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누가?…번지는 오일게이트갑작스런 계약 해지·외압 여부 등 의혹 증폭, 여권 실세 개입설로 일파만파

철도공사 러시아 유전개발 미스터리
왜? 누가?…번지는 오일게이트
갑작스런 계약 해지·외압 여부 등 의혹 증폭, 여권 실세 개입설로 일파만파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 사무실.

“계약금 620만 달러(65여억원)가 떼이게 된 것만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앞으로 한국이 러시아 사할린 유전 개발에 사실상 참여할 수 없게 된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할린 지역 에너지 자원 전문가인 C씨(러시아인)는 4월 1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측의 페트로사 유전 개발이 좌절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그렇게 말했다. C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철도공사(당시 철도청)의 러시아(사할린) 유전개발 참여에 중간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철도공사의 유전 개발 참여는 지난해 8월 17일 산하 기관인 철도교통진흥재단(이하 철도재단)과 함께 H부동산개발회사(대표 전모 씨)가 ㈜코리아크루드오일(KCO)을 합작사로 설립하면서 본격화됐다. 철도재단과 H사가 KCO를 설립한 데는 H사 대표 전씨가 사할린을 방문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사할린 방문자를 확인한 결과 전씨는 8월 14일부터 16일 까지 사할린에 머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전씨는 극동 러시아 사정에 정통한 국내 인사를 통해 사할린 유전 개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직접 현장을 찾은 것이었다.

사할린에서 C 씨를 비롯해 이 지역 에너지 관계자들과 페트로사 정유 공장의 현장을 방문한 전 씨는 유전 개발의 장래성(경제성)을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사업 투자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전씨는 귀국 다음날인 8월 17일 철도공사와 KCO를 설립한 데 이어 9월 3일 러시아의 3대 유전개발회사인 알파에코사의 자회사로 사할린 유전을 보유하고 있는 페트로사 주식을 6,2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하고 계약금 620만 달러를 지급했다.

석유공사에 의하면 KCO가 투자를 추진했던 6광구는 러시아 국영회사인 로스네프트, 니트로 페트로사가 각각 50%의 지분을 가지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광구의 석유 매장량은 우리나라 1년 석유 사용량(8억4,000만 배럴)의 2.6배인 21억9,900만 배럴 가량으로 추정된다.

철도공사가 사업주체?
그러나 사할린 지역에 관한 러시아 자원 보고서에 따르면 페트로사 정유 공장이 개발하는 6광구의 석유 매장량은 석유공사 추정량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C 씨는 “석유공사의 자료는 한 광구의 매장량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고 전체 광구의 매장량은 석유공사 추정량의 10 가량에 달한다”고 말했다.

사할린 유전개발 프로젝트는 지난해 11월 22일 KCO가 갑자기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인수 잔금 납입일(2004년 11월 15일) 이전까지 러시아 정부의 사업 승인이 없어 계약 조건에 따라 계약을 종료하고 계약금 반환을 요청했다는 게 철도공사측의 설명이다.

김국후 홍보실장은 “위험이 있는 사업이었던 만큼 국내와 러시아측의 법무 법인에게 계약 조건 이행을 면밀히 주시하게 했으나 약속된 기일안에 러시아 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해 지체 없이 계약을 해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페트로사측은 “한국측이 계약 내용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며 계약금을 돌려 주지 않고 있다.

KCO와 페트로사 간에 은밀히 진행되던 사할린 유전 개발은 지난해 11월 투자 계약이 불발로 끝나고, 올 1월 철도공사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본격화되면서 갖가지 의혹과 함께 수면위로 떠올랐다. 가장 큰 의문은 유전 개발과 무관한 철도공사가 왜 사업 주체로 나섰는가 하는 점이다.

사할린 유전.

철도재단측은 철도공사가 국방부 다음의 대규모 소비 기관이고 고유가 시대에 비용 절감과 부대 수익 창출을 위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에서 사할린 6광구 유전 개발 사업은 석유 공사가 타당성 조사 후 포기했던 사업으로 알려져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전 개발 합작사인 KCO의 주주 전모 씨(지분 42%)와 권모 씨(지분18%)는 한 때 신용 念?悶눼?것으로 밝혀져 철도재단이 이들과 합작사를 설립하고 유전 개발에 나선 배경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 관계자는 “전씨 등의 신분 조회에 소홀한 점은 인정하지만 페트로사 유전 개발에 대해서는 충분한 타당성 검토를 거친 뒤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고 밝혔다.

계약금 대출에 누가 힘썼나?
이 밖에 우리은행에서 계약금 65억원을 대출해 주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 철도재단이 사할린 유전 개발 계약을 체결한 지 2주일도 안돼 9월 16일 전 씨와 권 씨의 지분 60%를 모두 120억원에 서둘러 인수한 것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또 전 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과 동향으로 서로 알고 지냈으며 지난해 10월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이 이 의원을 만나 유전 사업 얘기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광재 관련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의정 차원에서 러시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며 “누군가 나를 팔고 다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철도공사의 러시아 사할린 유전 개발 의혹과 관련,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점은 페트로사 유전 개발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면서 한국이 더 이상 사할린 지역 유전 개발 참여가 어렵게 됐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에너지 전문가 C씨는 “러시아가 자국 에너지 보호를 강화하고 미국, 영국, 일본이 사할린 지역 대부분을 장악한 상황에서 페트로사 유전 개발은 한국에게 마지막 남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KCO가 포기한 페트로사 유전 개발은 현재 영국의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인 BP(British Petroleum)가 1억2,000만 달러에 인수, 전체 주식의 86%를 확보하고 있다. 페트로사 유전 개발의 가치는 약 34조원에 이른다는 평가다.

무소신·기회주의·직무태만 겹쳐
철도공사의 사할린 유전 개발 의혹 이면에는 국익에 앞서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일단 “덮고 가자”는 정치권의 무소신ㆍ기회주의와 유전 개발 주무부처인 석유공사의 직무 태만이 도사리고 있다.

철도공사의 유전 개발 참여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의 도마에 오를 조짐을 보이자 관계 기관들이 발을 빼기 시작했던 사안이다. 석유공사는 사할린 6광구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사하고도 민간 기업이 투자에 나설 때까지 뒷짐만 지고 있다, 외국 기업에 보물 창고를 넘겨주고 말았다.

사할린의 에너지 자원을 놓고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자원 확보 전쟁을 벌이던 2001년, C씨는 석유공사 연구원 B 씨 및 관계자들과 사할린 지역 중 석유ㆍ가스의 보고인 남사할린 홈스크 지역 일대를 방문하고 그 가치를 알려준 바 있다. 그러나 석유공사는 이후에 어떠한 개발 참여도 하지 않았다.

그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산업자원위원회)에게 사할린 지역에 대한 실사 보고서를 빼고 자료를 제출했다가 질타를 당한 게 전부다. 현재 홈스크 지역 석유ㆍ가스 개발권은 외국 기업에 넘어가 2001년 석유공사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보다 10배 이상의 가치가 올라있다.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 회담을 갖고 극동지역 유전 공동개발에 관한 협력 약정(MOU)을 체결, 사할린 및 캄차카 지역의 유망 광구를 공동 개발키로 했다.

그러나 페트로사 유전 개발이 실패로 끝나고 한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노 대통령의 시베리아 프로젝트(에너지 개발, 남북 경협, 정상 회담)도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4-07 17:2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