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기지개 펴는 노무현 대통령, 조화와 개혁 화두로 국정 밑그림에 분주총리 임명·당 장악등 놓고 보이지 않는 힘 겨루기, 친노파 키우기 고심 역력

"살림 폈다고 밥그릇 챙기시나?"
정치 기지개 펴는 노무현 대통령, 조화와 개혁 화두로 국정 밑그림에 분주
총리 임명·당 장악등 놓고 보이지 않는 힘 겨루기, 친노파 키우기 고심 역력


노무현 대통령은 4ㆍ15 총선 직전에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가진 산행에서 “청와대에 봄이 오니까, 좀 대비가 된다. (나의) 어두운 심경과…”라며 스스로의 심경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 “나는 봄을 맞이하려면 심판을 두 개 더 거쳐야 한다”며 “요새 재판을 앞둔 피고인 심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두 개의 심판이란 4ㆍ15 총선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사흘 뒤 열린우리당은 4ㆍ15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넘는 압승으로 노 대통령에게 하나의 봄을 헌사했다. ‘반(半) 대통령’에서 비로소 ‘전(全) 대통령’이 된 노 대통령도 ‘재신임’에 대한 자신감에 근거해 총선 다음날부터 청와대 ‘식탁정치’를 개시하는 등 모처럼만에 찾아 온 ‘봄’을 만끽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봄은 아직 삭풍 뒤에 머물고 있다. 설령 노 대통령이 두번째의 봄을 맞더라도 ‘탄핵 당한 대통령’이란 주홍글씨는 임기 말까지 지워지지 않을 멍에다. 그만큼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힘이 빠진다는 의미다. 노 대통령이 서둘러 ‘식탁정치’ 에 나선 데는 그러한 위기를 다잡기 위한 계산된 ‘선수(先手)’라는 측면이 강하다.

- 총선 뒤 식탁정치 당ㆍ청 장악 시동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총선 직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한 당ㆍ청 간의 조화와 정권 출범 때부터 추진해온 ‘개혁’”이라고 귀띔한 바 있다. 그는 노 대통령과 거대 여당과의 관계를 ‘조화’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 이면에는 불꽃 튀는 힘겨루기의 함의가 내포돼 있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구심력과 당권과 대권을 배경으로 한 원심력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의 ‘식탁정치’가 구심력을 향한 상징적 행보라면 당에서 (청와대에) 총리를 포함한 입각을 요구하고 당권과 차기 대권을 둘러싼 계파간ㆍ주자간 고도의 수(數) 싸움은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ㆍ청 간 ‘조화’와 관련해 “대통령은 다양한 계파로 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당 내부를 결속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며 “대통령을 정점으로 국회와 당ㆍ정ㆍ청에 친노 인사를 포진하고 당도 친노그룹이 장악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4월17일 당 중진인 김원기 정치특보, 문희상 전 비서실장, 유인태 전 정무수석 등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당의 조정자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했고, 21일 선대위 지도부 전원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도 당의 단합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국회의장에 김원기 특보를 내정한 것과 관련, “대통령이 ‘탄핵사태를 겪으면서 국회의장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고 농담한 적이 있다”고 말해 노 대통령이 같은 ‘통추’ 출신이자 자신의 ‘정치 고문’인 김 특보를 통해 국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을 엿보게 했다.

총리 임명과 개각을 둘러싼 당과의 힘겨루기도 노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당권파는 ‘제1당에게 총리 천거권을 주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근거로 총리 천거권을 가지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했다. ‘정동영 총리설’ ‘조세형 총리설’등은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는 총선 승리의 최대 공신은 정 의장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몸을 던지는 ‘사즉생(死卽生)’ 전략 때문이었다며 당권파의 행정부 진입을 차단했다. 대신 노 대통령 직계로 분류되는 김혁규 상임중앙위원을 차기 총리로 사실상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4월16일 김 위원과의 독대에서 영남 재ㆍ보선 승리와 전국정당화의 완성을 주문했다는 후문이며, 21일 청와대 만찬 이후에는 ‘김혁규 총리설’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김혁규 카드’는 국정의 한 축인 행정부를 자신의 코드에 맞추겠다는 뜻과 함께 총선을 계기로 차기 주자로 급부贊?정 의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 우리당과의 관계설정에 고심

열린우리당과의 관계 설정은 노 대통령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원활한 2기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여당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당내 친노그룹은 아직 소수파다. 또한 노 대통령이 컴백하더라도 지도력이 탄핵 이전에 못 미쳐 향후 정국이 당 중심의 정당체제로 국정 운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여당의 내각과 청와대에 대한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공직 인사 등에 있어서도 열린우리당이 주도적으로 나서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인사는 “당의 인적 구성이 복잡하고 노선(이념) 차이도 다양한 데다 아직 친노그룹이 미약해 대통령의 입당보다 당을 재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고민의 한 단면을 내비쳤다. 그는 당 재편에 대해 “노무현당”이라고 잘라 말하고 “당 의장과 원내대표의 향배, 개각 등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청와대 일각에선 정 의장을 비롯해 김 원내대표 등 당내 힘 있는 인사들을 입각시켜 당을 연성화시킨 후 당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차기 주자에게 발판을 마련해줘 노 대통령의 ‘레임 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와 당사자인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가 입각에서 발을 빼 무산됐다. 정 의장은 4월23일 “당체제 정비 작업을 마친 뒤 전당대회를 소집할 계획”이라고 밝혀 전대에서 의장직을 사퇴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김 원내대표도 19일 노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통일부장관 제의가 있었지만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정 의장의 경우 차기 대권 행보를 위한 ‘숨고르기’차원이라면, 김 원내대표는 새 원내대표를 발판으로 대권 기반을 다지려는 측면이 강하다.

- 당의장ㆍ원내대표 놓고 계파간 미묘한 신경전

이에 따라 당 의장과 원내대표의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최근 원내정당화 흐름에 밀려 ‘당 의장 폐지론’이 급부상해 원내대표를 누가 맡느냐에 청와대와 당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과 우호적이거나 친노 인사를 후보로 밀어 유시민 의원과 김 원내대표가 주목받는 가운데 김 원내대표는 재도전 의지를 직간접으로 표출했다. 정 의장측에선 ‘천ㆍ신ㆍ정 트리오’의 일원인 천정배ㆍ 신기남 의원을 앞세우고 있다. 또 김근태 그룹의 이해찬ㆍ임채정 의원, 정동영그룹의 정세균 정책위의장도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총선을 전후해 2기 국정을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총선후 만난 당정 인사들에게 ‘가버넌스(지배구조)의 수평적 경쟁시대’가 올 것이라며 ‘상생ㆍ통합ㆍ화해ㆍ대화의 정치’를 강조했고, 입당 후에도 ‘당정분리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칼의 노래’를 들고 침잠했던 노 대통령이 새 봄을 맞아 2기 국정의 운영에서 ‘권력의 속성’이란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4-27 17:2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