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과 대척, 중·러에 개방' 으로 대외전략 굳힌듯

북한, 남쪽은 닫고 북쪽은 연다?
'한·미·일과 대척, 중·러에 개방' 으로 대외전략 굳힌듯

2004년 4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미 - 중, 북 - 미, 중 - 일 간의 동북아 신(新)긴장 구도 속에서, 북한의 권력 핵심부가 새로운 생존 전략을 구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동북아 정세는 9ㆍ11 이후 새롭게 형성된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협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 상황이다. 3월 14일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서의 ‘반(反)국가분열법’ 통과, EU의 대(對)중국 무기 금수 철폐 움직임, 북한 핵 위기 장기화에 따른 입장차 표면화, 미 - 일 신(新)안보동맹 구축 등 최근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줄 굵직한 이슈들이 물고 물리며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진 가운데, 미 - 중 간의 갈등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대외전략에 큰 변화움직임 감지
북한은 이러한 정세 변화를 읽고, 미 - 일 - 한 동맹에 대해 문을 닫고, 중국과 러시아에 문을 여는 식으로 개방 정책의 방향 전환을 한 것으로 보이는 대내외적 정황이 포착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개혁ㆍ개방은 지속하되, 중국을 주 파트너로 하는 기본 정책을 결정했을 가능성이다. 한동안 북한이 추구해 왔던 미 - 일 - 한 동맹과의 관계 개선를 포기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남북 관계 정체의 이유 역시 여기에서 연유한다는 것.

북한이 이러한 정책 전환을 결정했거나 모색하고 있는 이유를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선임연구위원)는 개혁, 개방 실험에 따른 체제 단속의 어려움과 그 동안 남북 관계를 이끌던 주도적 인물들의 집단 퇴장 등 일련의 정황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대외적으로 북한은 2002년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내부 질서 유지의 어려움을 경험했고, 최근엔 미국의 ‘북한 인권법’ 등 외부 사상 문화의 침투가 강화될 조짐에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2차 핵 파문, 유골 진위 논란으로 일본의 대북한 여론이 나빠지고, 그 결과 대일본 무역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남북 경협의 문제에도 영향을 끼친다. 비료와 쌀 지원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북한 주민의 남한에 대한 인식 변화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으며, 더욱이 최근 정세로 놓고 볼 때 당분간 획기적인 경제 협력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조건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과 경제적 밀착을 강하게 추동한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6자 회담 참가와 관련해, 한편으로 북한에 정치적 압력을 높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편에서는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북한과 중국 간 무역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배(120% 증가)가 넘게 늘었다.

이러한 조짐들의 배경으로 지난해 4월 김정일 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당시 북 - 중 간에 북한의 개혁ㆍ개방 정책의 가속화하는 대가로 대북 지원과 협력을 강화하는 협약 체결 가능성을 얘기된다. 현재 북한의 입장에선 개혁ㆍ개방을 위해선 중국이 가장 안전한 파트너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선상에서 오는 3월 22일 북한의 박봉주 내각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것은 향후 북 - 중 간 협력이 어떤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지와 관련해 주목되는 행보이다.

북한이 남북경협 재검토 등 대외 생존 전략의 전환했을 또 다른 가능성은 내부 권력 지도의 변화에서도 나름의 계기가 있다. 이는 2000년 이후 남북 관계를 주도해 온 김용순(대남담당 노동당 비서ㆍ아태평화위 위원장)ㆍ송호경(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사망과 이종혁(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사실상 일선 퇴진 등에 따른 대화파의 집단 퇴장이 상징하는 바다.

대북 식량차관인 쌀을 실은 트럭이 군사분계선을 넘고있다.

남북관계, 교착상태 지속될 듯
남북 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세력이 북한에서 퇴장했다는 사실은 조직 생리상 대남 강경 입장을 견지하는 군부를 위시한 강경파의 입지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현재 북한 내 남북 관계의 복원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비중 있는 인물이 부재하다는 분석은 이를 뒷받침한다. 또 이러한 인물의 부재설(說)은 김정일 위원장이 당분간 남북 관계를 교착 상태로 끌고 가겠다는 입장을 반영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 입장에서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올해 북한의 식량 사정 전망은 대단히 암울하다. 유엔의 대북 식량 지원 창구인 세계식량기구(WFP)의 3월 11일자 주간 구호 보고서에 나타나 있는 대로다. 핵 문제 교착 상태 탓에 국제 사회가 북한에 대한 신규 곡물 지원 약속이 없어, 이대로 간다면 오는 6월부터 배급 대상의 축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평양 당국은 2005년 신년 사설에서 이례적으로 농업 혁신을 강조했지만, 내부 노력만으로는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북한이 2004년도 곡물 425만 톤으로 10년래 최대 수확고를 올린 것도 한국이 지원한 비료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도 한국이 매년 지원하는 봄 비료 20만 톤, 가을 비료 10만 톤과 쌀 차관 40만 톤, WFP를 통한 옥수수 10만 톤 등 곡물 50만 톤을 받을 생각이 없는 걸까? 이를 받을 생각이 있다면 평양 당국은 지금쯤 한국이 비료지원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당국자 회담에 호응하는 신호를 보냈어야 했다. 더욱이 한국이 2002년 이후 지원하는 곡물 50만 톤이 없다면, 북한의 곡물 수급은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 수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우선 현실적인 가능성은 북 - 중 간의 강력한 경제 협약이 체결했거나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에 북한을 체제를 유지시키는 것은 중국의 이익과도 부합되고, 경제적으로 북한을 도와줄 나라도 중국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바탕을 둔 분석이다. 그러나 중국의 대규모 지원 약속이 있다 하더라도 지난해 중국 내 식량 수급에 여유가 없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의 식량 부족은 중국에 전적으로 기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차피 한국이 비료를 줄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고, 한국측에 조바심을 키운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나와서 비료만을 낚아 채는 전략을 펼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회담장에 일찍 나오면 한국으로부터 이런 저런 요구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여하튼 3월 22일 북한의 박봉주 내각 총리의 베이징 방문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평양 당국은 남북 경협에 대한 입장을 구체화할 전망이다. 북한의 춘곤기가 5월 이후 본격화 하는 점을 감안하면, 곡물 지원은 늦어도 6, 7월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북한이 금년 한 해를 넘겨내기 위한 결단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3-23 18:21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