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족쇄 벗고 집권2기 돌입, 국정 '밑그림'에 정치권 촉각

강해진 盧, 칼춤의 희생자는?
탄핵 족쇄 벗고 집권2기 돌입, 국정 '밑그림'에 정치권 촉각

노무현 대통령이 곧 돌아온다. 국회 탄핵 의결이 있은 후 ‘칼의 노래’(김훈 저)를 품고 국정무대에서 퇴장했던 노 대통령의 컴백이 5월 중순께로 임박한 듯하다. 헌법재판소의 분위기라면 ‘탄핵’에 묶여 있던 두달 가까운 유폐생활도 막을 내리고 노 대통령의 집권 2기가 시작된다. 유폐기간에 노 대통령이 그린 집권 2기의 밑그림은 어떨까?

노 대통령은 탄핵 후 한달 가까이 지난 4월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한 자리에서 “총선 이후 극단적인 대결의 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전환될 것”이라며 협력과 상생(相生)의 정치를 예고했다. 그러나 4ㆍ15 총선의 격전을 치른 노 대통령의 행보에는 세상을 베려는 칼의 예리함과 강인함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강한 대통령’으로 집권 2기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지가 그것이다. 친노(親盧)그룹이 당과 정부, 청와대를 장악하고 국회에도 친여 인사를 전진 배치, 완벽한 ‘노무현 체제’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시나리오도 나오는 상황이다.

- 친노그룹 전진배치로 국정장악력 강화

노 대통령은 이미 새 국회의장에 자신이 ‘오야붕’이라고 말한 6선의 김원기 대통령 정치특보를 내정한 데 이어 신임 총리에 김혁규 경제특보를 지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ㆍ사법ㆍ 행정부의 3법부 중 입법부의 수장과 행정부의 총괄 책임자를 측근으로 선발, 탄핵심판 이후 국정 장악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강한 대통령’과 관련, 노 대통령이 총선 후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정신적 여당’에서 ‘실질적 여당’으로 변한 열린우리당과의 관계 정립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386 참모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넘는 의석으로 여대야소 국면이 되면서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입김이 전과 달랐다”며 “이제는 여당을 잘 컨트롤 해야 2기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동영) 의장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에게 ‘총리 천거권’을 주장한 것은 ‘입김’의 단적인 예”라며 “‘거여 견제론’이 (친노 그룹에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출신의 노 대통령 측근 L씨는 총선 직후 기자에게 “대통령이 집권 2기의 개혁 드라이브를 밀고 나가는데 당이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을 연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의 입각설이 당 연성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의 양축인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가 ‘차기 수업’을 위해 행정부로 옮기면서 당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지고 ‘차기’의 조기 가시화에 따른 ‘대통령의 레임 덕’ 가능성도 상당 부분 감쇄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입각으로 당에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노 대통령이 친정 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당ㆍ정 분리원칙을 천명했으나 “당의 정책과 노선에 대해선 분명한 의견 개진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당을 노무현 체제로 탈바꿈시킬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이를 위해 국회에 입성한 친노그룹이 선봉에 나설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 152명의 당선자 중 친노그룹은 직계인 금강팀(염동연, 이광재, 서갑원 등)을 비롯해 통추 출신(김원기, 원혜영 등), 청와대ㆍ정부 출신, 개혁당ㆍ영남 출신 등 줄잡아 50여명에 이른다. 청와대 출신의 문희상(경기 의정부갑) 전 비서실장은 이미 당ㆍ청 간 막후 채널 역할을 맡고 있고, 통추계인 유인태(서울 도봉을) 전 정무수석은 대야 창구로 알려졌다.

- 개혁드라이브 위해 당 연성화

지난 5월 6일, 서울 여의도 한 중국음식점에서 있었던 염동연(광주 서구갑) 당선자 주도의 오찬 모임은 노 대통령 친정체제로 가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날 모임에는 김진표ㆍ정덕구ㆍ전병헌ㆍ김현미ㆍ최성 등 열린우리당 당선자 50여명이 참석해 총선 이후 당선자 워크숍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모임을 주선한 염 당선자는 노 대통령의 민주당 경선캠프에 조기에 참여, 대선후보 경선승리에 1등 공신으로 꼽혀온 핵심 측근으로 이틀전에 당 정무조정위원장에 임명됐다. 정무조정위는 당ㆍ정ㆍ청간 가교 역할을 하면서 주요 정무현안을 조율하는 동시에 당내 인사는 물론 당과 청와대, 정부간 인사교류를 총괄하는 업무도 맡고 있어 영향력이 막강하다. 염 당선자는 모임 성격에 대해 “참여정부의 국정운영?뒷받침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당 안팎에선 염 당선자가 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당의 통합’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386 최측근인 이광재(강원 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 당선자의 역할도 주목된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 당선자는 과거 노무현 캠프의 브레인으로 장차 정책기획 분야에서 활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릴 만큼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어 청와대를 물러난 뒤에도 직ㆍ간접으로 노 대통령을 보좌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앞으로는 전면에 나서는 대신 배후에서 노 대통령의 의정 보좌에 충실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 당선자와 함께 노무현 캠프의 핵심으로 열린우리당 정책위부의장이기도 한 서갑원(전남 순천) 당선자는 당내 ‘정책통’으로 활약하면서 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는 정책 연구ㆍ개발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금강팀 출신인 백원우(경기 시흥갑)ㆍ선병렬(대전 동구)ㆍ홍미영(비례) 당선자 등도 노 대통령의 진군에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들 금강팀 출신들이 당에 확고한 뿌리를 내릴 경우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킹메이커’ 역할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검찰 견제 차원의 인사 예고

노 대통령의 ‘칼의 노래’는 사법부에도 울려퍼질 전망이다. 특히 검찰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 진영에서 불만이 높아 탄핵정국 후 상당 폭의 인사 이동이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견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386 측근인 여택수 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의 예를 들었다. 검찰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 행정관을 구속 기소하고, 이를 총선 전에 공개한 것에 대해 노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검찰 주변에선 벌써부터 송광수 검찰총장 낙마설을 포함해 안대희 중수부장이 부산고검장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친노 성향의 인사가 들어설 것이라는 등 여러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 대법관 5명이 내년 임기만료로 교체될 때 신임 대법관에 대한 임명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5-11 17:0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