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개혁에 딴죽"인식, 교체기 맞아 대수술설

헌재 재판관·대법관 '코드 맞는 인물'로 물갈이?
노무현 대통령 "개혁에 딴죽"인식, 교체기 맞아 대수술설

10월 26일 청와대 국무회의장에 입장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 노 대통령은 이날 헌재의 위헌 결정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 여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헌재 재판관과 대법원 대법관을 진보성향 인사로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충청권 의원들이 헌재 재판관 탄핵 움직임을 보인 가운데 송영길 의원이 헌재 재판관 전원의 인사청문회를 골자로 하는 법률안 개정안을 추진하고, 김종률 의원이 헌재 재판관 자격 요건을 ‘법조 경력 15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낮추는 법 개정안을 준비하는 등 헌재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안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들도 헌재 재판관과 대법관 임명절차에 시민단체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대법관ㆍ헌법재판관 시민추천운동’을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송희 참여연대 간사는 “헌재와 대법원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판ㆍ검사들로만 구성돼 보수 일변도의 단일한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고, 김진욱 변호사(민변 사법위원회 위원장)는 “사법권의 독립은 입법, 행정으로부터의 독립이지 국민으로부터 독립이 아니며, 미국의 많은 주에서 직접선거에 의해 판사들을 선출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손으로 헌재 재판관을 뽑는 직접선출 필요성을 언급했다.

- 헌재 권한 제어 움직임

강금실 전 법무장관

참여정부의 핵심 과제인 신행정수도 건설이 좌초,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청와대는 헌재 결정에 직접적인 대응은 자제하면서도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 헌재의 권한을 제어하려는 일련의 흐름에 탄력을 제공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0월21일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해 “관습헌법은 처음 듣는 이론”이라며 우회적으로 헌재를 비판한데 이어 26일 국무회의에서는 “ (헌재 결정으로)결국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되었고 정치지도자와 정치권 전체가 신뢰의 타격을 입었다”며 “국회는 권능회복을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의 후속조치에 적극 협조할 것임을 암시했다.

열린우리당이 헌재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문희상 의원이 27일 노 대통령을 만났고,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내에 제출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당ㆍ청의 공조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함께 청와대내에 헌재와 대법원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내년부터 시작되는 헌재 재판관과 대법관 교체기에 ‘대수술’ 이 단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번 위헌 결정은 헌재가 본연의 자리에서 벗어나 ‘헌법제작소’로 전락한 형태로, 헌재 재판관 구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는 대법원 대법관도 마찬가지”라고 말해 청와대의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청와대의 한 386 참모는 “지난 8월 국가보안법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재가 한나라당조차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국보법상 찬양ㆍ고무죄에 대해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을 보고 재판관들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고조됐다”고 밝혔다.

- 개혁적 인사 중용 시사

문재인 청와대시민사회수석

청와대의 이러한 분위기는 노 대통령이 내년부터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 퇴임하는 인사를 대신해 일부 헌재 재품喚?대법관을 선출, 또는 임명하는 등 헌재와 대법원에 직간접의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돼 향후 노 대통령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즉 신임 헌재 재판관과 대법관은 참여정부의 개혁 노선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중용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지만 과연 누가 선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욱이 여권이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기본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 등 4대 입법과제에 대해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헌법 소원으로 밀어붙일 태세여서 헌재 재판관과 대법관의 대폭 ‘물갈이’는 여권의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헌재 재판관(9명)과 대법관(14명)의 임기는 6년으로 노 대통령의 임기(2008년 2월) 안에 헌재 재판관 7명과 대법관 11명이 임기 만료, 또는 정년으로 바뀌게 된다. 헌재 재판관 중 김영일 재판관이 2005년 3월, 윤영철 헌재 소장을 비롯한 권성ㆍ김효종ㆍ김경일ㆍ송인준 재판관은 2006년 8∼9월, 주선회 재판관은 2007년에 임기를 마친다. (도표 참조)

헌재 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 또는 지명하는데 노 대통령은 임기 만료되는 7명의 재판관 중 김대중 전 대통령 몫이었던 윤영철 소장, 송인준ㆍ주선회 재판관을 대신해 3명의 재판관을 직접 임명할 수 있다.

최병모 전 민변회장

나머지 4명은 국회와 대법원장이 각각 2명씩 선출ㆍ지명하는데 국회 추천의 경우 열린우리당 몫이 1명이기 때문에 2007년 3월이면 여권은 4명의 재판관을 확보하게 돼 헌재의 위헌 결정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청와대 주변에선 새 재판관으로 ,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대법관은 2005년에 최종영 대법원장을 비롯해 변재승ㆍ유지담ㆍ윤재식ㆍ이용우ㆍ배기원 대법관 등 6명, 2006년에 강신욱ㆍ이규홍ㆍ이강국ㆍ손지열ㆍ박재윤 대법관 등 5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대법관은 명망 있는 법조계 안팎의 인사들로 구성된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새로 뽑을 대법관 11명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 대법관 후보로는 , 18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진보적 판결로 유명한 박시환 변호사, 국가보안법ㆍ세무ㆍ노동자 산재 등에 대해 진보적 성향을 보인 이홍훈 현 제주지법원장 등이 거명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1-04 13:5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