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풍향계 알쏭달쏭열린우리당 호남 역풍, 한나라당 영남 순풍 강화 과거 구도 흔들려주자별로는 박근혜 질주 인상적, 여권에선 '다크호스' 이해찬 급부상

여야 텃밭에 부는 변화의 바람
대권 풍향계 알쏭달쏭
열린우리당 호남 역풍, 한나라당 영남 순풍 강화 과거 구도 흔들려
주자별로는 박근혜 질주 인상적, 여권에선 '다크호스' 이해찬 급부상


지난 10일 한나라당 대표경선 출마를 선언하는 박근혜 전대표.

“잔다르크를 환호하던 군중은 이제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같은 새 주인공을 원한다. 그런 측면에서 박 대표는 이미 시험대에 올라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5일 전당대회(7월19일) 대표 최고위원 출마를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자 중견 정치평론가 L씨가 던진 말이다. 그는 “박 전 대표의 위상 변화는 국내 정치 지형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면서 “7ㆍ19 전대를 통해 ‘제2기 박근혜 체제’가 출범하면 여야 간에 대권경쟁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ㆍ15 총선을 계기로 촉발된 대권 레이스와 지형은 제2기 노무현 정부 출범, 6ㆍ5 재보선, 수도이전 논란 등을 거치면서 뚜렷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권 전선을 바꿀 동인들이 점증하면서 차기구도가 크게 흔들리고, 최근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따른 후폭풍과 여권의 지지율 급락이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먼저 대권 레이스에선 박근혜 전 대표의 질주가 돋보인다. 여야의 정치 지형이 그만큼 크게 변한 것이다. 여권에서는 유력한 잠룡(潛龍)인 정동영ㆍ김근태 주자가 각각 통일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 직접적인 대권경쟁보다는 국가경영 능력과 내공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ㆍ김 두 장관의 당내 기반도 크게 약화됐다. 이른바 ‘정동영계’ㆍ‘김근태계’로 분류된 의원들이 주군(主君)의 공백으로 흔들리면서 친노(親盧)그룹에 합류하거나 비주류로 전락, 대권 레이스의 동력이 상당히 감쇄된 상태다.


- 정동영ㆍ김근태 당내 기반 약화

오히려 최근엔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이해찬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의 신뢰와 개혁성을 무기로 다크호스로 부상, 정동영ㆍ김근태 장관을 위협할 잠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 역정이나 친소관계에서 이 총리가 정ㆍ김 두 장관보다 노 대통령과 가까워 차기 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당 운영과 대야 관계에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해 대권 레이스에서 뒤쳐져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야당에선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의 3파전이 점쳐졌지만 최근 들어 박 전 대표만이 질주하는 양상이다. 박 전 대표는 4ㆍ15 총선에서 위기의 한나라당을 구한 ‘잔다르크’로 당내 기반은 물론,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 데 이어 6ㆍ5 재보선에서 또다시 ‘박풍(朴風)’의 위력을 과시, 명실상부한 야당의 차기 주자로 우뚝 섰다. 7ㆍ19 전대에서 대표로 재선출될 것이 확실시돼 박 전 대표의 대권가도는 더욱 탄탄해질 전망이다.

반면 이명박 시장은 수도이전문제, 청계천 복구, 시청앞 잔디광장 조성 등 치고 나가기식 대권행보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지만 최근 교통체계 개편에 대한 여론의 악화와 서울 봉헌 발언 등이 구설수에 올라 대권 레이스에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손학규 지사는 왕성한 대외활동과 수도이전문제 등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경기’라는 지역적 한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각 정당의 ‘텃밭’에 부는 심상치 않은 바람도 대권 전선의 변수가 되고 있다. 그동안 호남은 열린우리당에 절대적 지지를 보냈고, 한나라당은 영남에 기대 왔다. 그런데 최근 열린우리당에 호남의 역풍이, 한나라당엔 영남 순풍이 강화되면서 여야 내부는 물론 종래의 대권 지형을 흔들고 있다.

지난달 29일 저녁에 이뤄진 한나라당 TK(대구ㆍ경북)지역 초선 의원 14명의 단합모임도 주목할 만한 행보다. 이들은 박창달 의원(대구 동을) 체포동의안 표결과 관련, 당초 한나라당 내에 다선 의원들이 나서길 꺼려하고 ‘서청원 학습효과’ 를 우려해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강했지만 물밑작업을 통해 여론을 반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명규 의원(대구 북갑)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박창달 의원의 입장을 대변했고, 발이 넓은 곽성문 의원(대구 중ㆍ남구)은 친분이 있는 여당 의원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설득작업을 벌였으며, 형사소송 절차에 밝은 장윤?의원(경북 영주)은 막후에서 전략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6·5재보선에서 전남지사로 당선된 박준영 민주당 후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호남 민심의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TK 초선들은 허주(고 김윤환 의원)의 친동생인 김태환 의원(구미 을)을 회장으로, 곽성문ㆍ이명규 의원을 각각 총무와 간사로 추대, ‘대구ㆍ경북 초선의원 모임’결성을 계기로 당과 지역 현안 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들이 한나라당 텃밭 출신인 데다 종래 ‘대구권=박근혜, 경북권=이명박’이라는 선호도 등식이 흔들리면서 어느 후보가 TK 의원들을 우군으로 삼느냐에 따라 대권레이스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 ‘박창달 파문’과 호남의 이상기류

열린우리당의 텃밭인 호남의 이상 조짐도 대권 지형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전북은 여전히 열린우리당에 우호적이지만 전남은 역풍 기류가 감지되고 광주도 영향권에 있다는 관측이다. ‘박창달 파문’이 정가에 휘몰아칠 때 일각에서는 체포동의안 부결이 영ㆍ호남 초선들의 합작품이란 소문이 뒤따랐다. 즉 박창달 의원이 구속돼 보궐 선거를 치를 경우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영남을 대변해온 이강철 전 특보가 출마할 가능성이 높아 이를 경계한 호남 출신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소문의 진위를 떠나 ‘호남 소외론’ 이 ‘실재’ 한다는 게 전남권 의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초선 의원은 “노 대통령이 영남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영남 인사를 중용하겠다고 하고 호남은 예산은 물론 인사에서마저 소외당하고 있는데 호남 사람들이 화가 나지 않겠느냐”면서, “호남 소외와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도 있고 공개할 용의도 있다. 호남 소외는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만 풀린다. 내가 이런 상황을 당 지도부와 청와대 핵심들에게 전달했지만 답변들은 모두가 시니컬하기만 했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여론분석 전문가들은 호남이 차기 대선에서도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겠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나라당의 호남표 점유율이 증가, 대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나라당이 ‘호남이 없으면 대권도 없다’는 모토 아래 5ㆍ18 관련행사 참석, 김대중 전 대통령 업적 평가 등 ‘호남껴안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차기 대선과 관련, 여권이 호남ㆍ충청권을 안정적이라 판단하고 영남권을 향해 동진(東進)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데 반해 한나라당은 영남권을 기반으로 호남을 향한 서진(西進)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잠룡들의 야망과 여야의 지역 분점 경쟁 속에 대권 레이스의 불꽃이 세기를 더하는 요즘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7-15 14:5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