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의장 체제 출범으로 각 세력 간 경쟁관계 본격화

춘추전국시대 열린 우리당
이부영 의장 체제 출범으로 각 세력 간 경쟁관계 본격화

우리당 소장파의원들이 경제관련 의정연구센터 창립총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종철 기자

이부영 의장 체제의 출범과 함께 열린우리당 내의 세력간 경쟁관계는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천정배-신기남 ‘투톱’을 앞세운 당권파의 독주체제가 무너지면서 예정된 수순이다. 진행되는 양상은 크게 정동영 장관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이끄는 당권파와 김근태 장관과 이부영 의장을 정점으로 하는 비주류의 대결로 대분된다. 여기에 친노(親盧) 직계그룹의 핵인 문희상 의원 등이 이 의장 쪽을 지원하면서 절묘한 균형추를 잡아가고, 개혁당 그룹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모색하는 구도가 전개되고 있다. 이 같은 ‘4각 구도’는 일단 당권파에 맞선 ‘비주류 연대’로 틀을 갖췄지만 향후 당권과 대권 경쟁의 분수령인 내년 초 전당대회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입지축소 당권파, 전열 재정비

우선 당권파는 신기남 전 의장의 낙마로 당분간 입지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다만 이들의 전열 재정비는 ‘원톱’으로 남은 천정배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정기국회 시작과 더불어 모색될 공산이 크다. 이 의장의 원내외 분리정책에 맞서 독자 대오를 견고하게 유지해 내는 한편 각종 개혁입법에 쏟아내며 천 대표 중심성을 구축해 가는 수순이다. 천 대표 역시 “실질적인 임기는 이번 정기국회 100일”이라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혁입법 처리 전망이 그다지 순탄하지 않다는데 고민이 있다. 국가보안법, 언론개혁,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의 문제에 대해 당 내에서조차 강경론과 온건론이 분분하게 갈린 상황이고, 야당과의 협상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하지만 천 대표의 측근들은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천정배의 정치력’이 검증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며 주도권 탈환을 조심스레 낙관하고 있다.

반면 이부영 의장과 김근태 장관을 축으로 하는 ‘비주류 연대’는 당권파에 대한 견제심리와 과거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정통 재야파’로서의 정서적 공통분모를 통해 빠르게 결속력을 높여가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이해찬 총리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자연히 이 의장 체제의 출범과 함께 이들 ‘재야 트로이카’의 움직임에 정치권의 관심은 집중된다. 의기투합이 제대로 성사된다면 여권의 차기 당권, 대권 구도는 크게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세 사람이 모두 참석한 8월21일의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동지회’ 모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명목은 이 총리와 김 장관의 입각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재야의 원로인 함세웅 신부, 한승헌 변호사 등이 자리를 함께 해 일각에선 재야파 부활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이 자리엔 김근태 계보의 당내 핵심그룹인 ‘국민정치연구회’ 소속 의원 10여명이 참석한 점도 눈에 띄었다. 참석한 한 의원은 “늘 비주류에 서 있지 말고 개혁작업 완수를 위해 목소리를 내자는 정서적 일체감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의장이 의장직을 승계하던 19일에도 국민정치연구회는 모임을 갖고 “당헌당규상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하는 게 적절하다”고 손을 들어줬다. 또한 이들은 모임에서 매주 회동을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해선 모임 명의로 공식 의견을 발표키로 하는 등 적극적 활동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이 의장 체제에 전폭적인 힘을 싣기로 한 김근태계의 이심전심이 확인된 셈이다.


- 비주류, 결속력 높이며 힘 키워

이부영 우리당의장이 중앙위원회의에서 정국현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오른쪽은 천정배 원내대표. / 홍인기 기자

하지만 이부영 체제가 출범하기까지 막후의 가장 큰 조력자는 문희상 유인태 의원 등 친노직계 그룹의 핵심 인사들과 임채정 의원 등 중량급 중진들이었다는데 정치권의 이견이 없다. 신기남 전 의장이 낙마가 기정사실화 됐던 8월17일부터 이틀간 이 의장측은 부단히 이들을 접촉, 당권파의 비상대책위 방안을 뒤집는데 성공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이 이 의장 체제에 힘을 실으며 내세운 명분은 “계파다툼으로 비화돼선 안된다”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 내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위상과 이 의장의 빈약한 독자 기반을 감안했을 때, 중진그룹의 역할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문희상 유인태 임채정 장영달 원혜영 의원 등이 참여하는 기획자문회의는 당의 진로를 좌우하는 ‘사령탑’으로 기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자문회의가 비록 비공식기구이기는 하지만 최근 이 의장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기구 설치 등 굵직한 당의 정책방향을 현실화시키며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결국 중진그룹의 지속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느냐의 여부는 이 의장 체제의 순항 여부를 결정지을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한편 이 의장이 지도력 확보를 위해 연대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당 내 세력은 개혁당 출신 그룹이다. 하지만 이들과의 연대 고리는 김근태계나 중진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개혁당 그룹 역시 이 의장의 의장직 승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했지만, 이는 이 의장에 대한 지원이라기보다는 당권파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하기에 이들과의 관계 모색의 출발은 당권파와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기간당원 자격요건 완화 여부에 달려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 의장이 취임 후 각종 사안에서 뚜렷한 제목소리를 냈음에도 유독 기간당원 자격요건 완화 여부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황희 정승 같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도 이들을 의식한 태도로 풀이된다.

결국 불안정한 계파간 역학관계의 정점에 오른 이 의장측으로서는 현 구도대로 ‘비주류 연대’를 내년 초 전당대회까지 유지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노정되는 천정배 원내대표와의 신경전에 따라 당내 지형도는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정치권에선 4곳의 기초단체장과 2곳의 광역의원 선거가 예정된 10월30일의 재보선을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부영 의장에 대한 중간평가에 다름 아니어서 만약 지난 6ㆍ5 재보선과 같은 참패가 재연될 경우, 비주류의 상승세가 크게 꺾이는 대신 천 대표와 당권파의 당내 입지는 상대적으로 넓어질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분석에 따른 것이다.

또한 현재로선 당권에 뜻이 없음을 누차 강조하고 있는 문희상 의원도 청와대의 메시지가 떨어지면 거중조정자 역할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도 어떻게 변할지 모를 열린우리당 세력관계의 유동성에 기초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부영 체제의 등장으로 달라진 여권의 세력관계는 가깝게는 당권 경쟁, 멀게는 대권 경쟁을 함축하고 있기에 또 다른 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5:33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