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진화 불구 물밑서 '부글부글'4대법안 협상 결과 놓고 거센 인책론, 당직개편 뒤 불시 커질수도

한나라당 불협화음, 수면 아래로
갈등 진화 불구 물밑서 '부글부글'
4대법안 협상 결과 놓고 거센 인책론, 당직개편 뒤 불시 커질수도


박근혜 대표가 김덕룔(왼쪽) 원내대표로부터 4대입법 처리에 관한 여야 합의사항을 보고받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일 신년 인사회에서 새해 목표를 “하나에서 열까지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데 당력을 쏟겠다”고 밝혔다. 인사회에는 김덕룡 원내대표, 김형오 사무총장, 이한구 정책위의장 등 당직자와 사무처 직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지난해 말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내홍은 가라앉는 듯한 모습이다. 박 대표도 연초‘정치 하한기간’ 중 재래시장과 건설현장 등을 돌며 민생 챙기기에 몰두할 방침이다.

연초 만해도 열린우리당과 마찬가지로 4대 법안 협상의 여진이 한나라당에 몰아칠 것으로 전망됐다. 박 대표는 김 원내대표가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와 신문법과 과거사법을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국보법과 사학법은 올 2월 초 임시국회로 넘기는 ‘2+2’방식의 협상안에 서명하자 노골적으로 불신을 나타냈다. 그는 의원총회에서 “과거사법에 나는 ‘북한정권’용어를 넣으려고 했는데 원내대표의 생각은 달랐다”고 책임을 원내대표에 돌렸고, 의원들도 “대표도 모르는 사이 김 원내대표가 협상안에 서명했다”며 김 원내대표를 궁지로 몰았다.

이 같은 여세를 바탕으로 영남권 보수파 의원들은 김 원내대표에 대한 인책론을 강력히 제기했고, 이는 당내 갈등으로 번질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4대법안 협상과정에서의 불협화음으로 우리당이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 당지도부가 총사퇴 하는 극도의 혼란에 휩싸이자, 박 대표는 갈등의 조기 봉합을 선택했다. 반면교사인 셈이다. 박 대표는 연초 김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이 담긴 발언은 아예 꺼내지 않았고, 3일엔 김 원내대표와 오찬 회동을 가졌다.

양측 측근들은 “두 분이 점심을 함께 하며 지난해 말 임시국회 과정에서 쌓인 오해를 풀었다”며 갈등이 해소됐음을 거듭 강조했다. 박 대표는 기세를 몰아 당초 이 달 말 또는 내달 초로 계획했던 당직 인사도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다.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대표비서실장 대변인을 포함한 대규모의 이번 인사를 통해 박 대표의 색깔이 뚜렷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당내 보수파, DR 인책론 정면제기
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다르다. 출신지역과 이념에 따라 당내 의원들의 4대법안 협상 과정에 대한 평가도 다르고, 책임에 대한 방향도 상반된다. 당장은 영남 강경보수파와 새정치수요모임을 비롯한 소장파의 간의 갈등이 심상찮고, 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갈등 봉합 역시 일시적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모습을‘휴화산’으로 묘사했다. “지금은 상당수 의원들이 외유에 나서는 등‘정치 방학’인 관계로 조용해 보이지만, 물밑 분위기는 불똥만 튀면 곧바로 불이 붙을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용갑 이방호 안택수 등 영남권 보수 강경파들은 김 원내대표가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비하 발언 이후 4대 법안 협상과정까지 원내전략에 실패했다며 인책론을 정면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박 대표가 국보법 폐지를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김 원내대표는 당의 뜻과 달리 여당에 오히려 협조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안 의원은 “새해를 맞아 지난 잘못을 정리하고 새 출발하기 위해선 김 원내대표가 깨끗이 물러 나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방호 의원은 김 원내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박 대표의 진화작업에 기세가 다소 약화됐지만, 이들은 김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회의 아프리카 외유를 마치고 귀국하는 대로 퇴진 서명 운동을 벌일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수요모임 중심의 소장파 의원들과 비주류는 “김 원내대표가 도대체 무엇을 잘 못했느냐”며“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협상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는데 칭찬은 못할 망정 퇴진은 얼토당토않다”고 반박한다. 일부 소장파 의원들과 비주류 의원들은 오히려 박 대표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한 소장파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여당 중진 의원들과 함께 협상력을 발휘해 야당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었음에도 박 대표는 지나친 강경 노선만 견지, 한나라당의 ‘보수 꼴통’이미지만 부각시키는 결과를 나았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이재오 의원 등 비주류도 박 대표의 우경화를 심각히 우려했다. 홍 의원은 “대여 협상에서 박 대표의 교섭력보다 김 원내대표의 유연성 더 부각돼야 한다”며 “영남권은 어떻든 김 원내대표를 좌초 시키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장파, DR 두둔하며 박 대표에 화살
박 대표 출범 당시 원군이었던 소장파 의원들의 이 같은 모습은 박 대표에 대한 실망에서 출발한다. 박 대표가 지나치게 보수 강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당내 보수파는 4대법안 협상 과정에서 박 대표가 결단력과 강단을 보여주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박 대표의 보수 강경색채 강화는 2007년 대선 승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수요모임의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이 최근 수도권 출신 온건 개혁파인 임태희 박진 권영세 의원등과 회동을 갖고 박 대표의 우경화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 받고 있다.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당 내 보수 강경파와 노선투쟁을 불사하고, 박 대표의 당명 개정과 당 조직개편에 반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내대표의 행보도 당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중요한 변수다. 김 원내대표는 외유를 마치고 귀국하면 중대 결단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결단에는 원내대표직 사퇴도 포함될 수 있지만 주변의 만류도 있고, 사퇴할 경우 강경파의 목소리에 밀렸다는 모습을 보일 수가 있어 당분간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대신 김 원내대표는 영남출신 보수 강경파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박 대표가 강경파에 휘둘려서는 당의 미래가 없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물밑에서 끓고 있는 갈등은 박 대표의 당직 인선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당 내의 한 관계자는 “박 대표가 당직 개편에서 보수 강경파 의원들을 대거 등용할 경우 소장파와 수도권 온건개혁세력의 거센 반발이 명약관화하다”고 말했다. 또 2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 등 3대 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 대표 취임 후 5개월 동안 시험항해를 끝낸 ‘박근혜 호’가 격랑을 뚫고 순항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권혁범 기자


입력시간 : 2005-01-12 17:36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