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당권·2006 자자체선거놓고 주류·비주류간 치열한 파워게임박근혜·이명박·손학규 지지파, 과거사·수도이전문제 대리전으로 팽팽

한나라 '3人의 쟁투' 점입가경
대권·당권·2006 자자체선거놓고 주류·비주류간 치열한 파워게임
박근혜·이명박·손학규 지지파, 과거사·수도이전문제 대리전으로 팽팽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갈등이 심화된 박근혜 대표와 뒤쪽 이재오 의원의 표정이 심각하다. / 이종철 기자

“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8월 28~30일 전남 구례에서 진행된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 이틀째인 29일 저녁, 박근혜 대표로부터 예기치 않은 ‘한방’을 얻어 맞은 이재오 의원은 쓰라린 마음을 ‘낭만에 대하여’란 노래를 부르며 떨쳐 내려 했다.

박 대표에 대해 ‘유신 사과’를 촉구했다가 “당을 떠나라”는 의외의 반격을 받은 뒤였다. 다음날인 30일, 이 의원은 “이미 할 말을 다했으니 침묵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대신 김문수 의원이 나서 박 대표와 ‘맞짱’을 떴다. “누가 만든 당인데, 나가라 말라 하나”, “제2 유신이 선포되는 줄 알았다.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싸울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이재오.김문수 의원과 박 대표와의 대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른바 비주류로 대변되는 이재오ㆍ김문수ㆍ홍준표 3선 3인방은 박 대표에게 가장 강력하고 줄기차게 각을 세워왔다. 양측의 대립은 당내 주류 - 비주류 간 파워게임의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파워 게임이 함의하는 전쟁의 양상과 지향점은 제각각이다. 큰 줄기는 대권, 당권, 2006년 지자체 선거로 집약된다.

이재오ㆍ김문수 - 박근혜 3인의 마찰도 ‘큰 줄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양측 모두 “ 당에 대한 충정” “사심이 없다”는 등 행보의 순수성을 강변하지만 권력을 향한 정치의 속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권력은 칼이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칼은 더욱 예리하다. 이재오 의원의 상처는 박 대표가 벼르다 부른 ‘칼의 노래’에 베인 셈이다.

박 대표는 가장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로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을 꼽는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 꾸준히 실천하는 결단력이 그 이유라고 한다. 또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황제 측천무후에 대한 관심도 대단해 그의 일대기 비디오 30개(1질)를 다 보았을 정도다. 이는 권력에 대한 박 대표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편린들로 “육영수가 박정희로 변했다”는 의원 연찬회에서의 평과 맥락을 같이 한다.

박 대표가 이재오 의원을 향해 “대표 흔들기다. 무슨 저의가 있다고 본다”고 공격한 것은 대권 도전에 대한 의중을 무의식중에 드러낸 것으로, 김문수 의원은 최근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가 대권을 의식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 최악의 경우 분당 가능성도 점쳐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수도이전문제 국민대토론회에 참석, 악수를 하고 있다. / 이종철 기자

정가에서는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박 대표를 둘러싸고 주류 - 비주류 간에 벌이는 대립의 실질적 배경이 2007년 대선에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즉, 박 대표와 비주류 간 싸움이 표면적으로는 대여 투쟁 방식과 현안 대응 논리의 차이에 있는 듯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대권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이재오 의원의 ‘박근혜 불가론’이나 김문수 의원이 “(박근혜 대표가)변하지 않으면 자격이 없다”고 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측도 “박근혜로는 안된다”는 비주류의 논리 이면에는 또 다른 대권 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와가 연계돼 있다고 의심한다. 이들은 이재오 의원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장, 이후 서울시장 직무인수위원장을 맡았고, 김문수 의원은 지역구(경기 부천소사)와 차기 경기지사에 대한 야망으로 손 지사와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황 증거’로 제시한다. 상생의 정치를 강조해 온 박 대표가 의원 연찬회에서 180도 돌변, 비주류에 선전 포고에 가까운 강경 발언을 한 것은 사전에 비주류의 도발을 무력화시키고 주류의 결집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

지난 달 3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소속 시ㆍ도지사 회의에서는 박근혜 – 이명박 - 손학규 3인 간의 복선 깔린 긴장이 대선 전초전을 방불케 했다. 이날 회의에서 손 지사는 박 대표를 겨냥해 “과거사 문제는 국민을 보고 처리해야 한다”며 박 대표가 아버지의 문제 때문에 개인적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해 박 대표측을 자극했다. 이 시장은 당시 민감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는데, 박 대표가 이재오 의원을 공격한 연찬회 사건을 의식했다는 전언이다. 그래서 의원들 사이에선 3인의 신경전을 두고 ‘대선주자 탐색전’이란 말이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정가에서는 이러한 주류 - 비주류 간 대립이 대선에 임박할수록 격렬해지고 최악의 경우 분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비주류의 한 3선 의원은 “ 박 대표가 지금은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일지 몰라도 ‘ 약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 검증을 통해 털어낼 것은 미리 털어내야 한다. 일부에선 털어내기 힘든 아킬레스건도 있다고 하는데 박 대표는 그에 대한 ‘정리’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대선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당의 명운이 걸린만큼 최선의 후보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며 ”박 대표의 태도에 따라 비주류의 연대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지자체 선거가 있는 2006년을 기점으로 주류에선 박근혜 대표가, 비주류에선 이명박 시장, 손학규 지사, TK(대구.경북)를 대표하는 강재섭 의원 등이 연대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다시 말해 ‘친박(親朴) 대 반박(反朴)’전선이 확연해 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당 내에는 그러한 전선이 형성돼 있다.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김형오(사무총장)ㆍ이한구(정책위 위원장)ㆍ전여옥ㆍ한선교(대변인) 의원 등 당직자 그룹과 이강두ㆍ이규택 의원 등 친 김덕룡 원내대표 그룹, 원희룡ㆍ남경필 의원 등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 당의 싱크 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박세일ㆍ박형준ㆍ박재완 의원 등이 ‘친박’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한편 이재오ㆍ김문수ㆍ홍준표 의원 등 비주류가 주축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 김용갑ㆍ이방호ㆍ이상배 의원 등 영남 중진 보수파 모임인 ‘자유 포럼’은 ‘반박’전선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 수도이전 놓고 2라운드 돌입

손학규 경기지사

의원 연찬회에서 ‘과거사’문제로 일전을 치룬 주류 - 비주류 간 대립은 최근 ‘수도 이전’을 놓고 2라운드에 돌입한 양상이다. 연찬회에서 일격을 당한 비주류는 정기 국회가 개원한 1일 박 대표가 주저해 온 수도 이전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와 왔다. 이재오ㆍ김문수 의원 등 발전연을 주축으로 하는 ‘수도 이전 반대 본부’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약 300여명의 서울ㆍ경기지역 광역의원 및 기초 의원과 함께 ‘수도 이전 반대 국회의원ㆍ지방의원 연석 회의’를 갖고 ‘졸속 수도 이전을 반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해 발표했다.

같은 날 박 대표에 우호적인 ‘새정치 수요 모임’소장파 의원들은 국회 의원회관 103호실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수도 이전’과 관련해 발전연과는 다른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다. 권오을 의원은 “행정 수도 이전 문제를 너무 정서적으로 접근한다”면서 “ 기존 ‘조건부 반대’에서 ‘조건부 찬성’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박형준 의원은 “ 최근 김문수ㆍ이재오 의원이 추진하는 ‘수도 이전 반대 범국민 운동 본부(박계동 임시 의장)’가 신지역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수요 모임 의원들은 김문수 의원이 주도한 수도이전 반대 서명(92명)에서도 빠지기로 해 발전연에 각을 세웠다. 그럼에도 ‘수도 이전 반대 범국민 운동 본부’는 9월 9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100여개 시민 단체와 함께 1,000만 서명 운동 선포식을 가진 이들은 10월 21일에는 수도 이전 백만인 결의 대회를 예고해 박 대표측을 압박하고 있다.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3인의 대선 유력 주자를 배경으로 한 주류 - 비주류 간 대권전은 각 지지 그룹을 중심으로 당권 경쟁, 2006년 지자체전 등으로 확전될 전망이다. 8월 29일, 연찬회에서 박 대표를 공격한 이재오 의원 발언 뒤에 연단에 오?친박 성향의 한선교 의원은 기湄湧?해석이라는 전제로 “이 의원의 언행이 서울시장 준비와 관련돼 있다”며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이명박 시장과 가까운 이 의원이 이 시장을 대권 후보로 밀고 자신이 2006년 시장 후보로 나선다는 얘기다. 이 의원이 박 대표를 지나칠 정도로 공격하는 것도 결국이 시장의 대권 도전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한 의원의 발언은 사실 의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히 떠도는 얘기다. 이 의원 뿐만 아니라 비주류 3인방의 한 사람인 홍준표 의원도 서울 시장을 겨냥해 종래 ‘저격수’이미지를 털고 정책 전문가로의 변신을 꾀하면서 이 시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수 의원 또한 2006년 경기지사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박 대표측도 마찬가지다. 원희룡ㆍ남경필 의원 등이 박 대표체제에서 각각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남 의원은 오래전부터 경기지사를 겨냥해 당 외곽에 테스크포스팀을 가동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대권전의 또 다른 하부 전쟁은 당권전이다. 연찬회에서 영남 중진인 이상배 의원이 “한나라당도 특정 세대, 특정 계파가 코드 운영을 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인 것은 당 중심에서 밀려난 의원들을 대신한 항변이었다. 이 의원의 발언은 당권파인 김덕룡 원내대표 그룹을 비롯해 당 지도부에 포진한 인사들을 겨냥한 것으로 비주류 대부분이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영남 중진들이 지역이나 정서상 박근혜 대표와 가까우면서도 대권전에서 선뜻 박 대표의 손을 들어 주지 않는 것은 영남 출신인 이명박 시장을 저울질하는 측면이 있지만 당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관망’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권 전선은 2007년 대선과 2006년 지자체 선거를 향한 잠룡들의 용틀임으로 인해 몇 차례 더 출렁거릴 전망이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낭만에 대하여’가 과연 포연을 순화할 수 있을 지 정국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박종진


입력시간 : 2004-09-09 11:31


박종진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