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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부활의 날개 다나
'세상과 담쌓기' 거두고 사무실 개소
정치적 기지개에 정가 촉각




9월 21일 옥인동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집을 방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이 전 총재가 집앞까지 배웅하고 있다.



10월 1일 저녁, 롯데호텔 메트로폴리탄 클럽.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과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눴다. 권철현 의원(대선 당시 비서실장)이 주선한 이 자리엔 박진, 유승민, 나경원, 김정훈, 서상기 의원 등 2002년 대선 당시 이 전 총재를 보좌했던 특보단 20여명 중 4ㆍ15 총선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11명)이 참석했다.

권 의원의 중국 방문 얘기로 물꼬가 트인 대화는 이 전 총재가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 동북쪽 변경 지역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중국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을 논하고 남북 관계, 현 정부의 대응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진지한 시간을 가졌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한 초선 의원은 “ 이 전 총재가 정치 얘기는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중국 문제를 포함해 노무현 정부의 미숙한 현안 대처 능력을 지적하는 등 경륜을 엿볼 수 있었다”면서 “ 이날 보도된 선친 묘의 이장에 관한 기사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선친묘의 이장에 대해 너무 정치적인 주석을 달았다는 것. 그는 “ 이 전 총재가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상당하다”고 해 향후 이 전 총재의 거취를 주목하게 했다.

그런 이 전 총재가 11월1일 미국에서 돌아왔다. 10월 12일 적을 두고 있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지 20여일 만이다. 인천공항에는 출국할 때보다 더 많은 전현직 의원과 ‘ 창사랑’ 회원 등 100여명의 지지파가 환영을 나왔고,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를 희망하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 정치현안에 목소리, '昌 부활론' 솔솔

이 전 총재의 귀국은 최근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의사 피력과 개인 사무실 개소, 선친 묘 이장을 둘러싼 억측 등과 맞물려 구구한 해석을 낳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참여 정부의 정치에 실망하고 야당에 대해서도 기대를 접은 세력들이 이 전 총재의 정치 재개를 바라며 힘을 보태고 있다는 이른바 ‘이회창 부활론’이다.

이 전 총재는 재작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듬해 2월 방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하다, 지난해 10월 차남 수연씨 결혼 등을 이유로 일시 귀국한 이후 불법 대선 자금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재출국하지 못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상과 격리된 셈이었다.

지난해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해 두 차례(10월31일, 12월15일) 기자 회견을 갖고 “ 내 탓이오”를 천명한데 이어 올 초 3월엔 직접 검찰에 출두하는 강수를 둔 뒤 세상과 담을 쌓았다. 이 전 총재의 유일한 세상 통로였던 옥인동 자택 뒤 인왕산 산책도 그를 알아보는 행인들로 인해 4월말로 막을 내렸다. 대신 러닝머 신을 구입, 자택에서 운동을 하거나 독서로 소일했다.

이 전 총재의 칩거 생활을 안쓰러워 한 측근들이 ‘ 외출’을 강권하기도 했지만 이 전 총재는 한사코 마다했다.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 김영일ㆍ최돈웅 전 의원 등이 구속돼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6월 2일 칠순 때도 이 전 총재는 측근들이 마련한 잔칫상을 물리쳤다. 세상과의 거리두기가 깊고 길어 질수록, 그는 정치권에서 멀어져 갔다. 말 그대로 ‘ 불꺼진 창’으로 치부됐다.

그런데 최근 이 전 총재에게서 ‘ 정치 그림자’가 부쩍 어른거린다. 지난 9월 21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옥인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의 발언은 ‘ 정치인 이회창’으로의 변신을 의심케 할만큼 파격적이었다.

“ 국보법 자체는 인권 유린 목적이 아니라 체제와 기본적 가치 보존을 위한 법으로, 이것을 남용하거나 악용한 사람이 나쁜 것이지 법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은 법의 본질을 모르는 소리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21명 전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국회를 떠난다는 결연한 의지를 국민에게 보이는 게 필요하다”.

- 사무실 개소는 정치권 복귀 신호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개인사무실이 있는 서울 남대문 부근 단암빌딩
/ 홍기복

이 전 총재는 이어 국가보안법의 개정 가능성을 언급한 박 대표의 입장을 반박하면서 “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 국보법은 우리 안보를 지키는 법적 장치이므로 절충이나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10여명의 출입 기자들이 지켜 보고 있다는 상황에는도 개의치 않고, “ 오신 김에 몇 말씀 더 드리겠다”며 과거사 규정, 행정수도 이전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총재의 9ㆍ21일 발언은 당 안팎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박 대표는 국보법 수정 입장을 철회했고, 당론도 국보법 유지 내지 일부 문제 규정을 수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내 보수 세력은 노무현 정부의 국보법 폐지, 행정수도 이전, 경제 정책 등을 비판하면서 이 전 총재가 일정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지난 10월 4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모임(10만여명 참석)을 전후해 이 전 총재를 찾는 원로와 보수 세력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이 전 총재의 측근인 L씨는 “ 원로들이 나라 걱정을 하면서 이 전 총재가 직접 나서 주기를 간곡히 요청해온다”고 밝혔다.

서울 중구 남대문 부근에 있는 이 전 총재의 사무실은 그의 ‘ 정치 재개’를 더욱 의심케 한다. 이 전 총재의 장남 정연씨의 장인 이봉서 단암산업회장(전 동력자원부 장관) 소유의 단암빌딩 내에 있는 사무실은 지난 10월초에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무실에는 이종구 전 특보(공보)를 비롯해 이흥주(산악회 담당)ㆍ이병기(정치) 특보 등 이른바 ‘이회창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고 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선 이 전 총재가 대권 도전 3수 끝에 꿈을 이룬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벤치 마킹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전 총재의 지인들에 따르면 대선 패배 이듬해인 2003년초, 이 전 총재의 후원회장인 이정락 변호사를 중심으로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근처에 DJ의 정치 재개의 기반이 된 아태재단과 같은 연구 단체를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 단암빌딩의 이 전 총재 사무실이 그러한 연구 단체의 모태가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은 그래서 나온다.

- 측근들 "정치에 뜻 없어"

이에 대해 이종구 전 특보는 “ 이 전 총재가 옥인동 자택에 계실 땐 집이나 근처 식당에서 모임을 갖곤 했는데 내방객이 많아 지고, 건강을 위해선 바깥 출입을 자주 하는 게 좋다는 주변의 충고를 따라 사무실을 내게 됐다”면서 “ 정치 재개와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 이 전 총재가 다시 정치를 할 생각이 없고, 그렇게 하기엔 정치 패러다임이 너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의 복심(復心)으로 통하는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전 여의도연구소장)도 “ 정계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 이 전 총재가 정치를 재개한다는 것은 언론의 상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정가에선 이 전 총재의 ‘ 정치적 힘’이 여전하고 오히려 웬만한 정치인들보다는 영향력이 막강해 이 전 총재 지지자 뿐만 아니라 중립 지대에서 현 정부의 국정을 바라보는 이들로부터도 부각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지 6일만에 실시한 문화일보 - TNS 여론 조사에서 그는 차기 주자 그룹 중 박근혜 대표, 정동영 통일부장관, 이명박 서울시장, 고건 전 총리에 이어 5위를 차지하고, 10월 초 한 언론사의 차세대 리더 여론 조사에서는 4위를 기록해 대중적인 지지도가 건재함을 보여준 것은 상징적인 단초라는 설명이다.

이 전 총재의 측근인 L씨는 “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비판적인 세력이 이 전 총재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 대권 도전이 아니더라도 원로로서 정치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인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 전 총재의 특보를 지낸 김정훈 의원은 “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면서 이 전 총재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 앞으로 노 정부의 실정이 계속되고 정치 환경이 조성된다면 이 전 총재가 정치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총재의 대권 3수에는 회의적이지만 ‘ 원로’로서 한나라당과 현실 정치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이다. 일각에선 내각제가 수용되고 한나라당이 리더 부재로 혼란을 거듭할 경우 이 전 총재가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설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차기 대선과 관련, 박근혜ㆍ이명박ㆍ손학규(경기지사) 3인의 예비주자에게 ‘ 이회창 변수’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게 당 안팎의 중론이다.

여야의 대치 정국이 지속되는 11월, 남대문 사무실을 오가며 세상과 소통하는 이 전 총재가 앞으로 정치 지형에 어떠한 궤적을 남기게 될 지, 그의 행보 하나 하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회창 선친묘

‘선비독서형’의 명당, 배경에 해석 분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선친의 묘가 화제다. 2002년 10월말 별세해 충남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소재 선영에 안장했던 고(故) 이홍규옹의 묘를 올 4월 10여㎞ 떨어진 예산군 신양면으로 이장한 것을 두고 구구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 선친의 묘터가 풍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는데, 조성된 지 1년 5개월여만에 이장을 한 것은 이 전 총재의 정치적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장된 장소가 한 때 ‘ 왕기 서린 명당’으로 화제가 만발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부모 이장 묘가 있는 신양면 하천리에서 불과 3㎞ 떨어진 곳이어서, 이 전 총재의 대권 도전과 연관 짓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선산을 관리하는 이회운(65)씨는 “ 대선 직전 쓴 묘였는데, 나중에 신고 하고 보니 집단 거주지 500m 이내에 위치했던 까닭에 불법 묘지가 돼 옮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 본래 (선친의)묘터는 풍수적으로 좋지 않다는 소리가 많았지만, 이장한 곳은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명당이 있는 곳이란 얘기를 들어 왔다”며 “이 전 총재 앞날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당시 기자와 함께 이 전 총재의 선영과 부친의 가묘를 답사하고 대권이 어렵다고 예언, 이씨를 비롯한 문중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풍수지리 신안계물형학연구소(www.poongsoo.co.kr) 박민찬 소장은 이장한 묘터에 대해 “ 이전 묘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말했다. 이전 묘터가 금오산의 산맥(穴)이 끊겨 죽은 혈(死穴)에 위치한 꼴이고, 뒤쪽 현무(玄武)도 아파트가 들어서 잘려나가 흉당인데 반해 이장한 곳은 ‘ 왕기가 서린 명당’이라는 것.

박 소장은 우선 현무가 웅장하다는 것을 지적, 직계 자손을 도와 주는 사람들이 많아 자손을 밀어 주는 힘이 강하다고 해석했다. 또 현무에서 나온 (좌)청룡, (우)백호가 묘터 앞까지 감싸고 있어 자손이 화목하고 우애를 상징한다고 풀이했다. 재물운인 (남)주작이 빈약하긴 하나 큰 지장이 없다는 평이다.

박 소장은 “ 전체 묘터 형상이 양반이 책을 보고 있는 ‘ 선비독서형’으로 자손이 학문으로 크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정치’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이장한 선친의 묘로 인해 향후 이 전 총재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될 것으로 풀이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11-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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