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현철에게만 갔을까?"이자" "정치자금" 진실게임, 불통 정치권으로 튈 수도

'태풍의 눈' 게이트
비자금, 현철에게만 갔을까?
"이자" "정치자금" 진실게임, 불통 정치권으로 튈 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구속) 전 한솔 부회장 간의 ‘20억 진실 게임’이 정치권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20억원’의 실체를 놓고 불법 정치 자금이라는 검찰의 주장과, 위탁 관리금에 대한 ‘뒤늦은 이자’라는 현철씨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조 전 부회장의 비자금이 현철씨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선캠프, 여야 정치권으로 흘러 갔다는 이른바 ‘ 게이트’가 이념 정국의 새로운 뇌관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20억 진실 게임’은 지난 2월 서울지검 특수1부가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조 전 부회장이 지난 2000년 6월 자신이 보유한 한솔PCS 주식 600만주를 KT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수 백억원을 포탈한 혐의가 있다는 고발을 받고 수사에 착수하면서 표면화됐다. 조 전 부회장이 얻은 시세 차액 1,900억원의 사용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현철씨에게 20억원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뇌관’의 핵심축은 김현철 - 의 ‘불행한 인연’에서 연유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92년 대통령 선거 직후로 조 전 부회장은 다른 기업인들과 함께 현철씨를 후원했다. 97년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된 현철씨에 대한 검찰의 조사에 따르면 조 전 부회장은 신영환 신성그룹 회장, 곽인환 대동주택 사장 등과 함께 현철씨에게 33억4,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철씨와 조 전부회장의 ‘특별한’관계는 현철씨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당시 검찰은 현철씨의 비자금 186억원을 밝혔지만 그 중 66억6,000만원만을 문제 삼았다. 나머지 120억원은 92년 대선을 치르고 남은 대선 잔금으로 정치권에 ‘뜨거운 감자’였기 ??문에 건드지리 않았다.

현철씨는 초등학교ㆍ중학교 동기로 YS 대선 캠프의 대표적 사조직인 ‘나사본(나라사랑운동실천본부)’에서 정치 자금을 관리한 박중태씨에게 120억원 중 50억원을 맡겼다, 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자 이성호 대호건설 부사장에게 관리하게 한 뒤 나중에 전액을 돌려 받았다.

나머지 대선 잔금 70억원은 조 전 부회장에게 94년 5월과 95년 6월 각각 50억원과 20억원의 관리를 위탁하면서 97년 5월 검찰 수사를 받기 직전까지 연 12∼13%의 이자를 매월 지급받았다. 그러나 이 70억원은 한솔 산하 기업인 ㈜씨엠이 부산 황령산 개발에 투자했다가 환경 단체와 지역 언론의 반발로 무산돼 회수가 불가능하게 됐다. 이후 현철씨가 조 전 부회장으로부터 70억원을 돌려받았는 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 20억원 실체 놓고 공방

현철씨측은 70억원을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0억원’의 실체에 대해서도 “검찰수사가 시작된 97년 1월부터 사면이 결정된 99년 8월까지 70억원에 대한 이자를 뒤늦게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현철씨측 여상규 변호사는 “97년부터 99년까지 30개월에다 월 1%의 이자 7,000만원을 곱하면 20억원이 된다”면서 “70억원에 대한 이자일 뿐,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현철씨에게 총선 출마용으로 20억원을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문했다.

반면 검찰은 △20억원을 받은 시점이 총선을 앞둔 2003년이라는 점 △전액 현금이라는 점 △자금거래 시기에 현철씨와 조 전 부회장이 자주 회동한 점 등을 들어 불법 정치 자금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현철씨가 97년 6월 자필로 ‘7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재산권 양도 각서를 제시, 현철씨측에 대한 압박 카드로 쓰고 있는 상태다.

정가와 법조계에서는 현철씨가 돈을 받을 당시 17대 총선을 준비하던 신분이었고 영수증 처리도 하지 않은데다 지난해 대검 중수부가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10억원 이상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자에게 예외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됐던 점 등에 비춰 현철씨의 구속수감을 당연시하고 있다.

조동만

‘20억원’ 공방은 최근 검찰이 현철씨 외에 다른 정치인 쪽으로 수사 방향을 틀면서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씨가 신수인수권 처분 및 한솔PCS 매각을 통해 빼돌린 1,900억원의 사용처를 조사하던 중에 (김현철씨)이름이 나왔다”며 “나머지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해 그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여상규 변호사도 “씨가 현철씨 말고도 거물급 정치인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검찰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치권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4년 전인 2000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미 논란이 됐었다. 당시 한나라당 윤영탁 의원은 국회 질의 자료를 통해 KT가 한솔엠닷컴의 주식을 주당 3만7,000원에 매입한 것은 ‘특혜’라고 주장했다. 코스닥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크게 하락하고 있던 상황에 비춰 고평가됐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018이란 식별번호로 PCS사업에 뛰어들었던 한솔엠닷컴은 2000년 6월15일, 3조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받고 KT에 팔렸다.


- 여권실세 등 정치인 내사

당시 정재계에서는 매각 과정에 KT관계자에 대한 로비 의혹과 함께 유력 인사 연루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된 ㅇ씨와 김대중 정부 실세였던 ㄱㆍㅂ씨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최근 검찰 주변에서는 조 전 부회장이 지난 2000년 한솔그룹에서 독립해 따로 차렸다 부도가 난 한솔아이글로브의 회생을 위해 재작년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 및 이회창 후보 캠프에 비자금을 전달했고, 현재 여권실세 2명과 한나라당 의원 1명 등 최소한 3명이상의 정치인이 이 같은 혐의로 검찰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을 긴장케 하고 있다.

‘게이트’는 현철씨의 20억원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낳고 있다. 70억원에 대한 이자가 아니라 ‘비자금’, 또는 정치자금이라는 설명이다. 조 전 부회장에게 맡긴 70억원이 황령산 개발 투자 실패로 사라진 게 아니라 한솔PCS로 투자되었다가 매각 대금 1,900억원에서 일부가 전달되었다는 분석이나 96년 한솔PCS 선정 과정에 현철씨의 영향력 행사가 있었고, 그 대가로 한솔PCS의 일정 지분이 현철씨 몫으로 남았다가 매각 대금에서 전달되었다는 해석 등이 그것이다.

지난 11일 자해 행위를 한 현철씨가 구속되면서 검찰의 불법 정치 자금에 대한 수사에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검찰 주변에선 게이트의 뇌관이 이미 점화됐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9-15 15:5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