발언 등 명예훼손 혐의로 최근 벌금 700만원이 선고돼 위기를 넘겼지만 상급심 형량에 따라 의원직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민주당 김홍일 의원은 나라종금 안상태 전 사장에게서 인사관련 청탁과 함께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 결과가 주목된다.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있다 총선 등을 감안해 수사가 유보된 민주당 한화갑 의원(전남 무안ㆍ신안)과 자민련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ㆍ계룡ㆍ금산)은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각각 재청구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은 재작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SK그룹측에서 4억원을 받은 것 외에 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과정에서 하이테크하우징으로부터 6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수사 대상이다. 이 의원은 대선 당시 김윤수 전 공보특보로부터 한나라당이 건넨 5억원 중 2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가 발목을 잡고 있다.

- 무더기 재선거로 '미니 총선' 예고

여기에 선관위의 추가 고발과 수사의뢰, 검찰과 경찰이 독자적으로 입건한 당선자 처리, 선거비용 실사, 당선자에 대한 내부고발 등으로 인해 당선무효 사태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더욱이 총선에 영향을 준다며 중단됐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당선무효의 단초로 작용하면서 보궐선거의 폭이 더욱 넓어질 전망된다. 이미 한나라당 엄호성(부산 사하갑)ㆍ이재창(경기 파주) 의원이 중앙당에서 지원한 2억원대 불법자금 중 일부를 유용한 혐의로 고발됐고, 다른 당선자들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라는 소문이 정가 안팎에 파다하다. 안대희 중수부장도 “소환 대상 당선자 중에는 새로운 얼굴의 정치인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그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처럼 무더기 재선거가 예고되는 징후들이 정치권 안팎 곳곳에서 감지되는 상황이다. 이것이 현실화 될 경우 오는 10월이나 내년 4월쯤 ‘미니 총선’이 실시된다. 4ㆍ15 격전의 포성은 아직 멈추지 않은 셈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4-27 17:0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