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김우석 실장 유임은 집권후반기 안정적 국정운영 포석

'몸통 구하기'에 온몸 던진 靑
이해찬 총리·김우석 실장 유임은 집권후반기 안정적 국정운영 포석

“국민들이 저를 개혁쪽으로 조금 치우친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비서실장은 조금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좋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은 1월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연두 기자회견에서 교육부총리(이기준) 인사파동에도 불구하고 비서실장 책임을 묻지 않은 것에 대해 “실용주의 노선과 무관하다”면서도 한편으론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할 것임을 강력히 암시했다.

‘이기준 파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언급은 비서실장 개인에 대한 시각을 밝힌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양한 함의가 있다. 인사파동의 ‘몸통’으로 알려진 이해찬 총리, 김우식 비서실장이 유임되고 ‘깃털’로 볼 수 있는 인사수석, 박정규 민정수석이 사퇴한 배경, 열린우리당의 중심 축이 실용주의파로 옮겨지는 과정, 향후 당ㆍ청의 노선과 전당대회 및 개각의 밑그림 등등.

노 대통령이 ‘인사 파문’과 관련, 사의를 표명한 청와대 인사추천위원 6명 중 1차 책임자로 거론된 김 비서실장은 살리고 ㆍ박정규 수석의 사표만 수리한 것은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이란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참여정부 후반기 실리적 국정운영을 위해 일부 수석보다는 비중이 큰 김 실장을 택했다는 것이다.

‘3일 천하’로 끝난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의 전말에 이해찬 총리와 김우식 실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 “‘몸통’을 위해 ‘깃털’만 희생양이 됐다‘는 분석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정규 수석은 희생양
청와대 인사시스템은 ‘인사 추천-평가-검증’에 이르기까지 5단계 구조로 돼 있고, 인사 추천과 검증은 실무 책임자인 정 인사수석과 박 민정수석이 담당했다. 정 수석은 인사 파문이 불거진 뒤 사실과 다른 자료로 이기준 전 부총리를 감싸다 질책을 받았고, 박 수석은 “사흘 동안 30여명을 검증했다”고 실토해 책임을 면키 어려웠다.

그러나 박 수석이 인사추천회의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이 전 부총리에 대한 ‘부적격’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반면 이 총리는 “이 전 부총리는 내가 추천했다”고 밝혔고, 김 실장과 이 전 부총리가 40년 이상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번 파문의 ‘몸통’이 이ㆍ김 두 실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정찬용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면서 이 총리와 김 실장을 구제하고 정ㆍ박 두 수석을 내쳤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김 실장과 이 총리는 참여정부 후반기 국정운영의 양 축을 상징한다”고 말해 정ㆍ박 수석의 사퇴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희생양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실장이 유임된 것과 관련 도덕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청와대 안팎에서 김 실장의 활동과 노 대통령과의 ‘특별한’인연이 이번 유임의 버팀목이 됐다는 것. 김 실장과 같이 연세대학 출신의 한 참모는 “대통령과 김 실장의 관계는 ‘보완재’”라며 “임기 중반을 맞는 대통령이 보수층의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 내고 지지층을 확산시키는 데 김 실장의 역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구囹?인사들 및 보수층과 오랜 인연을 맺어 온 김 실장이 나서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설명할 경우 보수층의 이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실장은 자신의 광범위한 인맥을 통해 보수층의 참여정부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반노(反盧) 시위'를 전후해서는 교계 원로들을 상대로 노 대통령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씻는 역할을 했는가 하면 지난해 12월22일에는 서울 롯데호텔에서 전경련 등 경제 5단체장을 초청해 경제현안과 ‘투명사회협약’ 도출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보수언론 사주들을 직접 만난 것이 최근 공개됐는데 노 대통령이 지난해 말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송년만찬 자리에서 “언론과 건강한 긴장관계만이 아니라 건강한 협력관계,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으면 좋겠다”며 언론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것도 김 실장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는 후문이다.

이번 인사파문에서 친여 성향을 보인 <한겨레> <경향> 등이 김 실장의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한 반면, 참여정부에 각을 세워 온 <조선> <동아>가 김 실장의 책임을 무시하거나 나아가 ‘개혁세력의 음모론’(<조선> 1월6일자 '이기준 공격 다른 과녁 있나‘ 기사) ‘실용주의 국정기조의 중요성’(<동아> 1월10일자 사설) 등 노 대통령의 인사를 옹호하는 이상기류를 보인 것도 김 실장이 공을 들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노 대통령은 13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새해 국정목표는 경제살리기”라며 실용주의 국정운영을 시사했다. 청와대에서는 노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펼치려는 ‘국민통합’과 ‘실용주의적 화합’ 정책에 김 실장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실장이 그 같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동안 재계ㆍ교계ㆍ언론계 등과 꾸준히 물밑접촉을 해왔다는 것. 노 대통령이 인사 파문에도 불구하고 김 실장을 유임시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청와대의 시각이다.

노 대통령과 김 실장의 독특한 ‘인연‘도 김 실장의 유임에 적지않은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군부 독재 시절인 1985~1988년 사이 연세춘추 주간, 학생처장을 맡으면서 수배 학생들을 알게 모르게 도왔는데 당시 인연을 맺었던 이광재 의원,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 박범계 전 민정비서관등 이 김 실장의 기용에 영향을 줬다는 것. 또 이들 연대 출신들은 인사 파문이 불거졌을 때 김 실장을 지키는데 앞장섰다는 후문이다.

안희정

분권형 국정운영에 탄력
이해찬 총리가 ‘책임총리제’를 명분으로 실질적으로 제청권을 행사했음에도 인사 파문 책임에서 비켜간 것은 노 대통령이 지향하는 총리 중심의 ‘분권형’ 국정운영 구상과 불가분의 관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노 대통령은 작년 6월8일 이 총리를 기용한데 이어 6ㆍ28 개각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복지부 장관을 책임형 장관으로 입각시켜 분권형 국정 운영 시스템을 마련했다.

노 대통령은 ‘분권형’ 국정운영을 통해 외교ㆍ통일ㆍ국방 등에 전념하고 내치는 이 총리에게 맡기는 한편 정 통일, 김 복지 장관 등 대권 예비 주자들을 조율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또 김 비서실장이 ‘실세형’이 아닌 ‘실무형’으로 이 총리와 청ㆍ정간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부총리 인사 파동으로 이 총리나 김 실장 어느 한 쪽이 무너질 경우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커다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내 탓이오”하며 국민에게 사과하면서까지 이 총리와 김 실장을 보호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이 인사 파문에서 ‘몸통’을 구한 것은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실용주의’로 표방한 것과 맞물려 열린우리당 노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4월 전대 당의장 선출과 관련, 당내 여러 계파 중 실용주의 행보를 고수하고 있는 친노그룹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광재ㆍ서갑원 의원 등 386 직계그룹과 문희상ㆍ유인태ㆍ한명숙 의원 등 청와대 및 각료 출신, 김혁규 의원, 이강철 전 대통령 조직특보 등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문희상ㆍ김혁규 의원은 당 의장 출마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인사 파문 때 김 비서실장을 공격, 사퇴를 촉구한 것은 책임 추궁과 함께 국정의 보수화를 차단하려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4월 전대와 관련, 당내 친노 실용주의파의 확산을 제어하려는 측면이 없지 않다.

노 대통령은 차기 교육부총리 인선과 관련, “대학은 경쟁의 측면에서 운영해야 한다”면서 “부총리는 대학교육 혁신에 집중할 수 있는 요건을 감안해 인선할 것”이라고 해 ‘개혁’ 쪽에 좀 더 비중을 두는 인사를 할 것임을 내비쳤다.

이 전 부총리 인사파동에서 비롯된 청와대 인사 교체는 노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운영을 ‘실용주의’?모토로 당-청-정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후폭풍이 여야 정치권과 향후 국정에 어떻게 나타날 지 귀추가 주목된다.

1·10 청와대 인사 후폭풍
인사수석 놓고 영·호남 힘겨루기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으로 박정규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이 사퇴한 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에 묘한 바람이 일고 있다. 두 수석이 청와대 영호남을 일정하게 대변해 왔고 특히 정 전 수석은 청와대 내 대표적인 호남 인맥이었다는 점에서 후임 인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 전 수석이 낙마한 시점에 여권에서 TK(대구ㆍ경북)를 대표해온 이강철 열린우리당 집행위원이 오랜 야인생활 끝에 여당의 지도부로 화려하게 복귀한데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 당시 노 대통령의 측근인 씨의 변호를 맡았던 김진국 변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으로 기용됐기 때문이다.

이 집행위원은 지난해 중순부터 인사수석 발탁설이 나돌아 정 전 수석을 비롯한 호남 인사들을 자극, ‘김혁규 총리카드’와 ‘영남발전특위’가 견제를 받기도 했다. 여권에서는 차기 인사수석을 놓고 영남파와 호남파 간에 이미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는데 영남 인사 중에는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이, 호남 인사로는 이학영 한국 YMCA 사무총장, 윤장현 광주 YMCA 이사장과 김완기 소청심사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진국 변호사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였던 이호철씨가 맡았던 민정비서관을 맡고 있는 전해철씨와 함께 씨 변호를 맡은 바 있어 여권내에서는 “‘ 라인’이 민정수석실을 접수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 안팎에서는 을 축으로 하는 고대 인맥이 이광재를 앞세워 독주했던 연대 인맥을 견제할 것이라는 애기도 들린다

당에서도 안 씨와 노 대통령 대선캠프였던 자치경영연구소 출신인 이강철 위원, 얼마 전 정치활동을 시작한 이기명 전 노 대통령 후원회장, 고대 후배인 이인영ㆍ오영식ㆍ백원우 의원 등이 안 씨의 정치 재개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안 씨의 당 복귀론이 힘을 얻으면서 ‘열린정책연구원 부소장’설이 제기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1-21 11:20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