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 '王 당원'된 노무현 대통령, 당 헤게모니 놓고 파워게임 본격화원내 친노세력 결집, 천·신·정 체제 '도전과 견제' 시련 속으로

盧 vs 천·신·정 샅바싸움
우리당 '王 당원'된 노무현 대통령, 당 헤게모니 놓고 파워게임 본격화
원내 친노세력 결집, 천·신·정 체제 '도전과 견제' 시련 속으로


‘왕의 귀환’을 바라보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마음 한구석엔 씁쓸함이 움텄다. 지난 5월20일 저녁, 노무현 대통령 직무 복귀 이후 처음 가진 청와대 만찬 회동에서다. 열린우리당 전ㆍ현직 지도부 17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신기남 의장은 “대통령 복귀후 처음 만나 기쁘다. 앞으로 마음껏 포부를 펼칠 수 있도록 궂은 일은 당에서 맡아서 하겠다”고 다짐했고, 천정배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당이 모두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된 만큼 무엇보다 화합과 단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정 전 의장은 줄곧 침묵을 유지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천ㆍ신ㆍ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3인이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 셈이다.

정 전 의장은 2년 전 비슷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2002년 1월 말, 정 전 의장은 신 의장과 천 원내대표가 주축인 민주당 ‘바른정치모임’의 베트남 역사 기행에 동참해 대권 도전의 뜻을 전하고 지지를 부탁했다. 세 사람이 당 쇄신운동 과정에서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자는 소위 ‘도원결의’까지 한 사이여서 상당한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신ㆍ천 두 사람은 그 해 3월 초 ‘노무현 지지’를 선언해 정 전 의장에게 적지 않은 실망과 충격을 주었다.

- 盧, 당·정 장악의지

20일의 청와대 만찬은 당 헤게모니를 둘러싼 노 대통령과 정 전 의장의 샅바 싸움에서 노 대통령의 우위를 보여준 자리였다. 나아가 ‘천ㆍ신ㆍ정’이라는 차기 브랜드 파워가 아직은 현직 대통령이란 권위와 노 대통령의 당ㆍ정 장악의지에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했다.

1ㆍ11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정 전 의장과 신 의장이 각각 득표수 1ㆍ2위로, 의장과 상임중앙위원에 선출되고 천 원내대표가 신 의장의 경선 출마에 따른 후임으로 당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이 됐을 때 ‘천ㆍ신ㆍ정 전성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됐다. 3인의 전성시대는 4ㆍ15 총선을 거쳐 ‘정동영 의장-김근태 원내대표’투톱 체제가 ‘신기남 의장-천정배 원내대표’체제로 바뀌면서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5월14일 탄핵기각 후 업무에 복귀하고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한 친노세력이 결집하면서 천ㆍ신ㆍ정 체제는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먼저 대권 주자의 행보를 가속화하려던 정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의 ‘입각 카드’로 제동이 걸렸다. 신 의장은 엉겁결에 넘버1의 자리에 올랐지만 파워는 정 전 의장에 훨씬 못 미친다. 천 원내대표는 친노세력의 견제로 가까스로 원내 사령탑이 됐다.

노 대통령은 탄핵기간 동안 집권 2기에 대한 구상을 다듬으면서 이를 뒷받침할 만반의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국정 2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당ㆍ청을 친정체제로 바꾸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의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두 번의 봄(총선 승리, 탄핵 기각)’을 통해 직무에 복귀했지만 2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정의 일관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면서 “청와대와 당을 대통령 체제로 재편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고 말해 노 대통령의 당 장악 의도를 엿보게 했다.

사실 노 대통령은 총선 과정에서부터 최근의 신ㆍ천 체제에 이르기까지 친정체제 구축을 모색했다. 총선에서의 ‘올인‘ 전략은 총선 승리 못지않게 친정체제를 위한 세력 확보라는 측면이 없지 않다. 총선 직후 당의 양축인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를 입각 대상에 올린 것은 차기 주자들의 대권레이스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지만 당을 연성화해 친노세력의 착근을 용이하게 하려는 전략적 고려가 앞섰다는 게 중론이다. 새 원내대표 선출 때는 그런 의지가 더욱 두드러져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강성인 천정배 후보보다 안정적이고 자신의 뜻을 따라 줄 이해찬 캤만?선호해 친노세력에 ‘노심(盧心)’을 전하기도 했다.

- 당내 친정체제 구축에 '올인'

노 대통령이 비록 ‘수석당원’의 자격이지만,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것은 당의 실질적 ‘주인’이 되겠다는 포석이기도 하다. ‘수석 당원’의 지위와 관련, 노 대통령은 총선 직후 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입당하더라도 공천이나 당직 인선 등 당내 인사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되, 큰 틀에서 당의 방향과 진로는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당원이지만 대통령막關?당 정책 결정에 관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입당으로 당의 양축인 의장과 원내대표의 실제적 지위와 역할은 상당 부분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정가에서는 과거에는 없었던 ‘수석당원’ 이란 지위가 결과적으로는 ‘총재’급으로, 당내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노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증가될 것으로 예측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물론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명실상부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 당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는 천ㆍ신ㆍ정 체제가 약화되었다고 하나 아직 무시 못 할 힘을 갖고 있다. 당내 정 전 의장 세력이 여전하고, 신 의장은 취임회견(19일)에서 노 대통령의 입당과 관련해 “입당 후 주요 당직보다는 평당원으로 당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해 노 대통령의 당 장악 의도를 경계한 바 있다. 천 원내대표도 11일 새 원내대표에 선출된 직후 “당은 당의 역할이 있고, 청와대는 청와대의 역할이 있다”며 “당이 청와대를 견인해야 한다”고 말해 당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정 전 의장의 한 측근은 “대통령의 복귀 이후 상대적으로 천ㆍ신ㆍ정의 힘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고,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에 각을 세우지는 못하지만 친노 세력의 당 장악 시도는 (천ㆍ신ㆍ정)어느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노 대통령측과 천ㆍ신ㆍ정 세력 간의 긴장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 재야파와의 관계 설정도 과제

당내 세력의 또 한 축인 김근태 전 원내대표로 상징되는 재야파와 관계 설정도 노 대통령측의 고민거리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 후보에 패한 재야파가 여전히 천ㆍ신ㆍ정 체제에 비토그룹으로 남아 외견상 친노세력과는 우호적이다. 그러나 당 노선과 정책 사안에 따라 차이를 보여 천ㆍ신ㆍ정 그룹보다 더 강력한 맞수(또는 걸림돌)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노세력은 노 대통령의 입당에 따라 현안 해결과 영향력 면에서 명실상부한 리더그룹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당과 청와대의 정치적 연결고리를 해온 문희상 정치특보가 서울 여의도 L빌딩에 사무실을 열고 정책개발과 세 규합에 나섰다는 얘기와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알려진 이광재 당선자가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고 젊은 초선들을 모아 파워그룹을 도모하고 있다는 소문은 그러한 과제와 무관하지 않다. ‘왕의 귀환’으로 열린우리당은 또한번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5-25 17:5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