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보은 인사로 검증에 오류, "부방위로 검증권한이관 검토" 밝혀

노무현식 시스템인사에 구멍
코드·보은 인사로 검증에 오류, "부방위로 검증권한이관 검토" 밝혀

임명되자마자 도덕성 시비에 휩싸인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1월7일 서울정부중앙청사 브리핑실에서 가진 사퇴회견 도중 입을 다물고 있다.

“정치는 신하를 선임하는데 달려 있다”. 공자는 노나라 애공(哀公)이 “정치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라는 의미다.

노무현 대통령도 인사의 중요성을 인식, 2003년 1월 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사개혁’ 없이는 새 정부가 성공하지 못한다”며 “지연, 학연, 밀실인사 등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사혁신’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적재적소, 실적주의, 투명ㆍ공정ㆍ균형 인사를 참여정부의 인사원칙으로 삼고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신설하는 한편 인사 추천과 검증을 서로 다른 부서에 맡겨 견제를 하도록 하는 새 ‘인사 시스템’을 가동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의 인사 결과는 시스템 작동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노정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2년간 무려 13차례나 크고 작은 규모의 개각을 단행했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그럴 때마다 “코드ㆍ보은 인사” “정실 인사” 등 ‘노무현식 인사’라는 시비가 불거졌다.

실험내각·코드청와대로 출범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 초부터 ‘파격적’ 인사로 논란을 불렀다. 첫 내각(2003년 2월 27일)은 고건 국무총리 체제로 외형상 ‘안정형’을 취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김두관 행자부 장관, 강금실 법무 장관, 이창동 문광부 장관을 비롯해 윤영관 외교통상 장관, 김화중 복지부 장관 등 파격적 요소가 상당했다. 그래서 노 정부의 첫 내각은 ‘개혁’을 표방한 ‘실험 내각’이란 평가가 뒤따랐다.

반면 청와대 구성은 ‘전문성’이 약화된 대신 보은적 성격을 띤 ‘코드 인사’ 형태를 띠었다는 평가다. 노 대통령 정치 입문시절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한 ‘금강팀’(노 대통령의 대선 캠프인 ‘자치경영연구원’ 출신)의 이광재(국정상황실장)ㆍ서갑원(의전비서관)ㆍ백원우(행정비서관) 의원을 비롯해 부산사단인 문재인(민정수석)ㆍ이호철(민정비서관)ㆍ이해성(홍보수석), 운동권 출신인 유인태(정무수석)ㆍ장준영(시민사회1비서관)ㆍ양민호(민원비서관) 등 과거 비주류에 속한 친노그룹이 주류로 대거 이동하는 ‘권력핵심 주류의 교체' 양상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5일 처와대에서 오영교 신임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지난해 4월의 17대 총선은 내각 구성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총선 승리를 위해 1기 내각에 참여한 유명 장ㆍ차관을 차출하는 ‘올인(all-in)’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윤덕홍 교육부 장관이 2003년 11월27일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로 교체되고 뒤이어 12ㆍ28 개각에서는 오명 과기부 장관, 강동석 건교부 장관, 김병일 기획예산처장관이 입각한 데 이어 2004년 2월9일 개각에서는 총선에 출마하는 김진표 경제부총리, 권기홍 노동부 장관, 총리실 산하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의 후임으로 각각 이헌재 전 재정경제장관, 김대환 인하대 경상대학장, 한덕수 산업연구원장이 임명됐다. 또한 조영동 국정홍보처장의 후임으로는 정순균 국정홍보처 차장이 승진했다. 이렇게 이뤄진 개각은 ‘코드’보다는 ‘전문성’에 비중을 둔 안정형 인사로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의 이너서클도 바뀌었다. 2003년 8월부터 총선 대비를 위해 이해성 홍보수석, 문학진ㆍ박재호 정무비서관, 김만수 보도지원비서관, 백원우 행정관 등이 선발대로 떠났고, 박범계 법무, 서갑원ㆍ김현미 정무비서관 등은 후발대로,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등은 막차로 총선 대열에 합류했다. 또 노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인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최도술 총무비서관 등이 대선자금 비리로 불명예 퇴진하는 등 친노그룹이 대거 청와대를 떠나면서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공백을 김우식 비서실장-문재인 시민사회수석-박정규 민정수석-이병완 홍보수석 체제로 메우고 지난해 6월8일 이해찬 총리를 기용한데 이어 6ㆍ28 개각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복지부 장관을 ‘책임형 장관’으로 입각시켜 분권형 국정 운영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어 법무(강금실)ㆍ국방(조영길) 장관을 교체(7월28일)하고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을 임명(8월2일)함으로써 2기 개각을 마무리, 후반기 국정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

5단계 검증절차 불구 '한계' 드러나
그러나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인사 파동을 계기로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노무현식 ‘시스템 인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노 정부가 5단계(또는 3단계) 검증 절차를 거쳐 인사를 한다고 하지만 코드ㆍ보은 인사는 여전해 역기능이 우려되고 있다. 작년 12월23일 이사회에서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으로 재선임된 박기정씨에 대한 임명 제청을 거부하고 노 대통령후보 언론정책 고문을 역임한 서동구씨를 민 것이나 이에 앞서 통합증권거래소 이사장에 대선 직전 치러진 6ㆍ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한이헌씨를 염두에 두었다가 이것이 불발하자 17대 총선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을 앉힌 것은 대표적인 예다.

가장 최근의 1ㆍ4 개각에서 해수부 장관에 오른 오거돈 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작년 6월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시장에 출마했으며 17대 총선서 사지(死地)인 영남에서 장렬히 전사한 윤덕홍 전 부총리, 공민배 전 창원시장, 박재호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이 각각 정신문화연구원장, 대한지적공사 사장, 국민체육진흥공단 감사에 임명된 것도 ‘보은 인사’로 해석된다.

한 번 ‘내 사람’이면, 끝까지 챙겨주는 노 대통령 특유의 ‘정실인사’도 입방아에 올랐다. 최근 조윤제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장재룡 외교부 본부대사를 제치고 영국대사에 기용된 것이나 권오규 정책수석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에, 작년 박종문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요코하마 총영사에 낙점된 것, 권영만 전 보도지원비서관과 조광한 전 홍보기획비서관이 각각 교육방송(EBS) 부사장, 한국가스공사 감사에 발탁된 것은 그러한 예들이다.

노 대통령이 모교인 부산상고 출신을 챙긴다는 ‘동문 인사’도 뒷말이 많다. 노 대통령의 5년 선배인 윤광웅 국방장관, 1년 후배인 오정희 공직기강비서관, 동기인 김병호 자치정보화조합 초대 이사장 등을 두고 하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탐독한 저서를 통해 인사를 발탁하는 것을 빗대 ‘독서인사’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번에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된 오영교 전 KOTRA 사장, 주미얀마 대사로 내정된 이주흠 전 리더십비서관, 윤성식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의 경우가 그러하다. 참모의 입김이 작용, 이기준 전 부총리 파문의 예처럼 참모가 대통령의 판단을 그릇되게 하는 ‘참모 인사’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월13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과 관련, “부패방지위원회 등에 검증 권한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 인사에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노 대통령의 인사가 ‘만사(萬事)’가 될 지, 반대로 ‘망사(亡事)’가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1-21 11:1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