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대북정책에 변화 조짐한나라당도 '정책혼선'이유 내세우며 NSC 정리 요구

부시 재집권으로 외교안보라인 '흔들흔들'
노무현 정권 대북정책에 변화 조짐
한나라당도 '정책혼선'이유 내세우며 NSC 정리 요구


국외 통외통위 의원들이 반기문 외통부장관으로부터 부시 재선에 따른 외교부 입장을 듣기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종철 기자

“ 미국 국민은 안보와 국민 안위를 최우선으로 선택했다. 이것은 우리 국민에게 안보가 제일 중요하다는 교훈을 줬다. 다시 한 번 국가보안법 폐지는 안 된다는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다.”(11월4일 한나라당 이규택 최고위원) “시중에서 우리당이 케리 후보를 지지해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실망하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말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서 위험이 더 커지게 해선 안 된다.”(11월4일 열린우리당 유재건 의원)

미국 부시 대통령의 재집권이 결정된 바로 다음날, 여야 회의석상에서 나온 두 발언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미국 대선 결과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초강대국 행정부의 향후 4년간 방향타가 보수 강경파의 손아귀에 떨어진 데 대한 희비 교차의 단면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여러모로 부시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인한 보수화의 물결은 우리 정치의 여야 관계, 각당 내부의 역학 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 한나라당, 이종석 NSC사무차장 겨냥

한나라당은 즉각 ‘ 한미 동맹’과 ‘ 안보’를 매개로 고강도 대여 공세를 폈다. 대여 공세의 포커스는 외교 안보 라인, 특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쏠렸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 북핵 문제가 위중한 상황인 만큼 한미동맹 복원에 역점을 둬야 하고 정책 혼선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NSC에 대한 일대 정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 NSC 내에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책임자 때문에 문제가 계속된다.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는 그 책임자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있다”고 사실상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겨냥했다.

미 대선 후 일성으로 한나라당이 이 차장의 교체를 주문하고 나선 대목은 간단한 정치 공세로 치부해 버릴 만한 일이 아니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중용설이 나도는 콘돌리자 라이스 NSC 보좌관 등 미 행정부 내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그 동안 이 차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 온 맥락이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이 차장의 즉각 교체를 요구한 것은 미 대선 결과를 빌미로 참여정부 대북 정책의 근간을 흔들어 버릴 수 있는 아킬레스건을 찾은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곧 노무현 정부가 지난 2년동안 추진해 온 대북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 청와대 개편과 가능성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직자들로부터 미국 대선 결과와 당내현안을 보고받고 있다. / 이종철 기자

당연히 여권의 반응은 “ 교체 검토 계획 없음”이다. NSC가 주요 틀을 결정하고 외교부와 주미대사관이 집행하는 현행 시스템에 대해 청와대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 부시 재집권’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경색될 가능성이 농후해 진 만큼 청와대로서도 이 차장을 마냥 끌어 안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적지않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는 연말께로 예상되는 청와대 개편 구상과 함께 도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의 ‘안보’ 공세는 이규택 최고위원의 발언에서도 나타났듯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필두로 한 여권의 4대 입법 과제 추진을 제어하는 외적 조건으로 활용될 공산도 크다. 그러나 당내에선 미 대선 후 수위가 높아진 한나라당 보수파의 발언이 국보법 문제에 미온적이었던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후문도 나돌아 내홍의 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최근 극우 진영이 이명박 서울시장 주위로 빠르게 결집하고 있는 상껐?부시 대통령의 재집권이 어떤 상승 효과를 낼 지에 대해 박 대표로서도 신경을 안쓸 수 없는 대목이다.

반대로 여권의 딜레마는 그 동안 은연중 민주당 캐리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밑바탕에 두고 추진해 온 남북 정상 회담 문제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시기에 남북 정상 회담이 개최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지만, 청와대는 “ (북핵 문제 해결 후 남북 정상 회담 추진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 남북정상회담 추진 놓고 여권내 이견

우리당 내에서도 “ 북핵 문제는 반드시 6자 회담 틀 안에서 푼다”는 미국의 입장이 확고해 진 상황에서 “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선 부시 재집권에 따른 한반도 긴장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종전보다 남북 정상 회담을 한층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어, 여야 관계보다는 여권 내부 갈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오히려 커 보인다.

이처럼 여권 내부의 인식의 간극이 넓어지면서 한나라당은 내심 남북 정상 회담 카드를 통한 여권의 정국 주도권 장악 의도가 사실상 좌초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회 통외통위(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의 한나라당 의원은 “ 6자 회담 당사국 모두가 남북 정상 회담에 부담을 느껴왔고 더욱이 부시 대통령이 재집권한 상황이 크게 작용하고 있어, 당분간 노무현 정부가 다른 ‘꼼수’를 부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논란이 예상됐던 몇 가지 중요한 사안은 부시 재집권과 함께 일사천리 처리가 확실시된다. 캐리 후보의 집권시 예상됐던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 처리 논란은 현재로선 우리 정부의 좁아진 운신의 폭을 감안할 때 여야간 합의 처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정부 여당에선 자이툰 부대가 작전지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점 등을 들어 파병 연장의 필요성을 보다 강하게 역설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한나라당이 ‘국익’ 차원에서 적극 가세하는 형국이 예상된다. 다만 우리당 일부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지만, 이는 ‘부시 재집권’으로 인해 대중적 설득력을 빠르게 잃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여권 수뇌부는 용산 기지 이전협정(UA) 처리에 대한 당내 일부의 반발이 한미간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 적극 차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입력시간 : 2004-11-11 10:40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