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유엔사무총장→ ?대미관계 개선·유엔진출 '이해관계' 합치, 정계 일부선 '홍 대망론'도 제기

홍석현 카드의 숨은뜻과 대망론의 실체
주미대사→유엔사무총장→ ?
대미관계 개선·유엔진출 '이해관계' 합치, 정계 일부선 '홍 대망론'도 제기


지난 2월14일 노무현 대통령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청와대 상춘제에서 회견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 초대가 앞으로 큰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상춘재에서 저녁을 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 2월 14일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직접 대담자로 나선 인터뷰에서 ‘상춘재 덕담’을 건넸다. 청와대 상춘재는 주로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곳으로, 노 대통령이 그곳에서 홍 회장과 인터뷰와 만찬을 한 것은 파격적인 대우였다.

대통령과 말이 통하는 사람
그리고 10개월 뒤 실제로 ‘의미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외교통상부가 사의를 표명한 한승주 주미 대사 후임에 홍 회장을 내정한 사실을 12월 17일 공식 발표한 것이다. 홍 회장을 주미대사에 내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상춘재 회동에서 쌓은 노 대통령과 홍 회장의 ‘신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대통령은 홍 회장의 ‘열린 보수’와 북한에 대한 이해에 크게 공감을 나타내며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고 해 그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참여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을 세우기도 한 언론사 대표를 주미대사라는 중차대한 자리에 기용한 데는 신뢰만으로는 해석이 불충분한 함의가 내포돼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한 ‘함의’는 홍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 사실을 놓고 청와대와 홍 회장측이 방점에 차이를 둔 데서도 엿보인다. 청와대가 주미대사의 역할에 중점을 둔 반면, 홍 회장측은 유엔총장 진출에 의미를 부여한 것. 그래서 청와대와 외교가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과 홍 회장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홍 회장을 주미대사로 발탁한 표면적인 이해관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미관계와 핵심 현안인 북핵 문제를 유연하게 풀어 가고 미국의 한국에 대한 여론, 인식 등을 개선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16일 “양국간에 정부 차원의 관계는 아주 돈독해 지고 있으나 미국 사회의 여론과 특히 지식인층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홍 회장은)미국 지식인 사회와 여론과의 관계를 잘 이끌 분”이라고 언급, 그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규형 외교부 대변인도 17일 “홍 내정자는 제 2기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포괄적ㆍ역동적 한미 동맹 관계를 보다 굳건하게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뒤 홍 회장의 이력과 미국내 언론, 정재계 인맥을 거론하면서 홍 회장이 주미대사의 ‘최적임자’임을 강조했다.

미국내 인맥과 삼성 정보력 활용 강점
실제로 홍 회장은 2002년 세계신문협회장(WAN)을 맡은 이래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주류언론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부시 2기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콘돌리자 라이스와 친분이 두터운 것을 비롯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과도 관계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 이건희 회장의 처남으로 미국내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삼성이 구축한 인맥도 홍 회장의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홍 회장은 주미대사로 내정되기까지 유엔 사무총장쪽에 관심을 두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미 대사를 징검다리 삼아 유엔 총장에 출마하겠다는 뜻도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홍 회장의 주미 대사 내정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밀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며 “코피 아난 현 유엔사무총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2006년 말은 우리나라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할 수 있는 적기이고 홍 회장이 그 적임자”라고 홍 회장의 입장에 힘을 실어 줬다. 또 다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홍 회장측에서 9월 초 유엔 사무총장 출마 의사를 밝히며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 와 ‘우리를 먼저 도와 달라’며 주미대사직을 제의한 적이 있다”며 비사를 전하기도 했다.

주미대사에 내정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중앙일보 제공

주미대사 내정을 둘러싼 노 대통령과 홍 회장측의 표면적인 이해 관계는 일견 무리없이 합의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홍 회장의 인선이 ‘파격적’이었던 만큼 그 이면에 대한 억측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주미대사에 홍석현 카드를 꺼낸 데는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정부는 홍 회장 발탁의 가장 큰 이유로 한미관계 개선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여론 환기를 들었지만 그 점에서 오히려 한승주 현 주미대사의 능력이 홍 회장의 그것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다. 홍 회장은 외교 경험이 없지만 한 대사는 ‘외교’를 아는 몇 안 되는 외교관으로 미국 조야에서 알려져 있다.

국무부에서 한국 담당관을 지낸 한반도 전문가인 케네스 퀴노네스씨는 “한 대사가 주미대사 재임중 이룬 일 가운데 가장 큰 업적은 한미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라면서 “북핵 접근법에서 한미간에 존재하는 이견으로 인한 관계 훼손을 성공적으로 복원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보수세력 껴안기·남북관계 개선 포석
그래서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노 대통령이 주미대사를 홍 회장으로 교체한 실질적 이유가 대미(對美)가 아닌 대북(對北) 관계 개선,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즉 홍 회장이 미국내 인맥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제재 움직임을 완화시키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참여정부가 나서, 또는 삼성의 파워를 앞세워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시나리오다.

노 대통령은 올 2월 상춘재 회동 때 홍 회장이 “친미와 친북은 대립 개념이 아니며, 친북이 친미일 수도 있다”는 유연한 외교관을 밝힌 것에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홍 회장은 올 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터뷰를 시도하고 ‘대북 10대 사업’을 추진하는 등 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에 호응해왔다. 북한 역시 김대중 정부 때부터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의 북한 투자를 간절히 원했던 터라 막상 삼성의 대북 투자가 가시화할 경우 남북 경협은 한단계 진전되고 정상 회담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홍 회장의 주미대사 기용을 두고 삼성과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홍 회장이 주미대사에 중용됨으로써 참여 정부에 각을 세워 온 조선ㆍ중앙ㆍ동아 트리오의 화력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반면 참여정부는 그 동안 거리를 두어 온 보수세력을 끌어 안아 외연을 넓힐 수 있게 됐다. 만일 홍 회장이 경쟁력 있는 잠룡이 된다면 노 대통령 입장에선 굳이 마다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정가 일각에선 홍 회장의 행보를 두고 유엔 사무총장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대권도전까지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올초 노 대통령과 특별 대담에 자신이 직접 나섰을 때부터 이런 '홍석현 야망론'이 회자되기도 했다.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적이었을 때부터 대권 구상을 해왔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홍 회장은 “정치는 안 할 것”이라며 에둘러 손사레를 한다.

주미대사로 변신할 홍 회장이 2006년 그가 목표한 유엔총장에 오를 지, 아니면 2007년 승천을 준비하는 잠룡이 될 지, 이도 저도 아니면 다시 언론인으로 돌아오게 될 지, 그의 행보 하나 하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2-22 17:1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