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2기 한반도 정책에 초미의 관심…6자 회담이 유일한 돌파구?

북한 핵, 한국 독자카드는 없나
부시 2기 한반도 정책에 초미의 관심…6자 회담이 유일한 돌파구?

‘테러와의 전쟁’에서 ‘폭정과의 투쟁’으로. 부시 2기 행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 20일 취임사에서 천명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한 안보’ 철학은 수사학상의 실제성 여부를 차치하고 정책의 큰 줄기에서, 거의 종교적 신념으로 선과 악을 나눈 그의 1기 정치 철학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평가된다. 이에 앞서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도 상원 청문회서 쿠바, 미얀마, 이란, 북한, 벨로루시, 짐바브웨이 등 6개국을 전세계 지역별 ‘폭정의 전초 기지(outposts of tyranny)로 일일이 거명해 부시 2기 행정부의 세계전략 외형을 보여줬다.

또한 부시 행정부서 독자적 위상을 구축하며 브레이크 역할을 했던 파월이 퇴장함으로써 2기 외교안보팀은 딕 체니 부통령의 입김 아래 부시와 코드가 맞는 충성파 인사들로 짜여졌다는 것이 중평이다. 결과적으로 부시 2기 외교 안보팀 라인업은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도 1기와 달리 내부 합의를 빠르게 도출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쉽게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체제 전복(regime change)’에서 ‘체제 전환(regime transformation)’이란 논리의 수정을 통해 대북한 정책을 예고한 부시 2기 외교 안보팀의 숨은 목소리는 무엇인가?

우선 한미정상은 지난해 11월 아ㆍ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은 6자 회담 틀 내에서 평화ㆍ외교적 해결 원칙을 확인하고, 미국은 중ㆍ일ㆍ러 정상들에 북한에 대해 ‘핵을 포기하라’라고 공통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부시 정부가 대선을 치르는 와중인 작년 6월 3차 6자 회담서 처음으로 제시한 구체안(案)인 ‘선(先)핵포기 선언 후 상응 조치’라는 카드에 암묵적 동의로 해석된다. 물론 미국의 안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또한 핵 폐기 범위와 HEU(고농축우라늄) 보유 여부, 검증 방법 등 핵심 쟁점에서의 이견도 쉽게 좁혀지기 힘들다. 사실 이러한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선 선후나 범위 등을 둘러 싸고 티격태격하는 실무 협상의 차원이 아니라 결국엔 북 - 미 양측 최고위층의 결단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6자 회담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일환
6자 회담의 틀은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6자 회담은 북한 핵 문제를 일정한 구도 안에 담아둘 수는 있지만, 북한 핵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6자 회담이 갖는 국제정치적 성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박사는 “6자 회담은 북한 핵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기 위한 접근이기 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일환으로 봐야 한다”며 실제 6자 회담 참가자들도 이런 다자간 회담으로 미국의 첨예한 동아시아 이해와 북한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로서는 6자 회담 구도는 북 - 미간 극단적 대립에 완충 역할과 외교적 해결 방식의 틀로서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미국이 왜 그토록 심각하게 걱정하는 북한 핵 문제를 느슨한 6자 회담 틀 속에 잡아 두고 있나 하는 분석은 다양하다.

우선 이라크에 발이 빠져 외교 안보력이 그 곳에 치중되다 보니 북한 핵 문제는 정책 우선 순위에 밀렸고, 신속한 해결을 위한 북한과 일 대 일 해결보다는 다자간 틀 속에 일단 묶어 둘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은 부시 1기 동안에는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미국은 2차 6자 회담까지 아무런 북한 핵 해결을 위한 구체적 행동이 없었다.

그런데 부시 정부 2기에 와서도 6자 회담을 북한 핵 해결을 위한 기본 틀로서 재차 확인한 것은 미국이 북한 핵을 조속히 낯?狗졍?의지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미국은 북한 핵의 조속한 해결보다 동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6자 회담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먼저 북한 핵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적절한 군사외교적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중국을 염두에 둔 미사일방어체제(MD) 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다?시나리오다. MD는 미 군산복합 거대 자본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이고 동시에 21세기 첨단 기술과 산업이 총동원되는 미래 사업으로 이를 주도하는 미국의 국익과 직결돼 있다. 물론 미국의 시선이 여전히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다는 현실과 북핵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을 비롯한 중ㆍ일ㆍ러의 이해와 우려를 고려해 내린 현실적 선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 같은 해석은 개연성을 뛰어 넘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이 6자 회담 틀 속에서 북한 핵 해결을 계류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유의 또 다른 분석은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동아시아 긴장의 필요성이다. 통일연구원 허문영 박사는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시켜 온 2개의 축은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다. 그러나 미일동맹은 냉전 종식 이후 대(對)러시아 견제 필요성이 적어짐으로써 상호 군사적 결속의 끈이 약해졌고, 한미동맹은 남북 관계 급진전에 따른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며 미국이 북핵을 통한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을 이용하는 측면이 없지않다고 지적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문제의 본질은 핵이 아니라, 한미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북한 핵 문제가 풀려도 미사일, 생화학 무기, 인권 카드 등으로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허 박사는 미국에 있어 한국은 세계 전략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한반도 전략의 기본 전술은 ‘성동격서(聲東擊西ㆍ동쪽을 치는 듯 하면서 실제로는 서쪽을 치는 병법의 하나)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북한 핵은 국제적 성격을 가지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운신의 여지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우리가 어떤 카드들을 마련하느냐가 주요 변수라는 것이다.

정부, 북한 핵문제에 분명한 목소리 내야
세종연구소 백 박사도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견해를 같이 한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강하게 반영된 6자 회담 틀에 스스로 묶일 것이 아니라, 북한 핵 위기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미국과의 적정한 긴장 관계를 감수하더라고 우리가 한반도 핵 문제 당사자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발언권을 높일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닫혀 있는 대북 라인을 서둘러 구축해 이것을 지렛대로 핵 문제 해결에 강한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21세기 동아시아 재편과 연결된 우리의 포석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통일연구원 허 박사는 부시 대통령은 그의 강한 표현과는 달리 2기 집권에서 자신을 ‘평화의 사도’로 각인시키려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군사력이 중동에 묶여 있다는 이유 때문에 동아시아 전략이 부드러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여기에 북한은 심각한 인플레에 절대 부족의 에너지는 북한 사회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나 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상태다. 이렇듯 발등의 불이 된 북한의 내부 사정과 더불어 미국의 변화 가능성이 북한 핵 문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는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된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지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스크바 남북 정상회담이란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국제정치 환경을 어떻게 마련할 지의 여부에 향후 우리 정부가 내놓을 독자적 카드의 성패를 가늠케 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하튼 부시 대통령의 ‘자유의 확산’ 취임사나 라이스의 ‘폭정의 전초기지’의 발언에도 별다른 반응을 자제해 온 북한은 물론 한국 등 6자 회담 당사국의 입장 역시 2월 2일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교서를 지켜본 뒤 보다 분명해 질 것으로 보인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2-01 15:58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