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보수 vs 중도보수 vs 중도계파 간 날카로운 신경전

한나라는 또 노선투쟁 중
강경보수 vs 중도보수 vs 중도계파 간 날카로운 신경전

한나라당에 백가쟁명식 노선 투쟁이 불붙었다. ‘박근혜 2기 체제’ 출범과 맞물려 당의 주도권 다툼 성격이 짙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차기 대선에서도 집권이 어렵다는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 있어, 처제 정비기에 의례적으로 반복돼 온 계파간 신경전과는 사뭇 다르다.

한나라당의 노선 갈등은 크게 세 갈래로 분류된다. 영남권 보수 성향 의원들의 강경 보수론, 수도권 소장파 중심의 개혁적 중도 보수론, 그리고 그 사이에 비주류 그룹의 중도론 등이다. 물밑 대결 양상이던 흐름이 표면화된 것은 김덕룡 원내 대표가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의 길은 어디까지나 개혁적 중도 보수이며 이를 보여줄 때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일성을 터뜨린 것이 계기가 됐다.

이는 지난해 말 4대법안 정국에서 강경보수 입장이 완강했던 박근혜 대표와 자신에 대한 인책론까지 제기한 영남권 보수파를 겨냥한 발언으로 비쳐졌다. 그 간 박 대표와의 갈등설이 파다했던 김 대표가 소장파와 연대축을 형성해 본격적인 제 목소리를 내기위한 시동 걸기라는 해석도 나왔다. 여기에 박근혜 2기 체제의 지도부 핵심 멤버로 발탁된 김무성 사무총장이 “한나라당은 차기 대선에서 강경 보수주의자와 함께 가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라며 “발전적 중도보수 정당으로 변해야 한다”고 가세하면서 파장은 확산됐다.

당 발전적 해체 주장
당장 영남권 보수 의원의 모임인 ‘자유포럼’의 대표 이방호 의원은 “한나라당은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호남과 충청도와 연합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범보수의 지지를 받는 정당을 만든다는 각오가 있어야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민주당, 자민련을 포함하는 ‘보수 연대론’을 주장했다. 이상배 의원도 “민주당, 자민련, 뉴 라이트는 물론 밖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세력, 나라를 지키고 1만 달러 성장을 위해 일한 세력들을 모두 영입하고 끌어 들여야 한다”고 거들었다.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탓에 이들의 주장은 당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는 최근 당직 개편에서 철저히 배제됐음은 물론, 당 선진화 프로젝트에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등 쇠락의 위기감이 집결돼 있어 한나라당이 중원으로 가는 길에 적지않은 걸림돌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보수 중진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소장파들도 반기를 들고 있다. 이들은 당직 개편을 통해 요로에 포진된 박세일 정책위의장, 유승민 대표비서실장 등 ‘정책적 매파’ 그룹의 전진 배치를 제2의 우경화의 시작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은 “개별적인 불만 형식이 아니라 지도 체제, 당내 민주주의, 당의 환골탈태 등과 관련해 종합적인 노선 투쟁을 펴겠다”고 선언했다. 그 동안 원내 수석 부대표라는 당직에 발이 묶여 노선 발언을 가급적 삼가온 남경필 의원도 “개혁적 중도 보수화에 몸을 싣겠다”고 대오에 적극 합류했다.

하지만 ‘정책적 매파’ 그룹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 간 ‘수구 꼴통’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었던 영남권 보수파와의 말싸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노선 투쟁의 알맹이와 테크닉이 수반돼야 하기에 소장파들의 주도권 잡기 행보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소장파들은 김덕룡 원내대표를 매개로 당내 개혁 블록을 형성하고, 앙금이 가시지 않은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의 ‘국가 발전 전략 연구회’와도 사안에 따른 전략적 연대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소장파 인기영합 자제하나"
한편 소장파와 영남권 보수파를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국민 생각’, ‘푸른 정책 모임’ 등은 중도론을 주도하며 세 확산에 나섰다. ‘국민 생각’의 회장인 맹형규 의원은 18일 “극우파들도 나름대로 애국심을 갖고 있지만, 대선 승리에 걸림돌이 있고, 소장파들도 인기영합주의를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국민 생각’은 의원 39명이 참여하고 있는 당내 최대 모임으로 지난 17일 제주도에서 서경석 목사 등을 초청해 세미나를 갖고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극우가 아닌 중도의 바다에서 열린우리당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모으기도 했다.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선 모임의 좌장격인 강재섭 의원의 출마가 점쳐진다. 박진, 임태희 의원 등이 주축이 된 ‘푸른 정책 모임’도 소장파와 영남 보수파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중도 성향의 의원들을 적극 흡수하며 박근혜 친정 체제에 대한 잠재적 비판 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도면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 같은 3갈래 노선투쟁의 본질은 현재와 같은 박근혜 카드로는 차기가 어렵다는 인식을 기저에 깔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파고는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표는 20일 연두 기자 회견에서 “한나라당이 우경화되고 있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으나, 소장파와 중도파에게서는 “아직도 박 대표가 문제의 본질을 모르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던 터다. 이에 보수파는 “당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박 대표가 좀 더 분명한 입장을 견재해야 한다”고 나름의 불만을 표출했었다.

결국 대권 잠룡들 간 경쟁의 신호탄이기도 한 한나라당의 3각 갈등은 2월초 의원 연찬회를 통해 증폭돼 2월 임시국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4월 국회의원 재보선과 5월 원내대표 경선 등 굵직한 일정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대선 경쟁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치된 관측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입력시간 : 2005-01-27 15:22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